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카르타고의 독수리(Eagles of Carthage), 튀니지 공화국(Republic of Tunisia)으로 떠나보겠습니다. 아프리카 대륙 최북단에 자리잡은 튀니지는, 로마(Rome)의 영원한 숙적 카르타고(Carthage, BC 814~BC 146)의 후예이자, 베르베르(Berber)·아랍·지중해 문명이 쌓인 교차로입니다. 기원전 218년,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바르카(Hannibal Barca, BC 247~BC 183)는 37마리의 코끼리를 이끌고 눈 덮인 알프스(Alps)를 넘어 로마의 심장부를 유린하였습니다. 그의 대담한 전략은 오늘날에도 군사 교과서에 오를 만큼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만, 제3차 포에니 전쟁(Punic Wars, BC 149~BC 146) 끝에 카르타고는 로마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1979년 카르타고 유적지(Site of Carthage)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튀니지는 현대사에서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2010년 말 이곳에서 시작된 튀니지 혁명(Tunisian Revolution)은 2011년 아랍의 봄(Arab Spring)으로 확산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븐 할둔(Ibn Khaldun, 1332~1406)의 『역사서설(Muqaddimah)』 한권 들고, 카르타고의 석양을 향해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매운맛 한 스푼에 새겨진 튀니지의 자존심, 하리사(Harissa: Tunisia's pride carved into a spoonful of heat) : 튀니지 식탁에서 하리사(هريسة, Harissa)가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말린 고추와 마늘, 캐러웨이(Caraway, 회향과 비슷한 향신료)를 갈아 올리브유로 갈무리한 이 붉은 페이스트는 조미료이자 식재료이며, 때로는 그 자체로 한 접시의 요리가 되기도 합니다. 하리사는 가정 안에서, 대체로 여성들의 손으로 전승되어 왔습니다. 2022년 유네스코는 모로코 라바트(Rabat)에서 열린 무형유산위원회를 통해 '하리사, 지식·기술과 요리 및 사회적 관습(Harissa, knowledge, skills and culinary and social practices)'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올렸습니다.
카프 봉(Cap Bon) 반도, 그중에서도 나불(Nabeul) 지역은 '하리사의 수도'로 불릴 만큼 고추 재배와 페이스트 가공이 집중된 곳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하리사가 튀니지 국경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세계 각지 식당의 냉장고에서, 심지어 프랑스 마르세유(Marseille)의 슈퍼마켓 진열대에서도 튀니지산 하리사 캔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식과 관습의 보존이라는 개념은 아프리카 대륙의 다른 사례에서도 확인됩니다. 모로코의 '아르간나무에 관한 지식, 기술과 관습(Argan, knowledge, skills and practices)'은 201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나무 열매를 손질해 기름을 짜내는 여성 협동조합 중심의 전승 방식이 하리사의 가내 전승 구조와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한국으로 눈을 돌리면 2013년 등재된 김장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가 떠오릅니다. 매운 양념을 발효시켜 겨우내 나눠 먹는다는 발상 자체는, 매운 페이스트를 온 가족이 함께 만들어 저장해 두는 튀니지의 방식과 결이 통합니다.
▶ 기도와 창끝이 함께 잠든 요새, 리바트(Ribat: the fortress where prayer and spear tip sleep together) : 리바트(رباط, Ribat)는 종교와 군사가 한 지붕 아래 공존하던 독특한 건축물입니다. 이슬람 초기, 지중해 연안을 노리는 해적과 비잔틴 함대에 맞서기 위해 북아프리카 해안선을 따라 세워졌으며, 평상시에는 수도자들이 기도와 학문에 매진하다가 위급 시에는 병사로 돌변해 성벽을 지켰습니다. 튀니지 수스(Sousse)의 리바트는 이런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원형이 잘 보존된 예로 꼽힙니다.
사각형 성벽에 감시탑과 총안(銃眼, 벽에 뚫린 방어용 구멍)이 늘어서 있고, 안뜰을 둘러싼 2층 구조에는 35개의 독방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821년에 증축된 남동쪽 탑은 미나레트(Minaret, 예배 시각을 알리는 첨탑)이자 감시탑 역할을 겸했는데, 이곳에서 보내는 신호는 인근 도시 모나스티르(Monastir)까지 전달되었습니다. 이 리바트는 1988년 '수스 메디나(Medina of Sousse)'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바다를 낀 방어 건축이라는 개념은 대륙을 건너 아프리카 서안에서도 발견됩니다. 가나(Ghana)의 '볼타·그레이터아크라·중부 및 서부 지역의 요새와 성채(Forts and Castles, Volta, Greater Accra, Central and Western Regions)'는 1979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유럽 세력이 대서양 노예무역을 위해 쌓아 올린 성채라는 점에서 리바트와는 역사적 맥락이 전혀 다르지만,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방어 건축물의 벨트'라는 형태만큼은 흡사합니다. 한국의 경우 1997년 세계유산에 오른 수원화성(水原華城, Suwon Hwaseong Fortress)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설계에 참여한 이 성곽 역시 방어 기능과 함께 신도시의 행정 중심지 역할을 겸했다는 점에서, 종교와 군사가 한데 얽힌 리바트의 이중적 성격과 나란히 놓고 볼 만합니다.
▶ 머리 위에 얹은 700년의 붉은 자부심, 셰시아(Chechia: seven hundred years of red pride worn on the head) : 튀니지 남성의 정수리를 덮는 붉은 모자, 셰시아(الشاشية, Chechia)의 뿌리는 스페인 안달루시아(Andalusia)에서 쫓겨난 무슬림 난민들에게 닿아 있습니다. 1492년 그라나다 함락 이후 흘러든 무슬림들과, 1609년을 전후해 스페인에서 최종적으로 추방된 모리스코(Morisco)들, 두 물결이 겹겹이 이 전통을 현재까지 보존하였습니다. 특히 셰시아 산업이 튀니스에서 본격적으로 자리 잡고 시장까지 형성된 시점은 17세기 초 모리스코 이주 물결과 더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습니다. 이들이 가져온 펠트(Felt, 양털을 압축해 만든 천) 가공 기술이 튀니스에 자리 잡으면서, 붉은 염료로 물들인 반구형 모자가 독자적인 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모자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무려 4개월에서 5개월이 소요됩니다. 제르바(Djerba)나 가프사(Gafsa)에서 자아낸 양모를 여성 장인들이 집에서 뜨개질해 기본 형태인 카부스(Kabbouss)를 만들면, 메제르다(Medjerda) 강가의 축융(縮絨, 펠트를 다지는 공정) 공장 '엘바탄(El Battan)'으로 넘어가 두들기고 다져 단단한 펠트로 바뀝니다. 이후 부드러운 결을 살리기 위해 엉겅퀴 가시로 표면을 긁어내고, 자군(Zaghouan) 지역의 염색 기술로 특유의 진홍빛을 입힌 뒤에야 비로소 상점 진열대에 오릅니다. 한때 수만 명에 달했던 샤우아시는 오늘날에는 손에 꼽을 정도의 작업장만 남았다고 하니, 붉은 모자 하나에는 사양길에 접어든 수공업의 위태로움도 함께 얹혀 있는 셈입니다. 이 시장이 자리한 튀니스 메디나는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붉은 모자를 낳은 도시 골목의 수공업 전통은 아프리카 대륙 다른 메디나에서도 되풀이됩니다. 모로코 페스(Fez)의 '페스 메디나(Medina of Fez)'는 1981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가죽 무두질 공방 타너리(Tannery)가 골목마다 밀집해 있어 셰시아 시장과 마찬가지로 좁은 골목 자체가 하나의 생산 시스템으로 기능합니다. 한국에서는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산모시짜기(韓山苧織, Weaving of Mosi in the Hansan Region)를 짝지어 볼 수 있습니다. 손끝의 감각만으로 실을 고르고 짜는 여성 장인들의 오랜 협업 구조가, 양모를 손질하는 튀니지 여성 장인들의 방식과 겹쳐 보이기 때문입니다.
▶ 손에서 손으로 건너온 것들(What Has Passed from Hand to Hand) : 빨간 페이스트, 회백색 성벽, 진홍빛 모자. 이 세 가지 단어는 저마다 다른 재료로 만들어졌지만, 모두 손에서 손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며 버텨온 것들입니다. 화려한 유적만이 한 나라를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부엌 찬장에 놓인 페이스트 통 하나, 골목 한켠의 낡은 작업대 하나가 오히려 더 정직하게 그 나라를 말해줄 때가 있습니다.
يوفى مال الجدّين وتبقى صنعة اليدين
Grandparents' wealth runs out, but the craft of the hands remains.
조상에게 물려받은 재산은 다할지라도 손으로 익힌 솜씨는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