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검은 사람들의 땅(Land of the Blacks, Bilād al-Sūdān)’, 수단(Sudan)으로 떠나보겠습니다. 수단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와 아랍 세계가 만나는 독특한 문화적 경계입니다. 국토를 관통하는 나일강(Nile River)을 따라 고대 누비아(Nubia)와 쿠시(Kush) 문명이 꽃피었으며, 오늘날에도 사막 한가운데 고대 왕국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수단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놀랍게도 수단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피라미드의 나라입니다. 특히 메로에(Meroë)에는 쿠시 왕국의 왕과 왕비를 위해 세워진 수많은 소형 피라미드가 사막을 배경으로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게벨 바르칼과 나파타 지역의 유적(Gebel Barkal and the Sites of the Napatan Region, 2003) 은 고대 이집트와 쿠시 왕국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역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입니다. 하지만 수단의 진정한 매력은 피라미드에만 있지 않습니다. 나일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농경문화, 누비아의 전통, 아랍·이슬람 문화, 아프리카 토착문화가 오랜 세월 만나면서 독특한 정체성을 만들어냈습니다. 고대 쿠시 왕국의 피라미드와 나일강을 따라, 위대한 아프리카 문명을 만나러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자바나, 커피 한 잔에 담긴 수단(Jabana, Sudan in a Cup of Coffee) : 독자 여러분이 수단 사람의 집에 초대받았다고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디선가 고소한 향이 퍼집니다. 숯불 위에서 커피콩을 볶는 냄새입니다. 자바나(Jabana)는 수단의 전통적인 커피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커피를 준비하고 내고 마시는 과정은 손님을 맞이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회적 행위와 연결됩니다. 특히 수단 여러 지역에서 널리 행해지는 전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자바나는 커피를 가리키기도 하고 전통적인 커피 주전자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커피를 만드는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먼저 숯불을 이용해 생두를 직접 볶습니다. 볶은 커피콩은 절구와 공이를 이용해 곱게 빻은 뒤 물과 함께 끓입니다. 지역과 개인의 취향에 따라 생강이나 계피, 정향 등의 향신료를 넣기도 합니다. 수단의 전통적인 자바나에서는 커피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볼거리입니다. 커피콩을 볶고, 빻고, 끓이는 동안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커피가 완성되는 순간까지 손님과 주인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커피의 맛만이 아닙니다. 자바나의 핵심은 커피를 만드는 시간과 그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볶은 커피콩을 절구에 넣고 빻는 소리, 숯불의 열기, 커피 향이 퍼지는 순간은 모두 사람을 한자리에 머물게 합니다.
자바나는 수단에서만 갑자기 만들어진 독특한 커피문화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수단은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를 비롯한 동아프리카와 홍해 연안의 커피문화권과 역사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커피를 볶고 빻아 끓이는 방식 역시 이 넓은 문화권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다만 수단에서는 숯불로 커피콩을 볶고, 이를 빻아 끓여 손님에게 내는 방식이 일상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독특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수단에서는 커피를 만드는 사람을 시트 알자바나(sitt al-jabana)라고 부르는 표현도 사용됩니다. 말 그대로 자바나를 만드는 여성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커피가 가정 안에서만 소비되는 음료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회적 매개가 되어왔음을 보여줍니다. 자바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수단 사람들이 무엇을 마시는지를 알아보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누구와 함께 앉는지, 어떻게 손님을 맞이하는지, 그리고 음료를 매개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지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 토브, 천 한 장으로 드러나는 여성의 정체성(Toub, Identity Wrapped in a Single Cloth) : 두 번째 키워드는 토브(Toub 또는 Tobe)입니다. 수단 여성의 전통 복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의복입니다. 토브는 대체로 길고 넓은 직물 한 장을 몸에 두르고 머리 주변까지 감싸는 방식으로 착용합니다. 유네스코에 제출된 자료는 토브를 수단 여성의 전통 의복으로 소개하며, 면·실크·쉬폰 등의 긴 천을 몸에 두르고 머리에 걸쳐 오른쪽 어깨에 넘기는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길이는 약 4.5미터에 이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토브를 보고, 인도의 사리(sari)를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토브는 수단 사회에서 단순히 몸을 가리는 천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색상과 소재, 직물의 품질, 착용 방식은 개인의 취향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상황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유네스코 신청자료는 토브의 종류와 소재, 색상이 착용하는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며, 다양한 자수와 색채의 디자인이 전통과 유행의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하죠. 그렇다고 모든 수단 여성이 언제나 똑같은 토브를 착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단은 매우 넓고 다양한 사회이며, 지역과 공동체에 따라 여성의 복식과 토브의 사용 방식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일부 여성은 일상생활에서 토브를 착용하는 반면, 다른 여성들은 아바야(abaya)나 히잡(hijab)과 같은 다른 형태의 복식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도시와 농촌, 세대와 사회적 배경에 따라서도 변화가 나타납니다.
토브가 흥미로운 이유는 전통과 현대가 한 장의 천 안에서 동시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전통을 이어가는 의복이면서도 새로운 직물과 색상, 디자인이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실제로 현대 수단의 토브는 화려한 색상과 다양한 직물, 장식적 디자인으로 발전했습니다. 어떤 여성에게 토브는 일상복이지만, 다른 여성에게는 결혼식이나 종교행사와 같은 특별한 날을 위한 옷이 될 수 있습니다. 옷이 단순한 패션을 넘어 개인의 사회적 위치와 정체성을 표현하는 언어가 되는 셈입니다. 남성의 전통복식인 잘라비야(Jalabiya 또는 Jallabiya)도 수단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복식입니다. 길고 헐렁한 형태의 옷으로, 터번이나 다른 머리 장식과 함께 착용하는 모습이 수단 남성의 전통적인 이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단 남성의 복식 역시 지역과 계층, 종교적 배경과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박물관에 보관된 오래된 유물보다 오히려 한 사람의 옷차림이 오늘날 수단 사회의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 알몰리드, 거리 전체가 축제장이 되다(Al-Molid, When the Whole Street Becomes a Festival) : 세 번째 키워드는 알몰리드(Al-Molid)입니다. 이 말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예언자 무함마드의 탄생을 기념하는 행사를 가리킵니다. 수단에서 열리는 알몰리드는 대규모 행렬과 종교적 노래, 기도, 춤, 음식과 놀이가 결합된 독특한 공동체 행사로 발전했습니다. 유네스코는 2023년 ‘수단에서의 예언자 무함마드 탄생일 행렬과 축하 행사(Procession and celebrations of Prophet Mohammed's birthday in Sudan)’를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했습니다.
행사는 이슬람력 세 번째 달인 라비 알아왈(Rabi' al-Awwal)에 열립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행렬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탄생일을 기준으로 12일 전부터 시작됩니다. 수천 명의 남녀와 어린이, 지역 공동체 대표, 공무원, 음악대 등이 행렬에 참여하고, 종교적 노래와 신비주의적 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수피(Sufi) 전통에 기반한 기도와 의례적인 춤도 행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행렬이 도착하는 곳은 알몰리드 광장입니다. 광장은 조명과 깃발로 장식되고,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고 공연을 즐기며 음식을 나눕니다. 아이들에게 사탕과 장난감을 사주는 모습도 이 행사의 풍경 가운데 하나입니다.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 행사가 동시에 가족과 이웃이 만나고 지역의 음식을 즐기는 사회적 공간으로 기능하는 것입니다. 유네스코는 서로 다른 수피 교단이 연대감을 표현하는 기회인 동시에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행사라고 설명합니다.
알몰리드의 또 다른 특징은 전승 방식입니다. 이 문화는 책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 안에서 보고 배우고, 행렬과 축제에 직접 참여하면서 익힙니다. 노래와 춤, 기도와 행렬의 방식은 실제 행사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집니다. 유네스코 역시 이 문화가 가족과 춤 공동체, 행사 참여, 교육과 대중매체 등을 통해 전승된다고 설명합니다. 수단의 문화가 하나의 종교나 하나의 민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수단의 무형문화유산에 누비아, 기독교, 이슬람 문명의 요소가 함께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수단의 문화는 서로 다른 역사와 종교, 공동체가 오랜 시간 접촉하면서 형성되었습니다. 알몰리드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수단의 종교축제 하나를 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수천 명의 사람이 하나의 공간에 모이고, 각자의 공동체와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함께 행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살펴보는 일입니다. 행사가 끝나면 사람들은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보낸 시간과 경험은 다음 해의 축제로 다시 이어집니다.
▶ 수단을 기억하게 하는 세 가지 키워드(Three Words That Make Sudan Unforgettable) : 독자 여러분, 수단이라는 이름을 다시 만났을 때 Jabana, Toub, Al-Molid라는 세 단어를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수단은 피라미드와 사막만 있는 나라에서 한 걸음 더 가까워집니다. 사람들이 커피를 나누고, 옷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종교와 공동체의 행사에 함께 참여하는 구체적인 삶의 공간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자바나는 커피와 환대의 문화이고, 토브는 의복과 정체성의 문화이며, 알몰리드는 종교와 공동체의 축제입니다. 그런데 세 단어를 나란히 놓으면 공통점이 하나 보입니다. 수단의 문화는 박물관의 유리장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마시고, 입고, 참여하는 생활 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الضيف ضيف الله
The guest is the guest of God.
손님은 하느님의 손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