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행복한 아라비아(Arabia Felix), 예멘 공화국(Republic of Yemen)으로 떠나보겠습니다. 홍해와 아덴만, 아라비아해가 만나는 예멘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문명 가운데 하나가 꽃피운 곳으로, 성경과 코란에 등장하는 시바 왕국(Kingdom of Saba)의 전설이 오늘날까지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예멘을 다른 어느 나라와도 뚜렷하게 구분 짓는 것은 산과 사막, 바다 사이에서 수천 년 동안 독자적으로 발전한 독특한 도시 문화입니다. 수도 사나(Sana'a)의 구시가지(Old City of Sana'a, 1986)에는 흙벽돌과 석회로 지은 수천 채의 다층 주택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습니다. 그래서 사나는 종종 ‘살아 있는 중세 도시’로 불리며, 인간의 삶과 건축이 얼마나 오랜 세월 한 공간에서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막의 도시 시밤(Old Walled City of Shibam, 1982)은 또 다른 놀라움을 안겨줍니다. 수백 년 전 진흙으로 쌓아 올린 고층 건물들이 좁은 성벽 안에 밀집한 모습은 ‘사막의 맨해튼(Manhattan of the Desert)’이라는 별칭에 어울립니다. 고대 시바 왕국의 여왕이 걸었던 전설의 길을 따라, 유향(Frankincense)과 몰약(Myrrh)의 교역로으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잎사귀 하나가 나라의 시계를 멈추는 곳, 카트(A leaf that stops the nation's clock, Qat) : 정오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사나아(Sana'a)의 거리가 눈에 띄게 한산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 카트(Qat, 학명 Catha edulis, 씹으면 각성 효과가 있는 상록수 잎)입니다. 12세 이상 예멘 남성의 72퍼센트, 여성의 33퍼센트가 이 잎을 씹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로, 카트는 이 나라에서 기호품이라기보다는 오후를 규정하는 생활의 리듬에 가깝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사람들은 저마다 카트 잎이 든 봉지를 옆구리에 끼고 익숙한 자리로 모여듭니다. 이 오후의 모임을 예멘 사람들은 타크진(Takhzeen, 볼 안쪽에 잎을 채워 넣고 서서히 씹는 행위)이라 부르고, 그 자리 자체는 마그얄(Maqyal, 카트를 씹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임)이라 일컫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습관이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나라의 경제 구조까지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입니다. 카트는 예맨 농촌 소득의 가장 큰 원천이자 경작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작물로, 정부 청사 안에도 전용 공간을 두는 경우가 있을 정도입니다.
▶ 진흙 탑 꼭대기,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랑방, 마프라즈(At the top of the mud tower, the highest guest room in the world, Mafraj) : 사나아나 시밤(Shibam)의 진흙 탑을 오르다 보면, 맨 꼭대기에 방이 있습니다. 바로 마프라즈(Mafraj, 손님을 맞고 카트를 씹으며 담소를 나누는 최상층의 방)입니다. 이 방은 대개 도시의 전망이 가장 잘 보이는 방향으로 창을 냈고, 벽과 천장은 석고 장식과 조각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남성들은 오후가 되면 이 방에 모여 등을 기대는 쿠션인 마스나드(Masnad)에 몸을 기댄 채 몇 시간이고 카트를 씹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집을 지을 때 남향이나 서향보다 동향이나 북향으로 이 방을 배치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햇볕이 은은하게 드는 편이 대화를 나누기에 더 알맞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도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따로 마련한 공간이 있습니다. 사랑채(舍廊-, Sarangchae)입니다. 한국의 역사마을인 하회와 양동(Historic Villages of Korea: Hahoe and Yangdong, 2010년 세계유산 등재)에 남아 있는 조선 시대 사대부 가옥에서, 사랑채는 남성 손님을 맞고 학문과 담소를 나누던 별도의 건물이었습니다. 마프라즈가 건물 맨 꼭대기 층에 자리해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손님을 맞았다면, 사랑채는 안채와 마당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서 손님과 가족의 공간을 가르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손님을 위한 자리를 따로 마련해 두었다는 마음씨만큼은, 진흙 탑 꼭대기의 방과 기와지붕 아래의 사랑채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 허리에 찬 칼 한 자루가 말해 주는 것, 잠비야(What a dagger at the waist reveals, Jambiya) : 예멘 남성 옷차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물건은 옷도 신발도 아닌, 허리춤에 찬 곡선형 단검, 잠비야(Jambiya, 은이나 뿔로 손잡이를 장식한 굽은 단검)입니다. 이 칼은 무기라기보다는 신분과 명예를 드러내는 표식에 가깝습니다. 손잡이의 재료와 조각의 정교함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이라, 코뿔소 뿔로 만든 손잡이는 부와 지위를 한눈에 드러내는 상징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소년이 성인 남성으로 인정받는 통과의례의 순간에도, 잠비야를 처음 허리에 차는 일이 빠지지 않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도 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기념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케냐(Kenya)의 마사이(Maasai) 공동체가 치르는 세 단계의 성인식, 엔키파아타와 에우노토와 올릉게셰르(Enkipaata, Eunoto and Olng'esherr-the three male rites of passage of the Maasai community)입니다. 201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 의례는 몸에 지니는 물건이 아니라 절차와 의식 그 자체로 성인의 지위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칼 한 자루로 지위를 드러내는 잠비야와는 방식이 다릅니다. 그러나 소년의 몸에 성인의 표식을 남긴다는 발상만큼은 닮아 있습니다.
▶ 카트를 씹는 오후의 습관도, 진흙 탑 꼭대기의 마프라즈도, 허리에 찬 잠비야도, 결국 한 가지 사실로 모입니다. 예멘 사람들에게 낯선 이를 맞아들이는 일은 언제나 특별한 의미를 지녀 왔다는 것입니다. 마그얄에 초대받은 손님이든, 마프라즈에 들어선 나그네든, 이 나라에서는 문턱을 넘는 순간 이미 특별한 대우를 받을 자격을 얻게 됩니다.
الضيف ضيف الله
The guest is God's guest.
손님은 신의 손님이다.
▶ 시밤 옛 성곽 도시(Old Walled City of Shibam, 1982) : 독자 여러분, 사막 한가운데에 마천루가 솟아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예멘(Yemen) 동부, 하드라마우트(Hadhramaut) 주의 와디 하드라마우트(Wadi Hadhramaut, 건기에는 마른 강바닥이었다가 우기에만 물이 흐르는 계곡) 한복판에 그런 도시가 실제로 서 있습니다. 진흙으로 지은 탑들이 촘촘히 어깨를 맞대고 8층, 9층, 심지어 11층까지 솟아오른 도시, 시밤(Shibam)입니다. 인구 7천 명 남짓의 이 작은 마을은 하드라마우트 주 시밤 구(Shibam District)의 중심지입니다. 좌표로 짚으면 북위 15도 55분, 동경 48도 37분 부근, 사나(Sanaa)에서 예멘 동부의 먼 지역들로 이어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라비아 반도 서남단, 향료와 유향의 옛길이 지나던 자리입니다.
이 마을을 처음 본 서구 여행자들은 뉴욕의 마천루를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사막의 맨해튼(Manhattan of the Desert)', 또는 '사막의 시카고(Chicago of the Desert)'였습니다. 유네스코(UNESCO)는 1982년, 시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이 도시를 수직 건축에 기반한 도시계획의 가장 오래되고 완성도 높은 사례 가운데 하나로 꼽았습니다. 등재 기준은 세 가지, 곧 독특한 문화적 전통의 예외적 증거(criterion iii), 특정 유형의 건축물이나 경관을 보여주는 뛰어난 사례(criterion iv), 전통적 인간 정주지의 뛰어난 사례(criterion v)였습니다.
▶ 자비드 역사도시(Historic Town of Zabid, 1993) : 예멘의 항구 도시 호데이다(Hodeidah)에서 남동쪽으로 내려가면, 붉은 흙벽돌로 지어진 나지막한 건물들이 오벌 형태로 모여 있는 마을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해안에서 약 25킬로미터, 산악 지대로 오르기 직전의 평평한 땅 위에 자리 잡은 이 도시는 한때 예멘의 수도였고, 아라비아반도 남부에서 인도양을 오가던 상인과 학자들이 반드시 거쳐 가야 했던 길목이었습니다. 도시를 감싸는 낮은 성벽 안쪽으로는 135헥타르에 달하는 면적에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데, 이 골목의 얼개는 놀랍게도 초창기 요새의 원형 구조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입니다. 자비드는 199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등재 사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예멘의 수도로 기능하며 아랍-이슬람 세계에 오랫동안 영향을 끼쳤다는 역사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라비아반도 남부 저지대 특유의 안뜰형 가옥 양식을 가장 온전하게 간직한 도시라는 건축적 가치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흙과 벽돌뿐인 소박한 마을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슬람 학문의 뿌리 하나가 고스란히 묻혀 있는 셈입니다.
▶ 소코트라 군도(Socotra Archipelago, 2008) : 예멘 본토에서 남쪽으로 약 350㎞, 아프리카의 뿔 소말리아 해안에서 동쪽으로 약 240㎞ 떨어진 바다 위에 소코트라, 압드 알쿠리(Abd al-Kuri), 삼하(Samha), 다르사(Darsa)라는 네 개의 섬과 두 개의 바위섬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이들을 통틀어 소코트라 군도라 부르고, 행정구역상으로는 예멘의 소코트라주(Socotra Governorate)에 속합니다. 유네스코는 이 지역 가운데 핵심 구역 410,460헥타르와 그 주변 완충 구역 1,740,958헥타르를 합쳐 세계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예멘이라면 진흙 벽돌로 쌓아 올린 고층 건물들이 늘어선 사나 옛 도시(Old City of Sana'a, 1986년 등재)를 먼저 떠올리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소코트라는 그와는 결이 완전히 다른 유산입니다. 사람이 쌓아 올린 문명이 아니라, 사람의 손이 닿기 훨씬 전부터 스스로 빚어진 자연이 유산이 된 경우니까요. 신생대 제3기(Tertiary period)에 아프리카 대륙에서 떨어져 나온 이 섬은 포유류 한 마리 살지 않는 대신, 식물 825종 가운데 37%, 파충류의 90%, 육상 달팽이의 95%가 오직 이곳에서만 발견되는 고유종입니다. 이 섬을 "인도양의 갈라파고스"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