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두 모스크의 수호자(Custodian of the Two Holy Mosques), 사우디아라비아(Kingdom of Saudi Arabia)로 떠나보겠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은 공식적으로 ‘두 성지의 수호자(Custodian of the Two Holy Mosques)’라는 칭호로 불립니다. 매년 전 세계 무슬림 수백만 명이 순례를 위해 메카(Mecca)와 메디나(Medina)로 모여드는 풍경은, 오직 사우디아라비아만의 것이죠. 1744년, 나즈드의 토호 무함마드 빈 사우드(Muhammad bin Saud, 1679~1765)와 종교 개혁가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Muhammad ibn Abd al-Wahhab, 1703~1792)가 디리야(Diriyah)에서 만나 협력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후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Abdulaziz Ibn Saud, 1875~1953)의 통합을 거쳐 오늘날의 왕국으로 이어졌습니다. 윌프레드 테시거(Wilfred Thesiger, 1910~2003)의 『아라비아의 모래(Arabian Sands, 1959)』를 옆구리에 끼고, 룹알할리(Rub' al Khali)의 붉은 모래언덕으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여인의 손끝에서 태어난 사막의 무늬, 알카트 알아시리(A Desert's Pattern Born From a Woman's Fingertips, Al-Qatt Al-Asiri) : 사우디아라비아 남서부,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산악 지대 아시르(Asir) 지방에 가면 낯선 풍경을 만납니다. 진흙과 돌로 쌓은 전통 가옥의 내벽마다 붉고 노랗고 검은 삼각형과 지그재그 문양이 촘촘히 그려져 있습니다. 이것이 알카트 알아시리(Al-Qatt Al-Asiri, 여성들이 천연 안료로 실내 벽면을 장식하는 아시르 지방 고유의 회화 전통)입니다. 2017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면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유네스코는 이를 아시르 지역의 전통적인 여성 실내 벽장식으로 설명하며, 기하학적 형태와 상징을 활용해 주로 손님을 맞는 방의 벽면을 장식하는 전통이라고 소개합니다.
붓 대신 닭 깃털이나 나뭇가지를 씁니다. 안료는 시장에서 사 오는 게 아니라 산에서 캐낸 광물과 식물을 손수 갈아 만듭니다. 기하학 문양 사이사이에는 태양과 나무, 낙타의 발자국이 추상화되어 숨어 있는데, 이걸 읽어내려면 그 집 여성 어른에게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문양의 배열 규칙이 마을마다, 심지어 가문마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죠.
▷ 어머니에서 딸로, 붓이 이어지다(From Mother to Daughter, the Brush Passes On) : 이 예술의 흥미로운 점은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전승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남자들이 집을 짓고 나면, 벽에 숨을 불어넣는 일은 그 집의 여성들 몫이었습니다. 결혼식이나 명절을 앞두고 어머니와 딸, 이웃 여성들이 모여 벽화를 새로 그리는 풍경은 리잘 알마아(Rijal Almaa) 같은 아시르의 산간 마을에서 지금도 이어집니다. 말로 설명하는 수업 시간 같은 건 없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다가 손을 대보고, 틀리면 다시 지우고 그리는 방식으로 기술이 전달됩니다. 유네스코 역시 관찰과 실습을 알카트 알아시리 전승의 핵심적인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만 과거에는 여성들만 이 전통을 실천했지만, 오늘날에는 남녀 예술가와 디자이너, 실내디자이너, 건축가 등도 이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한국의 제주 해녀 문화(Culture of Jeju Haenyeo, 물질을 생업으로 삼아온 제주도 여성 잠수 공동체의 문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떠오릅니다. 바다와 산, 물질과 벽화라는 전혀 다른 배경을 가졌지만, 여성들이 공동체 안에서 기술과 지혜를 구술과 실습으로만 전수해 온 방식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제주 해녀 문화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으며, 세대 간 지식과 기술의 전승이라는 측면에서도 알카트 알아시리와 비교해 볼 만합니다.
▶ 칼끝에서 울리는 시와 북소리, 알아르다 알나즈디야(Poetry and Drums Ringing From the Blade's Edge, Alardah Alnajdiyah) : 매년 9월 23일, 사우디아라비아 국경일이 되면 리야드 도심 광장은 온통 초록빛 옷자락으로 물듭니다. 남성들이 두 줄로 마주 서서 칼을 어깨 위로 세우고, 한 명이 시를 읊으면 나머지가 후렴처럼 화답합니다. 북소리가 점점 빨라지고, 발을 구르는 리듬도 따라 빨라집니다. 이것이 알아르다 알나즈디야(Alardah Alnajdiyah, 검과 북, 즉흥시가 어우러지는 나즈드 지방의 남성 군무)로, 201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이름을 올린, 사우디아라비아를 상징하는 전통 공연이죠.
알아르다 알나즈디야는 전쟁과 전투를 앞둔 공동체의 사기를 북돋우는 전통과 관련해 발전해 온 공연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에는 결혼식과 국경일, 출생과 졸업, 국가적·지역적 주요 행사 등 다양한 기념행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리야드를 방문했을 당시 칼을 받아 들고 어색하게 스텝을 밟던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그 어색함이야말로 이 춤이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깊이를 지녔다는 반증이었습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알아르다는 춤과 북 연주, 시 낭송이 결합된 전통 공연으로, 종교 축일과 결혼식, 출생과 졸업, 국가적·지역적 주요 행사 등 다양한 기념행사에서 연행됩니다.
▷ 디리야에서 태어나 사막을 넘다(Born in Diriyah, It Crossed the Desert) : 이 춤의 뿌리를 따라가면 리야드 근교의 작은 마을 디리야(Diriyah)에 닿습니다. 1727년,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가 이곳을 수도로 삼아 제1차 사우디 국가를 세웠고, 이후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Abdulaziz Ibn Saud, 1875~1953)가 1932년 오늘날의 왕국을 통일하기까지 이 가문의 역사적 뿌리는 늘 디리야에 있었습니다.
진흙 벽돌로 쌓은 궁전과 요새가 남아 있는 아트투라이프 지구(At-Turaif District in ad-Diriyah)는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왕조의 탄생과 나즈드식 건축, 그리고 알아르다가 태어난 사회적 배경을 한 장소에서 보여줍니다. 아트투라이프 지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2010년 등재되었으며, 등재 기준은(iv), (v), (vi)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으로 눈을 돌려보면 비슷한 결의 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말라위와 모잠비크, 잠비아의 체와족이 함께 전승해 온 굴레 왐쿨루(Gule Wamkulu, 가면을 쓰고 추는 의례 춤으로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입니다. 지역도 다르고 신앙 배경도 다르지만, 춤이 단순한 여흥을 넘어 공동체의 규율과 역사를 몸으로 각인시키는 장치로 쓰인다는 점은 두 대륙 모두 다르지 않았습니다. 굴레 왐쿨루는 실제로 말라위·모잠비크·잠비아의 체와족 사이에서 전승되는 의례적 춤으로,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습니다.
▶ 지팡이와 북이 만든 축제의 리듬, 알메즈마르(A Festival Rhythm Made by Sticks and Drums, Almezmar) : 나즈드에 알아르다가 있다면, 서부 헤자즈(Hejaz) 지방에는 알메즈마르(Almezmar, 지팡이를 들고 북소리에 맞춰 두 줄로 춤추는 헤자즈 지방 고유의 예술)가 있습니다.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 춤은 메카와 메디나, 그리고 홍해를 낀 항구 도시 제다 인근에서 오랫동안 결혼식과 축제를 장식해 왔습니다. 무용수들은 긴 흰옷을 입고 마주 보는 두 대열을 이루며, 북소리가 들리면 각 대열의 지도자가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부릅니다. 이어 대열이 서로 화답하듯 노래하고, 두 사람이 중앙으로 나와 큰 지팡이를 빠르고 우아하게 돌리며 춤을 춥니다. 유네스코는 알메즈마르가 가족 및 국가 행사, 종교 축일, 정부 행사 등에서 행해지는 헤자즈 공동체의 전통적인 집단 공연이라고 설명합니다.
헤자즈는 순례객이 몰려드는 길목이었던 탓에 아프리카와 인도양 무역로의 리듬이 뒤섞여 들어온 지역입니다. 그래서인지 알메즈마르의 북 박자에는 순수하게 아라비아반도 내륙 음악이라고만 설명하기 힘든, 살짝 이국적인 결이 느껴집니다. 실제로 이 춤이 자리 잡은 무대 중 하나가 홍해 연안의 옛 항구 도시, 역사 지구 제다(Historic Jeddah, the Gate to Makkah)입니다. 산호석으로 쌓은 4층 저택들과 좁은 골목이 그대로 남은 이 지역은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순례자와 상인이 뒤섞이던 옛 활기가 지금도 골목 구석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 대서양 건너에서도 울리는 북소리(A Drumbeat That Echoes Across the Atlantic Too) : 지팡이와 북이 만나 춤이 되는 방식은 사우디아라비아만의 발명이 아닙니다. 앞서 소개한 굴레 왐쿨루처럼, 사람이 모여 리듬을 나눠 갖는 방식은 대륙을 가리지 않고 등장합니다. 다만 알메즈마르가 특별한 이유는, 이 춤이 국경일이나 왕실 행사 같은 공적인 자리에서 여전히 현역으로 쓰인다는 데 있습니다. 박물관 유리 상자 안에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결혼식 하객들의 발을 들썩이게 만드는 현재진행형 문화라는 뜻입니다. 유네스코 역시 알메즈마르가 가족 행사와 국가 행사, 종교 축일, 정부 행사 등 다양한 현대의 축제와 공식적인 자리에서 행해진다고 설명합니다.
▶ 지식이 빛이 되는 순간!(The Moment Knowledge Becomes Light) : 붓과 안료, 칼과 시, 지팡이와 북. 이 세 갈래를 따라 걷다 보면 한 가지 공통된 장면과 마주치게 됩니다. 종이나 화면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손을 거쳐야만 다음 세대로 건너갈 수 있는 지식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시르의 벽화가 어머니의 손끝에서 딸의 손끝으로, 디리야의 칼춤이 광장의 발구름에서 다음 광장의 발구름으로, 헤자즈의 지팡이춤이 한 결혼식장에서 다음 결혼식장으로 옮겨 다니는 동안,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나라의 영혼도 함께 빛나고 있습니다.
العلم نور
Al-'Ilm Noor
지식은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