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중동 최초로 월드컵을 개최한 카타르국(State of Qatar)으로 떠나보겠습니다. 기원후 150년경, 알렉산드리아 지리학자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aeus, 100~170년경)는 저서 『지리학(Geographia)』에서 '카타라(Catara)'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진주로 번영했던 항구 도시의 흔적은 지금도 북서부 해안 알 주바라 고고유적(Al Zubarah Archaeological Site, 2013)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카타르의 실질적 건국자로 추앙받는 셰이크 자심 빈 무함마드 알 사니(Jassim bin Mohammed Al Thani, 1825~1913)는 오스만 제국과 영국 사이에서 반도의 독립성을 지켜냈으며, 1938년 두칸(Dukhan)에서 첫 석유 시추가 시작되고 1940년 1월 석유가 발견된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2022년 대한민국이 포르투갈을 꺾고, 16강에 진출한 ‘도하의 기적’으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숨 참고 내려간 바다가 나라를 세웠다, 알 가우스(A country built on the breath held underwater, Al-Ghaws) : 알 가우스(الغوص, Al-Ghaws, 산소 장비 없이 맨몸으로 진주조개를 캐던 잠수 노동)는 20세기 초반까지 카타르 경제의 거의 전부였습니다. 여름이면 남자들은 석 달에서 넉 달씩 배 위에서 먹고 자며 걸프해를 오르내렸습니다. 코에는 나무집게를 끼우고, 발목에는 돌을 매달아 순식간에 바닥까지 가라앉았습니다. 한 번 잠수에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채 2분! 이렇게 캐 올린 조개를 사기 위해 인도와 유럽 상인들이 카타르 해안까지 배를 몰고 왔습니다. 나무나 풀을 베어 팔던 사막 쪽 벌이와 비교하면, 여름 한 철 바다에 나가는 일이야말로 이 반도에서 거의 유일하게 현금을 만질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 일본 진주가 뒤흔든 걸프의 경제(How Japanese pearls shook the Gulf economy) : 카타르의 진주 산업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급격히 무너졌습니다. 일본에서 미키모토 고키치(御木本幸吉, Mikimoto Kōkichi, 1858~1954)가 개발한 양식 진주가 세계 시장에 값싸게 풀리면서, 걸프해에서 몸으로 캐낸 천연 진주는 가격 경쟁력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여기에 대공황까지 겹치면서 카타르의 진주 경제는 십 년 남짓한 사이에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거의 같은 시기, 카타르 땅 밑에서 석유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당시 통치자였던 압둘라 빈 자심 알 사니(Abdullah bin Jassim Al Thani, 1880~1957)의 재위 기간에 벌어진 이 우연한 시간차야말로, 카타르가 진주 경제에서 석유 경제로 넘어가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 주바라의 성벽이 기억하는 무역(The trade Al Zubarah's walls still remember) : 진주로 번영했던 도시의 흔적은 지금도 카타르 북서부 해안에 남아 있습니다. 알 주바라 고고유적(Al Zubarah Archaeological Site)은 2013년 카타르 최초이자 유일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이곳은 진주 교역과 해상 무역을 기반으로 번창한 요새 도시였는데, 체계적인 발굴 조사를 통해 성벽과 도로망, 주거 구역의 배치가 거의 온전한 상태로 드러났습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걸프 지역 진주 경제의 실제 규모와 도시적 면모를 이처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고고 유적이 매우 드물다는 점을 등재의 주요 근거로 꼽았습니다. 지금은 관광객이 폐허가 된 성벽 사이를 걷는 곳이지만, 한때는 진주를 실은 배들이 밀물처럼 드나들던 항구였습니다.
▶ 아이들이 문을 두드리는 밤, 가랑가오(A Night When Children Knock on the Door, Garangao) : 가랑가오(القرقيعان, Garangao, 라마단 14번째날 밤 아이들이 이웃집을 돌며 사탕을 받는 전통 행사)는 라마단이 정확히 절반 지났음을 알리는 밤에 열립니다. 이름 자체가 재미있는데, 조약돌을 헝겊 주머니에 넣고 흔들 때 나는 '가르가아(garqaa)'라는 의성어에서 왔다는 설명이 유력합니다. 예전에는 어머니들이 자투리 천으로 작은 주머니를 직접 만들어 아이들 목에 걸어 주었고, 아이들은 그 안에 견과류와 사탕을 채워가며 골목을 누볐습니다. 자동차 소음도 에어컨 실외기 소리도 없던 시절이라, 주머니 속 돌 부딪히는 소리만으로도 이웃 동네까지 가랑가오가 시작됐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 바다가 가르쳐 준 기다림의 미학(A lesson in waiting, taught by the sea) : 흥미롭게도 가랑가오의 뿌리를 진주잡이 시절에서 찾는 시각이 있습니다. 여름 내내 바다에 나가 있던 아버지와 형들이 무사히, 그것도 진주라는 선물을 안고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이 축제의 정서적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라마단 금식을 절반 넘게 견뎌낸 아이들에게 이웃 모두가 함께 축하와 격려를 보내는 방식도 이와 닮아 있습니다. 결과보다 그 과정을 버텨낸 것 자체를 온 동네가 인정해 주는 셈입니다. 이런 식으로 공동체가 특정한 날을 정해 다 함께 밤을 지새우며 서로를 격려하는 방식은 카타르만의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강강술래(Ganggangsullae, 보름달이 뜬 밤 여성들이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노래하고 춤추는 놀이)는 추석 보름달 아래 마을 여성들이 밤새 노래하고 춤추며 서로의 결속을 다졌다는 점에서 가랑가오의 밤 풍경과 겹치는 구석이 있습니다.
▷ 쇼핑몰로 옮겨간 골목의 밤(The alley night that moved into the mall) : 지금의 가랑가오는 예전 모습 그대로는 아닙니다. 1980년대 초 알 자스라 클럽(Al Jasra Club)이 처음으로 클럽 이름이 적힌 주머니를 만들어 나눠주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관공서와 기업, 쇼핑몰까지 저마다 다른 디자인의 가랑가오 주머니를 내놓으며 하나의 큰 상업 행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카타라 문화마을(Katara Cultural Village)이나 음쉐이렙 다운타운(Msheireb Downtown Doha) 같은 현대적인 공간에서도 이날 밤이면 아이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몰려나옵니다. 조약돌 소리는 사라졌어도, 이웃집 문을 두드리며 축하를 주고받는 마음만큼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 국민보다 열 배 많은 사람들, 카팔라(Kafala, and a population ten times the size of its citizens) : 카팔라(الكفالة, Al-Kafala, 보증인 제도, 保證人制度. 고용주가 외국인 노동자의 체류와 이직을 통제하는 걸프 지역 특유의 노동 후견 시스템)는 카타르를 다른 나라와 확연히 구분 짓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카타르의 전체 인구는 300만 명에 조금 못 미치는데, 이 가운데 실제 카타르 국적을 가진 사람은 30만 명 안팎. 나머지 대다수는 건설 현장과 가사노동, 서비스업 곳곳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입니다. 이처럼 극단적인 인구 구성 자체가 카팔라 제도가 자리 잡은 배경이기도 합니다. 2009년 제정된 법률 제4호(Law No. 4 of 2009)에 따라, 노동자가 이직하려면 고용주로부터 이의없음확인서(No-Objection Certificate)를, 출국하려면 별도의 출국허가서(Exit Permit)를 받아야 했습니다. 사실상 고용주가 노동자의 이동 자체를 통제하던 구조였습니다.
▷ 2022년 월드컵이 앞당긴 개혁(The reform the 2022 World Cup pushed forward) : 2010년 카타르가 2022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되면서 카팔라 제도는 순식간에 국제사회의 감시망 안에 들어왔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카타르의 노동환경을 지속적으로 조사·논의했고, 2017년 11월 카타르 정부와 3년간의 기술협력 프로그램을 출범시키기로 합의했습니다. 이후 ILO는 2018년 4월 도하에 프로젝트 사무소를 개설해 노동자의 임금 보호, 노동감독, 산업안전보건, 강제노동, 노동자의 권리와 이직 제도 등을 중심으로 개혁을 지원했습니다. 카타르의 개혁은 단계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출국허가제는 2018년 대부분의 노동자에게 폐지된 데 이어 2019년 가사노동자에게도 확대됐고, 2020년에는 고용주의 허가 없이 직장을 옮길 수 있도록 하는 이직 제한, 즉 No-Objection Certificate(NOC) 요건이 폐지됐습니다. 같은 해 차별 없는 최저임금 제도도 도입됐습니다.
▷ 노예가 있던 자리, 이름이 있는 자리(Where slavery once stood, where names now stand) : 카팔라 제도의 뿌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어두운 역사와 만나게 됩니다. 진주잡이 산업 자체가 한때 아프리카계 예속 노동자들에게 크게 의존했으며, 카타르에서 노예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은 1952년의 일입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의 이동과 노동을 강제로 통제해 온 역사는 대륙을 가리지 않습니다. 세네갈 다카르 앞바다에 자리한 고레섬(Island of Gorée)은 197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으로, 유럽 열강에 차례로 지배받은 400여 년 동안 대서양 노예무역의 주요 거점으로 기능했습니다. 오늘날 섬 안에 남아 있는 건물들에서는 당시의 극단적인 계층 분리가 고스란히 읽힙니다. 교역을 주도한 이들은 상층부의 넓고 쾌적한 공간을 차지했고, 배에 실리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그 바로 아래층에 마련된 비좁고 어두운 방에 갇혀 있었습니다. 같은 지붕 아래 권력과 무력함이 이처럼 적나라하게 공존했던 공간은 흔치 않습니다. 카타르가 지금 씨름하고 있는 카팔라 개혁도, 결국 사람의 이동과 존엄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 하는 오래된 질문의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 세 단어가 남긴 오래된 지혜(Ancient Wisdom from Three Words) : 독자 여러분, 진주 산업의 몰락도, 가랑가오가 상업 행사로 바뀐 것도, 카팔라 개혁이 뒤늦게 시작된 것도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준비는 늘 일이 벌어지기 한참 전에 끝나 있어야 했다는 사실입니다.
البر ما ينفع نهار الغارة
Provisions are of no use on the day of the raid.
습격이 닥친 날에는 양식도 소용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