▶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해가 지는 곳(Al-Maghrib)' 모로코 왕국(Kingdom of Morocco)으로 떠나보겠습니다. 1325년 위대한 이슬람 여행가 이븐 바투타(Ibn Battuta, 1304~1368)는 21세의 나이로 고향 탕헤르(Tangier)를 떠나 약 29년간 온 세상을 누비며 인류 역사상 가장 광대한 여정의 기록인 '여행기(Rihla)'를 남겼습니다. 유럽과 아프리카, 지중해와 대서양이 교차하는 이 관문의 땅은 천년의 세월 동안 아랍, 베르베르, 그리고 유럽의 문화가 절묘하게 융합된 독창적인 역사적 결실을 맺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페스 메디나(Medina of Fez, 1981)는 9,000여 개의 미로 같은 골목길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숨 쉬는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이며, 페스(Fez)의 상징인 천연 가죽 염색터 슈와라 테너리(Chouara Tannery)는 중세의 아날로그 방식을 지금 이순간까지 고스란히 지키고 있습니다. 사하라의 붉은 모래사막과 붉은 황토 빛 메디나가 어우러진 모로코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학문과 신앙이 한 지붕 아래, 자위야(Zawiya: Where scholarship and faith share one roof) : 모로코의 골목을 걷다 보면 유독 자주 마주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수피(Sufi, 이슬람 신비주의) 성자의 무덤과 기도처, 학당이 하나로 얽힌 종교 복합체를 가리키는 '자위야(زاوية, Zawiya)'입니다. 문자 그대로는 '모퉁이' 또는 '구석'을 뜻하지만, 실제로는 한 명의 스승을 중심으로 제자들이 모여 학문과 영성을 함께 닦던 살아있는 공동체였습니다. 마그레브(북아프리카 서부) 전역에서 자위야는 단순한 예배당이 아니라 지역 사회의 재판소이자 학교, 여행자를 위한 숙소 역할까지 도맡았습니다.
페스의 자위야 전통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도시가 오랜 세월 축적해 온 학문과 종교의 전통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859년 무렵 파티마 알피흐리가 세운 알카라윈 모스크와 학문 공동체가 자리합니다. 튀니지 카이루안(Kairouan) 출신의 부유한 상인의 딸 파티마 알피흐리(Fatima al-Fihriya, 800년경~880년경)는 859년 무렵 사재를 털어 이 모스크를 세웠고, 이곳은 ‘오늘날까지 존속하며 지속적으로 운영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기관’으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 여성의 기부로 시작된 알카라윈은 이슬람권의 학문과 법학, 철학 연구가 발전하는 중요한 중심지로 성장했고, 중세 지중해 세계의 지적 교류와도 연결되었습니다. 알카라윈이 속한 페스 메디나(Medina of Fez)는 198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9,000여 개의 골목이 실타래처럼 얽힌 ‘세계 최대 규모의 차량 통행금지 구역’으로도 유명합니다.
페스 메디나 안쪽에는 이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 물라이 이드리스 2세(Moulay Idris II, 재위 807~828년)의 영묘를 품은 자위야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로코 최초의 이슬람 왕조인 이드리스 왕조를 반석 위에 올린 인물로, 그의 유해가 15세기에 재발견된 이후 이 자위야는 모로코인이라면 평생 한 번은 참배하고자 하는 성지가 되었습니다. 아울러 18세기 알제리 출신의 수피 지도자 아흐마드 알티자니(Ahmad al-Tijani, 1735~1815)는 페스에 정착해 티자니야(Tijaniyyah) 교단을 창시했고, 그의 자위야는 오늘날까지 세네갈과 말리, 나이지리아를 아우르는 서아프리카 무슬림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국제적 신앙의 거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 사막의 관문을 지킨 흙의 요새, 크사르(Ksar: The earthen fortress guarding the desert gate) : 모로코 남부, 하이 아틀라스(High Atlas) 산맥의 붉은 흙산 사이로 접어들면 사하라와 마라케시를 잇던 대상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요새 마을이 나타납니다. 진흙과 짚, 야자나무 목재만으로 지어 올린 방어 취락을 뜻하는 아랍어 '크사르(قصر, Ksar)'가 오늘날 가장 완벽한 형태로 남아있는 곳, 바로 아이트벤하두(Aït Benhaddou)입니다. 11세기 무렵 베르베르계 알모라비드 왕조(Almoravid dynasty) 시기부터 요새가 들어선 것으로 추정되는 이곳은 우닐라 계곡(Ounila Valley)을 가로지르며 사하라 이남에서 실어온 금과 소금을 마라케시와 페스로, 다시 북방의 옷감과 향신료를 남쪽으로 실어 나르던 무역상들의 필수 경유지였습니다.
한 가문이 소유하는 요새를 뜻하는 '카스바(Kasbah)'와 달리, 크사르는 여러 가문이 성벽 안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공동 주거지였습니다. 사원과 광장, 대상들이 묵어가던 캐러밴사라이(Caravanserai), 곡물 창고인 아가디르(Agadir)까지 갖춘 이 작은 도시국가는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전형적인 사하라 이전 시대 진흙 건축의 완벽한 원형'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우닐라강 건너 신시가지로 삶의 터전을 옮겼으나, 몇몇 가구는 성벽 안에 남아 옛 방식 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트벤하두의 붉은 흙빛 실루엣은 스크린을 통해 전 세계인의 뇌리에도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1962년 데이비드 린(David Lean, 1908~1991) 감독이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를 이곳에서 촬영한 이래, 『글래디에이터(Gladiator)』의 검투사 경기장 장면과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 속 노예 도시 윤카이(Yunkai)의 성벽까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많은 영상물이 촬영된 장소’라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척박한 사막의 생존 건축이 시대를 뛰어넘어 판타지와 고대사를 오가는 상상의 무대로 재해석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지 않나요?
크사르가 지탱했던 대상 무역로의 반대편 끝에는 서아프리카 말리(Mali)의 팀북투(Timbuktu)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15~16세기 황금과 소금, 그리고 필사본으로 명성을 떨쳤던 팀북투는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사하라를 건너온 대상들이 페스의 학자들과 지식을 주고받던 통로이기도 했습니다. 크사르의 흙벽이 상품을, 자위야가 신앙과 학문을 실어 날랐다면, 팀북투의 도서관은 그렇게 오간 지식이 마지막으로 쌓이던 저수지였던 셈입니다.
▶ 손끝에서 완성되는 기하학의 신앙, 젤리즈(Zellige: A geometric faith finished by hand) : 모로코의 궁전과 모스크, 분수대를 장식한 색색의 모자이크 타일 앞에 서면 누구라도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손으로 하나하나 깎아낸 유약 타일 조각을 이어 붙여 별과 팔각형, 육각형이 끝없이 반복되는 무한 문양을 만들어내는 이 예술을 모로코인들은 '젤리즈(زليج, Zellige)'라 부릅니다. 아랍어 동사 '잘라자(زَلَجَ, 미끄러지다)'에서 파생된 이름처럼, 매끄럽게 유약을 입힌 표면이 이 공예의 정체성을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이슬람 미술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형상을 묘사하는 것을 꺼렸기에, 장인들은 대신 자와 컴퍼스만으로 무한히 확장되는 기하학 문양 속에서 신의 질서를 표현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젤리즈 산업의 심장부는 예나 지금이나 페스입니다. 이 도시 인근에서만 채취되는 회색 점토가 타일 제작에 최적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10세기 무렵부터 페스는 자연스럽게 젤리즈 장인들의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특히 13~15세기 마린 왕조(Marinid dynasty) 시기에 세워진 부이나니야 마드라사(Bou Inania Madrasa)와 알아타린 마드라사(Al-Attarine Madrasa)는 젤리즈 예술이 도달한 정점으로 꼽힙니다. 장인들은 진흙을 빚고 구워낸 뒤 '멘카시(Menqash)'라는 날카로운 망치와 끌만으로 타일 하나하나를 별 모양, 마름모 모양으로 정교하게 깎아냅니다. 숙련된 장인 한 명이 평생 다룰 수 있는 문양의 종류가 채 몇백 가지를 넘지 않을 만큼 고도의 도제 수업을 요구하는 공예입니다.
젤리즈의 미학은 페스와 마라케시의 궁전 담장을 넘어 대서양 건너 스페인 안달루시아(Andalusia)까지 뻗어나갔습니다. 이슬람 왕조가 이베리아반도에서 물러난 뒤에도 이 기하학적 감수성은 모로코 땅에서 오롯이 이어져, 오늘날 라바트(Rabat)의 우다이아 카스바(Kasbah of the Udayas)를 비롯한 여러 왕실 건축물 벽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라바트 구시가와 신도심이 함께 어우러진 경관은 '공유 유산으로서의 라바트, 현대적 수도이자 역사도시(Rabat, Modern Capital and Historic City: a Shared Heritage)'라는 이름으로 2012년 모로코의 9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으며, 프랑스 보호령 시기의 근대 도시계획과 이슬람 전통 건축이 한 도시 안에서 충돌 없이 공존하는 독특한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기하학 문양에 정성을 다해 손끝의 신앙을 새겨 넣는 태도는 한국의 나전칠기(螺鈿漆器, Najeon Chilgi) 장인들의 손길과도 닮아 있습니다. 자개를 실처럼 가늘게 오려 옻칠 위에 한 조각씩 박아 넣는 이 공예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그 명맥을 잇고 있으며, 완성까지 수십 번의 옻칠과 연마를 거듭해야 하는 인내의 미학이라는 점에서 젤리즈 장인의 작업 방식과 나란히 놓아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재료는 조개껍데기와 진흙으로 전혀 다르지만, 작은 조각 하나하나가 모여 거대한 무늬를 완성한다는 발상만큼은 두 문명이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길을 걸어온 셈입니다.
▶ 천천히 쌓아 올린 모로코의 시간(Conclusion: The Time of Morocco Built Step by Step) : 자위야의 기도 소리, 크사르의 흙벽, 젤리즈의 별 무늬를 따라 걸어본 이번 여정은, 결국 모로코가 이질적인 것들을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포개어 온 역사였음을 말해줍니다. 아마지그와 아랍, 안달루시아와 사하라, 신앙과 학문, 무역과 예술이 어느 것 하나 급하게 뒤섞이지 않고 수백 년의 시간 속에서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모로코를 이루었습니다.
قطرة بقطرة يحمل الواد
Drop by drop, the river swells.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이 결국 강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