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중동의 스위스(The Switzerland of the Middle East), 오만 술탄국(Sultanate of Oman)으로 떠나보겠습니다. 아라비아반도 남동쪽 끝에 자리한 오만은 사막과 하자르 산맥(Hajar Mountains), 인도양과 아라비아해의 푸른 바다가 동시에 교차하는 곳입니다. 고대부터 오만의 선원들은 전통 범선 다우(Dhow)를 타고 인도양을 누비며 아라비아반도와 인도, 동아프리카를 왕래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만의 역사는 사막을 가로지른 대상무역(Caravan Trade)뿐 아니라, 바다를 통한 교역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남부 도파르(Dhofar)에서 생산된 유향은 고대 이집트와 로마까지 전해지며 오만을 세계적인 향료 교역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바흘라 요새(Bahla Fort, 1987)는 오아시스를 둘러싼 거대한 흙벽돌 요새의 위용을 보여주고, 바트·알쿠틈·알아인 고고학 유적(Archaeological Sites of Bat, Al-Khutm and Al-Ayn, 1988)은 수천 년 전 아라비아반도에서 꽃핀 청동기시대 문명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만을 다른 아랍 국가와 구분 짓는 가장 독특한 문화적 특징은 이바디 이슬람(Ibadi Islam)의 오랜 전통입니다. 이바디파는 공동체의 합의와 도덕적 규율을 중시하는 이슬람 전통으로, 오늘날에는 특히 오만에서 강한 뿌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구상 주권국가 중 유일하게 알파벳 O로 시작하는 나라, 오만으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인도양과 사막이 빚어낸 침묵의 제국(The silent empire shaped by the Indian Ocean and the desert) : 무스카트(Muscat) 공항에 내리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은 화려한 스카이라인이 아니라 흰색과 갈색 회벽으로 통일된 낮은 건물들입니다. 오만 정부는 오래전부터 도시 전체의 건축 규정을 통해 무분별한 고층화를 막아 왔고, 그 결과 수도조차 사막의 산맥과 색을 맞춘 도시로 남았습니다. 아라비아반도 동남쪽 끝,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을 사이에 두고 이란과 마주 보는 이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예멘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걸프 산유국 특유의 화려함과는 결이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1970년 카부스 빈 사이드(Qaboos bin Said, 1940~2020)가 권좌에 오르기 전까지 오만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정규학교가 세 곳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오십 년, 카부스는 도로와 병원과 대학을 확충하며 나라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자녀를 두지 않았고 2020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후계 구도를 전혀 남기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카부스는 후계자 후보를 적은 봉인된 서한을 남겼고, 왕실가족평의회가 그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하면서 국방평의회가 그 서한을 개봉해 하이삼 빈 타리크(Haitham bin Tariq, 1955~)를 새 술탄으로 발표했습니다.
▶ 중력만으로 사막에 생명을 흘려보낸 물의 설계, 아플라지(The water design that let gravity alone bring life to the desert, Aflaj) : 오만 내륙, 니즈와(Nizwa)와 이브라(Ibra) 사이의 마을을 걷다 보면 좁은 돌수로가 골목마다 흐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아플라지(Aflaj, أفلاج, 아랍어로 '나뉜 것'을 뜻하는 falaj의 복수형)입니다. 지하 대수층이나 산기슭의 샘에서 물을 끌어와 오직 중력만으로 마을과 농경지까지 흘려보내는 이 관개(灌漑, Irrigation) 체계는 서기 500년 무렵부터 가동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고고학적 흔적은 기원전 2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금도 오만 전역에는 3천 개가 넘는 아플라지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으며, 2006년 유네스코는 그 가운데 팔라즈 알카트민(Falaj Al-Khatmeen), 팔라즈 알말키(Falaj Al-Malki), 팔라즈 다리스(Falaj Daris), 팔라즈 알제일라(Falaj Al-Jeela), 팔라즈 알무야시르(Falaj Al-Muyassar) 다섯 곳을 세계유산(World Heritage)으로 등재했습니다.
▷ 시간을 쪼개 물을 나누는 사람들(People who slice up time to divide water) : 물을 관리하는 방식은 더 놀랍습니다. 저수지도 계량기도 없던 시절, 마을 사람들은 물을 '아사르(athar, 30분)', '루부아(rubu'a, 3시간)', '바다(baddah, 24아사르 즉 12시간)' 같은 시간 단위로 쪼개 순번을 정했습니다. 해시계 역할을 하는 긴 막대 라마드(lamad)를 세워 그림자가 이동하는 각도로 순서를 확인했고, 밤이 되면 별의 위치로 시간을 가늠했습니다. 물을 두고 다투는 대신 시간을 나누어 가진 이 방식은, 물리적 자원보다 신뢰와 규율이 공동체를 지탱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 사하라에도 있었다, 오아시스를 지키던 또 다른 지혜(The Sahara had it too-another wisdom that guarded the oasis) : 물을 매개로 공동체를 설계한 사례는 아프리카 대륙에도 있습니다. 알제리 사하라 사막 남쪽, 가르다이아(Ghardaïa)를 중심으로 한 음자브 계곡(M'Zab Valley)에서는 10세기 무렵 이바디파(Ibadi) 무슬림들이 다섯 개의 성곽 마을을 세우고 포가라(foggara)라는 지하 수로로 오아시스를 운영했습니다. 미로 같은 골목과 첨탑형 모스크로 둘러싸인 이 마을은 198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고, 근대 건축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습니다. 오만의 아플라지와 알제리의 포가라는 국경도 언어도 다르지만, 사막이라는 같은 조건 앞에서 인간이 도달한 답이 얼마나 닮을 수 있는지를 나란히 증언합니다.
▶ 허리에 새긴 국가의 문장, 은장식 단검 한 자루, 칸자르(A single silver dagger engraved with the nation's emblem, worn at the waist, Khanjar) : 오만 국가 문장 한가운데에는 교차한 칼 두 자루 위에 놓인 곡선형 단검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칼이 칸자르(Khanjar, خنجر)입니다. 결혼식이나 국경일처럼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서 오만 남성은 흰색 디샤다샤(dishdasha) 위에 허리띠 후자끄(huz'aq)를 두르고 칸자르를 꽂습니다. J자 모양으로 휘어진 날, 은실을 두들겨 박아 넣은 손잡이, 가죽과 천으로 감싼 칼집까지 하나의 칸자르를 완성하는 데는 스무 날에서 마흔 날이 걸린다고 장인들은 말합니다. 2022년 모로코에서 열린 제17차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정부간위원회에서, 유네스코는 '칸자르, 공예 기술과 사회적 관습(Al-Khanjar, craft skills and social practices)'을 인류무형문화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대표목록에 올렸습니다.
▷ 손끝에서 손끝으로, 세대를 건너는 약속(From fingertip to fingertip, a promise crossing generations) : 칸자르 제작 기술은 문서가 아니라 도제식으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스승에서 제자로 전해집니다. 재료로 쓰이는 나무와 가죽, 은에는 저마다 고유한 문양이 새겨지는데, 오마니들은 이 문양을 땅과 이어진 연결의 표시로 여긴다고 합니다. 국빈에게 건네는 최고의 선물 목록에도 칸자르가 빠지지 않으며, 오만 문학 속 수많은 시가 이 단검의 곡선을 노래해 왔습니다. 세대를 건너 전해지는 손끝의 약속이라면, 한국의 김장(Kimjang)도 떠올릴 만합니다. 늦가을이면 온 가족이 모여 겨우내 먹을 김치를 함께 담그고 이웃과 나누는 이 풍습은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습니다. 재료도, 만드는 방식도, 전해지는 이유도 전혀 다르지만 칸자르와 김장은 하나의 공통점을 지닙니다. 완성된 결과물보다 그것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공동체와 정체성을 이어 붙이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 낙타 대상이 목숨 걸고 실어 나른 향기의 무역로, 루반(The trade route of fragrance that camel caravans risked their lives to carry, Al-Luban) : 오만 남부 도파르(Dhofar) 지방의 척박한 와디 다우카(Wadi Dawkah)에는 지금도 보스웰리아 사크라(Boswellia sacra)라는 나무가 자랍니다. 나무껍질에 칼집을 내면 우윳빛 수액이 흘러나와 며칠 만에 딱딱한 방울로 굳는데, 이것이 유향(乳香), 즉 아랍어로 루반(Al-Luban, اللبان)입니다. 고대 이집트인은 이 향을 미라를 만드는 방부제로, 메소포타미아와 인도, 중국의 상인들은 종교 의식과 향료로 썼습니다. 오만의 루반은 지중해와 홍해 연안에서 시작해 대륙을 가로지르는 사치품 무역의 정점에 있었고, 2000년 유네스코는 와디 다우카의 유향 숲과 카라반 오아시스 시스르(Shisr), 그리고 항구 도시 코르 로리(Khor Rori)와 알발리드(Al-Baleed) 네 곳을 묶어 '유향의 땅(Land of Frankincense)'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에 등재했습니다.
▷ 사막 한가운데서 사라진 도시, 우바르의 전설(The legend of Ubar, a city that vanished in the middle of the desert) : 시스르는 오랫동안 '모래의 아틀란티스'라 불리는 전설의 도시 우바르(Ubar)와 동일시되어 왔습니다. 1992년 위성 사진과 옛 대상로 흔적을 근거로 한 발굴 기사가 보도되면서 이 오아시스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실제로 발굴된 성벽과 탑의 흔적은 이곳이 철기 시대부터 사막을 건너는 상인들에게 물과 쉼터를 제공하던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항구 코르 로리는 고대에는 숨후람(Sumhuram)이라 불렸으며, 유향을 배에 실어 예멘과 인도, 더 멀리는 지중해까지 실어 날랐습니다. 이 향료길의 흔적은 무스카트에서 200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칼하트(Qalhat)에서도 이어집니다. 몽골 제국을 여행한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와 이슬람 세계 곳곳을 주유한 이븐 바투타(Ibn Battuta, 1304~1369) 역시 칼하트를 기록할 만큼, 이곳은 한때 호르무즈 왕국의 인도양 무역망에서 중요한 항구였습니다. 그러나 16세기에 들어 포르투갈의 인도양 진출과 공격, 해상 교역 질서의 변화, 경제적 쇠퇴가 겹치면서 칼하트는 점차 기능을 잃었고 결국 버려진 도시가 되었습니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오랜 폐허의 역사는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 천 년의 지혜가 남긴 마지막 한 줄(One last line of wisdom left by a thousand years) : 물을 나누던 규율, 허리에 찬 단검, 사막을 건너던 향기.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재료로 만들어졌지만, 결국 같은 질문에 대한 오만식 답입니다. 척박한 땅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나눌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إذا كان المتكلم مجنونًا يكون المستمع عاقلًا
If the speaker is mad, the hearer should be wise.
말하는 사람이 어리석더라도 듣는 사람은 지혜로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