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황금의 도시(The City of Gold) 두바이를 품은 아랍에미리트(United Arab Emirates)로 떠나보겠습니다. 일곱 개의 토후국(Emirates)이 1971년 12월 2일 하나의 연방으로 출범한 이 나라는, 오늘날 200개가 넘는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다문화 사회이기도 합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아부다비(Abu Dhabi)는 진주 채취와 어업에 의존하던 작은 도시였습니다. 1958년 석유가 발견됐고, 이는 아랍에미리트를 빠르게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동력이 됐습니다. 오늘날 아랍에미리트는 세계 최고층 건축물인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를 비롯한 초고층 건축물이 들어선 현대 도시국가로 급부상하였습니다.
2011년 등재된 알아인 문화유적지구(Cultural Sites of Al Ain, 2011)는 급격한 현대화 이전부터 이어져 온 정주 문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특히 철기시대의 아플라즈(aflaj) 관개 체계는 지하수원을 이용해 물을 끌어오는 정교한 기술의 사례입니다. 아라비안 나이트(One Thousand and One Nights)를 옆구리에 끼고, 5,000년에 걸친 오아시스 문화를 찾아 아랍에미리트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일곱 개의 왕관을 하나로 묶다, 이티하드(Ittihad, the Word That Bound Seven Crowns Into One) : 이티하드(Ittihad, اتحاد)는 아랍어로 '연합', '통합', '결합' 등을 뜻합니다. 아랍에미리트의 공식 명칭 United Arab Emirates 역시 '아랍의 토후국들이 연합한 국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죠. 그러나, 아랍에미리트 연방은 처음부터 일곱 토후국이 하나의 국가를 만들기로 합의한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1971년 12월 2일은 단순히 새로운 국기가 등장한 날이 아니라, 서로 다른 통치 체제와 이해관계를 가진 토후국들이 협상과 타협을 거쳐 하나의 헌정 질서 안으로 들어간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68년 영국이 걸프 지역에서 철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뒤, 아부다비의 자이드와 두바이의 라시드가 먼저 협력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1968년 2월 두 사람의 회담을 계기로 다른 토후국까지 참여하는 협상이 진행됐고, 당시에는 오늘날의 일곱 토후국뿐 아니라 바레인과 카타르까지 포함한 더 넓은 연합 구상도 논의됐습니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서 여러 정치적·헌법적 문제가 정리되지 않으면서 바레인과 카타르는 별도의 국가로 독립했고, 여섯 토후국이 연방을 출범시켰습니다. 이듬해 라스알카이마가 합류하면서 현재의 일곱 토후국의 연방이라는 형태가 완성됐습니다.
▷ 감옥에서 태어난 통합과 협상 테이블에서 태어난 통합(A Union Born in Prison, and a Union Born at the Negotiating Table) : 이티하드라는 개념을 다른 대륙의 역사와 나란히 놓아보면 흥미로운 대비가 드러납니다. 아프리카 대륙 남쪽 끝,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로벤 섬(Robben Island)은 199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곳입니다. 이곳에는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를 비롯한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가들이 오랫동안 수감됐던 감옥이 있습니다. 로벤 섬은 단순한 수감 시설을 넘어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와 그에 맞선 투쟁, 그리고 이후 민주주의와 화해를 향한 남아프리카의 역사를 상징하는 장소가 됐습니다.
아랍에미리트의 연방 형성 과정은 이와는 매우 다른 궤적을 보였습니다. 억압적인 인종분리 체제를 끝내고 민주국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과 희생을 경험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달리, 아랍에미리트의 연방은 통치자들의 협상과 정치적 합의를 중심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같은 '통합'이라는 결과라도 그 길은 서로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회에서는 감옥과 저항의 역사가 통합의 기억을 만들고, 또 다른 사회에서는 협상과 타협의 과정이 국가의 탄생을 이끌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역사적 경로를 비교해 보면 '연합'이라는 말 안에 얼마나 다양한 경험이 담길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 커피 주전자 하나로 시작되는 회의, 마즐리스(A Meeting That Begins With a Coffee Pot) : 마즐리스(Majlis, مجلس)는 아랍어로 '앉는 곳', '모임의 자리'라는 뜻을 지닌 말입니다. 그런데 아랍에미리트를 비롯한 걸프 지역 사회에서 마즐리스는 단순한 응접실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카펫과 방석을 마련한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 지역의 일을 논의하고, 소식을 주고받고, 손님을 맞이하며, 분쟁을 조정하고, 결혼식이나 조문과 같은 공동체의 중요한 일을 함께 나누는 장소였습니다. 커피와 차 같은 음료를 준비해 손님을 대접하는 관습도 이 공간의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마즐리스는 특정 계층만을 위한 폐쇄적인 공간이라기보다 다양한 연령과 공동체 구성원이 참여해 지식과 예절을 배우는 장소로 기능해 왔습니다. 공동체의 어른들은 자연환경, 족보, 부족의 역사와 같은 지식을 전달했고, 종교 지도자와 재판을 담당하는 인물들은 분쟁과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마즐리스는 사람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갈등을 조정하고, 다음 세대에 공동체의 지식과 예절을 전달하는 사회적 공간이었습니다.
▷ 2015년, 세계가 인정한 사막의 공동체 공간(2015, When the World Recognised a Desert Community Space) : 마즐리스의 문화적 가치는 201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에 등재되면서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습니다.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카타르 네 나라가 공동으로 신청한 유산의 공식 명칭은 '마즐리스, 문화적·사회적 공간(Majlis, a cultural and social space)'입니다. 네 나라의 마즐리스에는 지역별 차이가 있지만, 공동체가 모여 문제를 해결하고 손님을 맞이하며 구전 전통을 이어간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특히 유네스코는 여성들의 마즐리스와 마즐리스가 구전 설화, 민요, 나바티 시(Nabati poetry) 등의 구전 유산을 전승하는 역할도 강조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관찰하면서 공동체의 예절과 윤리, 대화와 경청의 태도를 자연스럽게 익혔습니다. 오늘날 두바이나 아부다비 같은 현대 도시의 응접 공간에서도 마즐리스의 형식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초고층 빌딩과 최첨단 시설이 들어선 도시에서도 손님을 맞이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를 권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전통과 현대가 반드시 서로를 밀어내는 관계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 첨탑과 첨탑 사이에 다리를 놓는 말, 타사무흐(Tasamuh, the Word That Builds Bridges Across Faiths) : 타사무흐(Tasamuh, تسامح)는 일반적으로 '관용', '너그러움', '포용적 태도' 등을 뜻하는 아랍어 표현입니다.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2010년대 이후 이 개념을 국가 정책과 사회적 메시지의 중요한 축으로 강조해 왔습니다. 2016년에는 '관용 담당 국무장관(Minister of State for Tolerance)' 직책이 처음 설치됐고, 2020년에는 관련 부처가 '관용과 공존부(Ministry of Tolerance and Coexistence)'로 개편됐습니다. 또한 칼리파 빈 자이드 알 나흐얀 대통령은 2019년을 '관용의 해(Year of Tolerance)'로 선포했습니다. 그해 2월 4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부다비를 방문해 알아즈하르(Al-Azhar)의 대이맘 아흐마드 알타예브(Ahmad Al-Tayyeb)와 함께 '세계 평화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인간 형제애에 관한 문서(Document on Human Fraternity for World Peace and Living Together)'에 서명했습니다. 문서는 종교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대화와 상호 이해, 평화로운 공존을 강조했습니다.
이 만남에서 영감을 받은 대표적인 공간이 아부다비 사디야트 문화지구의 아브라함 패밀리 하우스(Abrahamic Family House)입니다. 이 복합 시설에는 이슬람 사원, 교회, 유대교 회당이 각각 하나씩 들어섰으며, 공동 공간에서는 대화와 학습이 이뤄집니다. 2023년 2월 16일 공식 개관했고, 일반 방문객에게는 3월 1일부터 문을 열었습니다. 세 종교의 예배 공간을 하나의 복합 시설 안에 나란히 배치한 구성은 아랍에미리트가 세계에 보여주고자 하는 '공존'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 문자 하나가 지식의 문턱을 낮춘 나라의 이야기(A Country Where One Alphabet Lowered the Barrier to Knowledge) : 관용과 포용이라는 가치를 다른 문화권의 유산과 견주어보면 한국의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 Hunminjeongeum Haerye)이 떠오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446년 간행된 책으로,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의 원리와 사용법을 설명한 해설서입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는 1997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등재됐습니다. 유네스코는 이 책이 1443년 완성된 한국 문자의 창제 원리와 사례, 그리고 집현전 학자들이 작성한 해례와 정인지의 서문 등을 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신분과 교육 기회에 따라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정도가 달랐던 조선시대에 누구나 익힐 수 있는 문자를 만들었다는 점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지식과 소통의 문턱을 낮추는 문제를 생각하게 합니다. 물론 훈민정음과 아랍에미리트의 타사무흐는 역사적 맥락과 해결하려는 사회적 문제가 전혀 다릅니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길을 넓힌다는 관점에서 두 유산을 나란히 바라보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의 사례를 비교하면 '포용'이라는 가치를 하나의 방식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여러 역사적 경험 속에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계곡에 나무 한 그루 남지 않는 이유(Why Not a Single Tree Would Remain in the Valley) : 이티하드가 서로 다른 일곱 토후국을 하나의 연방으로 묶었다면, 마즐리스는 그 연방을 구성하는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이 만나고 대화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타사무흐는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를 대하는 태도를 설명하는 하나의 중요한 국가적 가치로 강조돼 왔습니다. 일곱 토후국이 저마다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면서도 하나의 연방을 이루고, 마즐리스와 같은 공동체 공간에서 사람들의 관계를 이어 가며,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 어쩌면 아랍에미리트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나라를 하나의 색으로 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색들이 모여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 내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것 아닐까요?
لو كل من يا ونيَر ما تم في الوادي شجر
If everyone took up carpentry, not a single tree would remain in the valley.
모두가 나무를 베는 사람이 된다면, 계곡에는 나무 한 그루도 남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