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문명의 요람(Cradle of Civilization), 이라크(Iraq)로 떠나보겠습니다. 티그리스강(Tigris River)과 유프라테스강(Euphrates River) 사이의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에서는 기원전 4천년기(4th millennium BC)부터 도시와 문자가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메르인들은 이곳에서 도시국가를 발전시켰고, 쐐기문자(Cuneiform)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 체계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 기원전 18세기경)은 이러한 메소포타미아 법문화의 대표적인 유산입니다. 1920년대 영국 고고학자 레너드 울리(Leonard Woolley, 1880~1960)가 발굴한 우르(Ur)의 왕실묘지는 금과 청금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유물들을 세상에 알렸고, 그 일부는 오늘날에도 영국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과 정치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서는 오래된 문화와 공동체의 삶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라크 마캄(Iraqi Maqam, 2008)은 전통 악기의 반주에 맞춰 노래와 즉흥적 선율을 이어가는 이라크의 대표적인 고전음악 전통이며, 아르바인(Arba'in) 순례의 환대 문화와 남부 습지의 무디프(Al-Mudhif) 건축 역시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인류 최초의 서사문학 가운데 하나인 『길가메시 서사시(Epic of Gilgamesh)』를 옆구리에 끼고, 우르(Ur)의 지구라트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즉흥과 절제 사이에서 완성되는 노래, 마캄(A Song Completed Between Improvisation and Restraint, Maqam) : 이라크 마캄은 이라크의 대표적인 전통음악으로, 다양한 노래와 선율 유형이 전통 악기의 반주와 함께 연행됩니다. 가수는 정해진 음악적 틀 안에서 섬세한 즉흥성을 발휘하며 노래를 이어가고, 산투르(santur)와 자우자(jawza) 같은 악기가 이를 받칩니다. 이 전통은 이라크의 음악사를 보여줄 뿐 아니라 이란·아제르바이잔·우즈베키스탄 등 주변 지역의 음악문화와 오랜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마캄의 정확한 기원을 하나의 시점으로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유네스코는 이 전통을 2003년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포했고, 2008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했습니다. 마캄의 가치는 오래된 음악이라는 사실만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통해 연행법과 레퍼토리를 계속 전승해 온 살아 있는 전통이라는 데 있습니다.
▷ 죽지 않는 목금, 니아가솔라의 비밀(The Enduring Balafon of Nyagassola) : 아프리카 기니의 니아가솔라(Nyagassola)에는 신성한 발라폰인 소소-발라(Sosso-Bala)가 전승되고 있습니다. 만딩게(Mandingue) 공동체에서 자유와 결속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이 악기는 소소 왕국의 왕 수마오로 칸테(Sumaoro Kanté)와 관련된 전승을 간직하고 있으며, 특히 순자타(Sunjata)의 서사시를 비롯한 구전문학을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유네스코는 소소-발라의 문화공간을 2001년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포하고 2008년 대표목록에 등재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악기 자체만이 아닙니다. 악기를 보존하고 연주하는 사람, 그리고 그 악기에 얽힌 역사와 서사를 함께 전승하는 공동체가 하나의 문화유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 고수의 북장단에 실려 온 서사(A Narrative Carried on the Drummer's Beat) : 한국의 판소리(Pansori)도 한 명의 연행자가 음악과 서사를 동시에 짊어지는 전통입니다. 소리꾼은 한 명의 고수와 함께 노래와 말, 몸짓을 활용해 긴 이야기를 풀어내며, 공연은 여러 시간 이어질 수 있습니다. 판소리는 2003년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포된 뒤 2008년 대표목록에 등재됐습니다. 마캄과 판소리는 같은 음악 장르가 아닙니다. 그러나 두 전통 모두 악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연행자의 기량과 즉흥성, 그리고 스승에게서 제자로 이어지는 전승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서로 다른 대륙에서 발전한 두 전통이 '사람의 목소리 자체가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 낯선 이에게 지붕을 내주는 계절, 아르바인(A Season That Gives Its Roof to a Stranger, Arba'in) : 이슬람력 사파르월 20일 무렵이면 이라크 중부와 남부에서 카르발라(Karbala)를 향한 대규모 순례가 시작됩니다. 아르바인(Arba'in)은 이맘 후세인(Imam Husayn)의 순교 40일을 기리는 시아파의 중요한 종교 행사입니다. 이 순례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순례객을 맞이하는 자원봉사와 환대입니다. 길에는 모킵(Mawkib)이라 불리는 자원봉사 거점이 마련되고, 음식과 물, 휴식 공간과 의료 지원 등이 제공됩니다. 이러한 환대는 개인의 선행을 넘어 지역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사회적 실천으로 발전했습니다. 유네스코는 이를 '아르바인 순례 중 서비스와 환대 제공'이라는 이름으로 2019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했습니다.
▷ 온 마을이 진흙을 이겨 모스크를 되살리는 전통(A Community That Rebuilds Its Mosque with Earth) : 말리의 젠네(Djenné)에서도 공동체의 협력으로 문화유산을 지켜온 전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젠네는 흙을 주재료로 한 독특한 건축과 도시구조로 유명하며, '젠네의 옛 도시들(Old Towns of Djenné)'은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습니다. 대모스크를 비롯한 흙 건축물은 정기적인 보수가 필요하고, 공동체가 참여하는 미장 작업은 건축물을 유지하는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아르바인의 환대와 젠네의 공동 보수는 서로 다른 문화이지만 공통된 원리를 보여줍니다. 문화유산은 전문가 몇 사람의 힘만으로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공동체가 있을 때 비로소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 김장독 앞에서 나누는 겨울 양식(Winter Provisions Shared Before the Kimchi Jars) : 한국의 김장(Kimjang) 역시 음식을 만드는 기술을 넘어 공동체의 협력과 나눔을 보여주는 문화입니다. 가족과 이웃이 함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전통은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됐습니다. 유네스코는 김장이 가족과 공동체의 협력을 강화하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사회적 실천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아르바인의 모킵과 한국의 김장은 종교와 음식, 지역은 다르지만 '함께 준비하고 함께 나눈다'는 공동체의 가치를 공유합니다.
▶ 못 하나 없이 세워지는 갈대 건축, 무디프(A Reed Building Raised Without Nails, Al-Mudhif) : 이라크 남부의 아흐와르(Ahwar)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하류의 광대한 습지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남부 이라크의 아흐와르: 생물다양성의 피난처이자 메소포타미아 도시의 유적 경관'은 우르(Ur), 우루크(Uruk), 텔 에리두(Tell Eridu)의 고고학 유적과 네 곳의 습지를 아우르는 복합유산으로 2016년 등재됐습니다. 이곳의 갈대와 파피루스는 생태자원이면서 생활문화의 재료이기도 합니다. 무디프(Al-Mudhif)는 이 재료를 이용해 만든 대형 아치형 건축물로, 공동체의 회합과 손님맞이 등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해 왔습니다. 갈대를 엮고 구부려 구조를 만들고 매트 등을 덧대는 전통적인 건축기술은 세대를 거쳐 전승되어 왔습니다. 유네스코는 '무디프 건축의 전통 공예 기술과 예술'을 2023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했습니다. 이 유산이 중요한 이유는 독특한 건축물 때문만이 아니라 습지의 자연환경과 주민들의 생활방식, 건축기술이 하나의 문화적 체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불타버린 지붕, 공동체의 손으로 되살아나다(A Burned Roof Revived by the Community) : 우간다 캄팔라의 카수비(Kasubi) 언덕에는 부간다 왕국의 역대 카바카(Kabaka)가 묻힌 카수비 왕릉(Tombs of Buganda Kings at Kasubi)이 있습니다. 중심 건물인 무지부 아잘라 음팡가(Muzibu Azaala Mpanga)는 목재와 초가지붕, 갈대 등 유기적 재료로 만들어진 원형 건축물로, 200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이곳의 가치는 건축물뿐 아니라 부간다 공동체의 신앙과 전통, 정체성이 함께 살아 있다는 데 있습니다. 2010년 화재로 중심 건물이 크게 파괴되면서 카수비 왕릉은 세계유산 위험목록에 올랐습니다. 이후 우간다 당국과 지역공동체가 유네스코 및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 복구를 진행했고, 재건 과정에서는 젊은 세대에게 전통 건축기술을 전승하는 작업도 이루어졌습니다. 복구는 2023년 여름 완료됐으며, 같은 해 9월 세계유산위원회는 카수비 왕릉을 위험목록에서 해제했습니다. 무디프와 카수비는 재료도, 종교도, 역사도 다릅니다. 하지만 두 사례는 문화유산의 생명력이 건축물 자체보다 그 건물을 다시 만들 수 있는 사람과 기술에 달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 종가의 담장 안에 남은 시간(Time Preserved Inside the Clan-House Walls) : 한국의 경상북도에는 하회(河回)마을과 양동(良洞)마을이 있습니다. 두 마을은 조선시대 유교적 전통과 전통 주거문화를 보여주는 역사마을로,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에 등재됐습니다. 무디프와 전통 한옥은 재료부터 건축방식까지 크게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집을 단순히 오래된 건물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계속 고치고 살아가며 그 안에 담긴 지식과 기억을 다음 세대로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 티그리스가 가르쳐준 마지막 문장(The Last Sentence the Tigris Taught Me) : 마캄의 음악가는 스승에게서 노래를 배우고, 아르바인의 자원봉사자는 낯선 순례객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내어놓으며, 무디프의 장인은 습지의 갈대를 다루는 기술을 다음 세대에 전합니다. 카수비의 복구 역시 무너진 건물을 다시 세우는 일과 함께 전통 건축기술을 이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유산을 따라왔지만 결론은 하나입니다. 유산은 물건으로만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손을 거쳐야 비로소 다음 세대에 도착합니다.
أعطِ الخبزَ لخبّازه ولو أكلَ نصفَه
Give the bread to the baker, even if he eats half of it.
빵을 제빵사에게 맡겨라, 그가 절반을 먹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