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나일의 선물(Gift of the Nile), 이집트 아랍 공화국(Arab Republic of Egypt)으로 떠나보겠습니다. 기원전 3100년경 상이집트와 하이집트가 통합된 이집트는 페르시아와 그리스, 로마, 아랍, 오스만, 영국 등 여러 강대국의 지배와 영향을 차례로 겪으면서도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이어 왔습니다. 1960년대 아스완 하이 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놓였던 람세스 2세(Ramesses II, 기원전 13세기)의 아부 심벨 대신전(Abu Simbel)은 유네스코가 주도한 국제 구호 캠페인 덕분에 해체된 뒤 고지대로 옮겨져 다시 조립되었습니다. 이는 1972년 세계유산협약이 탄생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죠! 아부 심벨을 포함한 누비아 유적은 1979년 ‘아부 심벨에서 필레까지의 누비아 유적(Nubian Monuments from Abu Simbel to Philae)’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 기원전 5세기)의 『역사(The Histories)』를 옆구리에 끼고, 나일강(Nile River)을 따라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파라오의 왕좌를 떠받친 우주의 저울, 마아트(Ma'at, the Cosmic Scale That Held Up the Pharaoh's Throne) : 마아트(Ma'at, ماعت)는 고대 이집트에서 진실과 정의, 올바른 질서와 우주의 조화를 아우르는 개념이었습니다. 마아트는 단순히 개인이 지켜야 할 도덕적 규범을 넘어선, 신과 인간, 왕과 백성, 자연과 사회를 관통하는 질서의 원리였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장례 문헌에 나타나는 저승의 심판 장면에서는 죽은 자의 심장이 저울에 놓이고, 마아트를 상징하는 깃털과 균형을 이루는지를 판단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심장은 지성과 감정, 행동의 중심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단순한 장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증언하는 존재였습니다. 심장이 마아트와 조화를 이루면 죽은 자는 오시리스(Osiris)의 세계에서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하면 괴물 암무트(Ammut)가 삼킨다고 여겼습니다.
기자와 다흐슈르에 걸쳐 있는 피라미드 유적, 즉 멤피스와 그 네크로폴리스(Memphis and its Necropolis–the Pyramid Fields from Giza to Dahshur)에는 기자의 거대한 피라미드뿐 아니라 사카라의 계단식 피라미드와 다흐슈르의 피라미드 등 고대 이집트 장례 건축의 발전을 보여 주는 유적이 폭넓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사카라의 조세르(Djoser) 계단식 피라미드는 세계 최초의 대규모 석조 건축물 가운데 하나이자 이집트 피라미드 발전사의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이를 마아트와 연결해 바라보면 피라미드는 단순한 무덤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왕의 죽음 이후에도 우주와 국가의 질서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고대 이집트의 세계관이 거대한 장례 건축물과 종교 의례에 투영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 파라오는 신이자 마아트를 지키는 왕(The Pharaoh Was a Divine King Who Had to Uphold Ma'at) : 흥미로운 점은 파라오가 단순히 마아트 위에 군림하는 절대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고대 이집트의 왕은 신과 인간 사이를 잇는 신성한 통치자로 여겨졌으며, 동시에 마아트를 유지하고 회복해야 할 책임을 지닌 존재였습니다. 왕이 제사를 지내고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행위 역시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왕의 책무를 상징했습니다. 공교롭게도 한반도에도 통치자가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진실의 기록’이 있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Annals of the Joseon Dynasty)은 조선 태조부터 철종까지 472년에 걸친 역사를 기록한 방대한 역사서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왕은 재위 중 사초와 실록 편찬 과정에 직접 개입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두었고, 사관은 국왕과 신하의 행적을 기록했습니다. 나일강가의 파라오가 우주의 질서를 지켜야 했다면, 한강가의 사관은 역사의 기록을 지켜야 했던 셈입니다.
▶ 일상에 스며든 이집트인의 자부심, 발라디(Baladi, Egyptian Pride Woven Into Everyday Life) : 발라디(Baladi, بلدي)는 아랍어로 ‘나의 나라’, ‘나의 고장’, ‘토박이의 것’이라는 뜻을 가진 표현으로, 이집트에서는 토착적이고 서민적인 것, 현지의 것을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됩니다. 대표적인 음식이 아이시 발라디(Aish Baladi, عيش بلدي)입니다. 통밀가루로 만든 둥글고 납작한 빵으로, 이집트인의 일상 식탁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왔습니다. 여기서 ‘아이시(Aish, عيش)’라는 말은 특히 흥미롭습니다. 아랍어에서 ‘아이시’는 ‘삶’, ‘생활’을 뜻하는 말에서 비롯되었으며, 이집트 아랍어에서는 ‘빵’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아랍어 사전 자료에서도 ‘아이시’는 삶과 생계를 뜻하면서 동시에 빵을 가리키는 말로 설명됩니다. 빵이 곧 생존과 생활의 기반이라는 의미가 언어 속에 남아 있는 셈입니다. 피라미드가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 냈다면, 발라디는 거대한 유적보다 훨씬 가까운 곳, 즉 오늘날 이집트인의 식탁과 시장과 골목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 라바브 한 줄에 실려 전해진 부족의 노래(A Tribe's Song Carried on a Single String) : 이러한 생활문화와 구전 전통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구전 서사시 알 시라 알 힐랄리야(السيرة الهلالية, Al-Sirah Al-Hilaliyya)입니다. 이 서사시는 아랍 세계에서 전승되어 온 바누 힐랄(Bani Hilal)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며, 이집트의 전통 이야기꾼들은 라바브(Rababa)와 같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긴 서사를 노래와 낭송으로 이어 왔습니다. 유네스코는 이 전통을 2008년 ‘알 시라 알 힐랄리야 서사시(Al-Sirah Al-Hilaliyyah epic)’라는 이름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했습니다.
▶ 사람과 이야기가 모이는 카이로의 거실, 아흐와(Ahwa, Cairo's Living Room Where People and Stories Meet) : 아흐와(Ahwa, أهوة)는 이집트 아랍어에서 커피를 뜻하는 일상적인 표현이며, 동시에 커피하우스 또는 동네의 전통적인 찻집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입니다. 아흐와에서 마시는 대표적인 음료는 곱게 간 원두를 끓여 내는 이집트식 커피이며, 차와 히비스커스 음료 등도 함께 즐깁니다. 커피를 주문할 때는 설탕을 넣지 않은 사다(Sada), 적당히 단 마즈부트(Mazbout), 아주 달게 만든 지야다(Ziyada)와 같은 표현이 널리 쓰입니다. 물담배 시샤(Shisha)의 연기가 낮게 깔리고, 작은 탁자마다 커피잔과 찻잔이 놓인 아흐와는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신문과 뉴스를 이야기하고, 타울라(Tawla)를 즐기며, 친구와 이웃의 소식을 나눕니다. 관광객에게는 이국적인 풍경일 수 있지만, 많은 이집트인에게 아흐와는 일상의 사회적 관계가 만들어지는 중요한 공간입니다. 카이로의 역사적인 중심부에 자리한 칸 엘 칼릴리(Khan el-Khalili)는 맘루크 시대인 14세기 후반에 형성되기 시작한 대표적인 시장입니다. 이 일대에는 오래된 커피하우스들이 자리 잡았고, 그 가운데 엘 피샤위 카페(El-Fishawy Café)는 특히 나기브 마흐푸즈(Naguib Mahfouz)를 비롯한 문인과 예술가들이 즐겨 찾은 장소로 유명하죠.
▶ 사막의 지혜, 바람이 들어오는 문을 닫으라는 이집트 속담(Desert Wisdom: The Egyptian Proverb About Closing the Door Against the Wind) : 수천 년 동안 강대국들이 이 땅을 지나갔지만, 이집트의 역사는 거대한 제국들의 흥망성쇠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왕조가 바뀌고 외세가 들어오고 새로운 종교와 언어가 등장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강가의 농토를 일구고 시장에서 물건을 팔며 가족과 이웃의 삶을 이어 갔습니다. 나일강은 수천 년 동안 흘렀고, 왕조는 사라졌으며, 새로운 언어와 종교가 이 땅을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강가에서 시작된 삶의 리듬은 오늘도 계속됩니다. 그래서 이집트를 여행한다는 것은 고대의 돌을 바라보는 일인 동시에, 그 돌 사이에서 지금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을 만나는 일입니다. 마아트의 저울도, 발라디의 빵도, 아흐와의 커피와 도미노 소리도 결국 하나의 풍경으로 이어집니다. 이집트를 만든 것은 피라미드와 파라오만이 아니었습니다. 질서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 매일 빵을 구워 먹고, 이야기를 노래로 전하고,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하루의 희로애락을 나누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الباب اللي يجيلك منه الريح سده واستريح.
Close the door through which the wind comes, and rest.
바람이 들어오는 문은 닫아 버리고, 편히 쉬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