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중동의 심장(Heart of the Middle East), 시리아(Syria)로 떠나보겠습니다. 유럽과 아시아, 지중해와 메소포타미아가 만나는 시리아는 수천 년 동안 수많은 문명이 오가며 흔적을 남긴 교차로입니다. 다마스쿠스(Damascus)는 고대부터 이어져 온 도시의 시간 위에 로마와 비잔티움, 이슬람의 역사를 켜켜이 쌓았고, 알레포(Aleppo)는 동서 교역로의 교차점에서 히타이트부터 오스만 제국까지 서로 다른 문명의 흔적을 품었습니다. 시리아의 독특함은 무엇보다 서로 다른 문명이 충돌하고 교체된 것이 아니라, 한 도시와 유적 안에서 겹겹이 공존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 팔미라(Palmyra)에서는 그리스·로마의 건축기술에 현지 전통과 페르시아의 영향이 결합되었고, 보스라(Bosra)의 검은 현무암 건축물에서는 나바테아·로마·비잔티움·이슬람의 시간이 한눈에 포개집니다. 다마스쿠스의 골목길을 지나, 알레포 성채에 올라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쿠두드 할라비야, 알레포의 목소리가 살아나는 순간!(Al-Qudud al-Halabiya, When Aleppo's Voice Comes Alive) : 첫 번째 키워드는 쿠두드 할라비야(القدود الحلبية, Al-Qudud al-Halabiya, 알레포 전통음악)입니다. 유네스코는 쿠두드 할라비야를 2021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했습니다. 알레포에서 발전한 전통음악으로, 일정한 선율에 종교적이거나 오락적인 노래를 얹어 부르며, 가사는 행사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숙련된 가수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가사에 즉흥적으로 반영하기도 합니다. 유네스코 역시 이를 알레포의 전통음악으로 설명하며, 고정된 선율 위에 행사에 따라 달라지는 가사를 부르는 전통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음악을 이해하려면 알레포라는 도시를 먼저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부터 여러 교역로가 만났던 알레포에는 시장과 종교시설, 성채와 주거지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유네스코가 1986년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고대 도시 알레포는 2천년기 BCE부터 여러 교역로가 교차한 도시이며, 성채와 대모스크, 마드라사, 궁전, 카라반사라이 등이 하나의 도시 조직을 이룹니다. 그래서 쿠두드 할라비야는 박물관 진열장에 놓아둘 수 있는 유물이 아닙니다.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 귀 기울여 듣고, 또 다른 누군가 그 전통을 다음 세대에 전할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문화유산입니다.
한국의 김장(Kimjang, 김치의 제조와 나눔)도 이런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2013년 김장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하면서 김치를 만드는 기술만이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가 함께 만들고 나누는 실천에 주목했습니다. 알레포에서는 노래가 공동체의 기억을 이어 주고, 한국에서는 음식이 그 역할을 합니다. 하나는 소리이고 하나는 맛입니다. 그러나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문화의 방식은 놀라울 만큼 비슷합니다.
▶ 알워르드 앗디마슈키, 장미 한 송이에 담긴 시리아의 봄(Al-Ward al-Dimashqi, Syria's Spring in a Single Rose) : 두 번째 키워드는 알워르드 앗디마슈키(الورد الدمشقي, Al-Ward al-Dimashqi, 다마스쿠스 장미)입니다. 한국에서는 흔히 ‘다마스크 장미(Damask Rose)’라고 부릅니다. 유네스코의 등재명은 ‘알마라 지역의 다마스쿠스 장미와 관련된 관습 및 장인 기술(Practices and craftsmanship associated with the Damascene rose in Al-Mrah)’이며, 2019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올랐습니다. 무대는 다마스쿠스 주변 농촌 지역에 있는 알마라(Al-Mrah) 마을입니다. 이곳에서는 농부와 가족들이 장미를 재배하고, 꽃에서 정유와 전통 약재 등을 만드는 지식을 이어 갑니다. 마을 공동체와 가족들은 매년 장미 축제를 열어 수확의 계절을 함께 기념합니다. 장미는 생각보다 실용적인 식물입니다. 향료의 원료가 되고, 장미수와 전통적인 약용 재료로 활용되며, 음식에도 사용됩니다. 꽃이 피는 계절은 곧 농촌의 생활 리듬이 바뀌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유네스코가 주목한 것은 장미라는 식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재배하고 수확하고 가공하며 전승하는 사람들의 지식과 기술입니다.
▶ 알레포 가르 비누, 비누 한 조각에 압축된 알레포의 역사(Craftsmanship of Aleppo Ghar Soap, Aleppo's History Condensed into a Bar of Soap) : 세 번째 키워드는 알레포 가르 비누(صابون غار حلبي, Aleppo Ghar soap)입니다. 알레포 가르 비누는 올리브유와 월계수유를 사용하는 전통적인 비누 제작 기술입니다. 유네스코는 ‘알레포 가르 비누 제작의 장인정신(Craftsmanship of Aleppo Ghar soap)’을 2024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하며, 이 전통이 현지에서 생산되는 올리브유와 월계수유를 바탕으로 한 지식과 기술을 결합한다고 설명합니다.
비누의 제작은 의외로 느립니다. 원료를 섞고 가열한 뒤 틀에 부어 굳히고, 다시 잘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숙성합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전통적인 비누는 가족 이름을 손으로 찍어 표시하며, 비누 덩어리를 쌓아 6~9개월 동안 건조시키기도 합니다. 알레포의 비누가 특별한 까닭은 그 안에 도시 주변의 자연과 인간의 기술이 동시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올리브나무에서 기름을 얻고, 월계수에서 또 다른 기름을 얻습니다. 장인은 배합과 제조 과정을 익히고, 그 기술은 가족과 공동체를 통해 이어집니다.
유네스코가 이 유산을 설명하면서 고대 도시 알레포를 관련 세계유산으로 함께 제시한 것도 흥미롭습니다. 물건을 만드는 기술과 그것을 사고파는 도시의 공간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알레포라는 도시의 역사와 비누 제작이라는 생활 기술이 서로 다른 층위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생태계 안에서 연결되어 있는 셈입니다. 시리아에서는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이 특히 절박합니다. 유네스코는 2013년 시리아의 6개 세계유산을 모두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올렸으며, 2026년에도 이들 유산의 보존 상태와 위험요소에 대한 검토가 이어졌습니다.
▶ 오래된 나라가 오늘의 독자에게 건네는 말(The Old Country Speaks to Today's Reader) : 다마스쿠스의 오래된 골목에서는 도시가 얼마나 긴 시간을 견뎌 왔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알레포에서는 노래와 비누를 통해 도시의 기억이 사람의 목소리와 장인의 손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만납니다. 다마스쿠스 주변에서는 장미가 다시 피어납니다. 시리아를 여행하는 사람이 만나게 될 가장 오래된 유산은 어쩌면 돌로 만든 신전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부르는 노래일 수도 있고, 장미에서 향을 뽑는 손길일 수도 있으며, 올리브유와 월계수유를 섞어 비누를 만드는 장인의 기술일 수도 있습니다. 오래된 나라의 역사는 그렇게 오늘의 생활 속에서 다시 말을 걸어옵니다.
الدنيا دولاب
Life is a wheel that turns.
세상은 돌고 도는 바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