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성지(The Holy Land), 팔레스타인(State of Palestine)으로 떠나보겠습니다. 지중해와 요르단강 사이에 자리한 팔레스타인은 고대 가나안의 도시와 문화에서 로마와 비잔틴 제국, 이슬람 왕조와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세력과 문화가 거쳐 간 땅입니다. 특히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가 서로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팔레스타인은 세계 어느 곳과도 비교하기 어려운 문화적 풍경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세계유산은 종교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베들레헴(Bethlehem)의 예수 탄생 교회와 순례길(Church of the Nativity and the Pilgrimage Route), 헤브론(Hebron)의 알칼릴 구시가지(Hebron/Al-Khalil Old Town), 예리코(Jericho)의 고대 도시 유적과 바티르(Battir)의 올리브나무·포도나무 문화경관은 종교와 생활, 도시와 농업이 오랜 시간 함께 만들어 온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 쿠란이 공존하는 팔레스타인으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땅에 뿌리내린 존버의 미학, 소무드(Sumud: The Aesthetics of Staying Rooted in the Land) : 소무드(Ṣumūd, صمود)는 아랍어 동사 사마다(ṣamada, صمد, 버티다·견디다)에서 파생된 명사로, 흔히 ‘꿋꿋함’ 또는 ‘땅에 대한 인내’로 번역됩니다. 이 단어가 지금과 같은 사회적 무게를 얻은 것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Third Arab–Israeli War) 이후의 일입니다. 땅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농부(아랍어 펠라, fellah, فلاح)의 이미지가 이 단어의 상징이 되었고, 이후 요르단과 팔레스타인 합동위원회가 1978년 바그다드 아랍정상회의에서 ‘소무드 원조기금(Sumud Aid Fund)’을 조성하면서 정치적 언어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소무드를 실천하는 이를 가리켜 사미드(ṣāmid, صامد, 남성형)와 사미다(ṣāmida, صامدة, 여성형)라 부르는데, 학자들은 이를 다시 ‘정적 소무드’와 ‘저항적 소무드’ 두 갈래로 구분합니다. 전자는 그저 땅에 머무는 것이고, 후자는 대안적 제도를 만들어가며 점령 체제에 균열을 내는 쪽입니다. 이 단어의 상징으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이 올리브나무입니다. 가지치기 없이도 수백 년을 버티는 이 나무처럼, 소무드는 화려한 저항이 아니라 매일 아침 밭에 나가 물을 주는 반복 속에 깃듭니다.
땅에 대한 끈질긴 애착이라는 점에서, 서아프리카 사헬 지대 풀라니(Fulani) 목축민의 야랄과 데갈(Yaaral and Degal)이 떠오릅니다. 말리의 이 풍습은 2005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지정되었는데, 기후변화와 지역 분쟁으로 이동 경로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점에서 소무드가 처한 상황과 묘하게 겹쳐집니다. 다만 풀라니 목축민이 ‘이동’을 통해 정체성을 지킨다면, 팔레스타인의 소무드는 반대로 ‘이동하지 않음’을 통해 정체성을 지킨다는 점에서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 바늘 끝에 새긴 마을의 지도, 타트리즈(Tatreez: A Village Map Stitched by the Needle Tip) : 타트리즈(Tatreez, تطريز)는 팔레스타인 전통 자수입니다. 2021년 12월 15일, 유네스코는 온라인으로 열린 제16차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팔레스타인 자수의 관행, 기술, 지식과 의례’를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문화부는 이 결정이 팔레스타인 자수에 대한 팔레스타인 민족의 배타적 소유권을 국제사회가 인정한 것이라고 자평했습니다.
타트리즈의 특징은 지역마다 문양과 색실의 배합이 달랐다는 데 있습니다. 여성들이 입는 전통 원피스 ‘토브(thobe)’의 자수만 보고도 착용자가 베들레헴 출신인지 라말라 출신인지, 결혼했는지 여부까지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하니, 바늘땀 하나하나가 일종의 신분증이었던 셈입니다.
바늘과 실로 정체성을 기록한다는 발상은 한국에도 있습니다. 충청남도 서천 한산 지역의 모시짜기(Mosi Jjagi)는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실을 삼고 베틀에 올리는 전 과정이 한 지역 공동체의 손끝 기억으로만 전승된다는 점에서 타트리즈와 나란히 놓을 만합니다. 두 유산 모두 화려한 완제품보다 그것을 만드는 손의 노동 자체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 할머니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이야기, 히카예(Hikaye: Tales Carried in a Grandmother's Voice) : 히카예(Hikaye, حكاية)는 팔레스타인의 구전 설화로 주로 나이 든 여성이 겨울밤 화롯가에 둘러앉은 이웃과 아이들에게 들려주던 이야기 양식입니다. 2005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Masterpiece of the Oral and Intangible Heritage of Humanity)으로 먼저 선정되었고, 2008년 정식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습니다. 아랍여성연합(Arab Women's Union)과 카탄재단(A. M. Qattan Foundation) 같은 시민단체들이 이 등재를 위해 손을 맞잡았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문제는 이 전통이 대중매체의 확산과 함께 빠르게 쇠퇴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여성의 목소리로 이어지는 가면극 형식의 구전 전통은 서아프리카에도 있습니다. 베냉과 나이지리아, 토고 세 나라가 공유하는 겔레데(Gelede, 여성의 지혜와 대지의 힘을 기리는 가면 의식 및 구전 전통)는 2001년 인류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된 뒤 2008년 대표목록에 편입되었습니다. 노래와 춤, 이야기가 한 무대에서 뒤섞인다는 점에서 히카예와는 형식이 다르지만, 여성의 지혜를 공동체가 함께 기억하고 전승하려 한다는 뿌리는 같습니다.
예수의 탄생지 : 예수 탄생 교회와 순례길, 베들레헴(Birthplace of Jesus: Church of the Nativity and the Pilgrimage Route, Bethlehem, 2012) :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0킬로미터를 내려가면 베들레헴(Bethlehem)이라는 도시가 나옵니다. 이 도시 한복판에는 서기 4세기에 처음 교회가 세워진 뒤 오늘날까지 예배가 이어지고 있는 예수 탄생 교회(Church of the Nativity)가 서 있습니다. 기독교 전승은 적어도 2세기부터 이곳을 예수의 탄생지로 여겨 왔으며, 339년에 최초의 교회가 완공된 뒤 6세기에 재건되었습니다.
2012년 6월 29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36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는 이 교회와 주변 순례길을 묶어 "예수 탄생지: 예수 탄생 교회와 순례길, 베들레헴(Birthplace of Jesus: Church of the Nativity and the Pilgrimage Route, Bethlehem)"이라는 정식 명칭으로 세계유산목록(World Heritage List)에 올렸습니다. 등재기준(inscription criteria)은 (iv)와 (vi)였고, 표결 결과는 찬성 13, 반대 6, 기권 2였습니다.
팔레스타인이 2011년 10월 유네스코 정회원으로 가입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이 교회는 팔레스타인의 첫 번째 세계유산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이 등재는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 자체를 두고 이스라엘과 미국이 강하게 반발했고, 미국은 유네스코 분담금 지급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이 교회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바로 그날, 동시에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List of World Heritage in Danger)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1,700년 가까이 버텨온 건물이 왜 하필 등재되는 순간 위험 판정을 받았는지, 그 답을 따라가다 보면 이 유산의 진짜 얼굴이 드러납니다.
예루살렘 옛 시가지와 성곽(Old City of Jerusalem and its Walls†, 1981) : 독자 여러분, 가로세로 900미터 안팎의 사각형 하나를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축구장 여러 개를 겹쳐 놓은 정도의 좁은 공간 안에 세 종교의 성지가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통곡의 벽 앞에서 몸을 흔들며 기도하는 유대인, 황금빛 돔 아래에서 예배하는 무슬림, 그리고 예수가 묻혔다가 부활했다고 전해지는 무덤 앞에서 촛불을 밝히는 그리스도인.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골목과 광장을 오가며 살아가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 구시가지입니다.
성벽에는 여덟 개의 문이 있습니다. 다마스쿠스 문(Damascus Gate), 야파 문(Jaffa Gate), 헤롯 문(Herod's Gate), 시온 문(Zion Gate), 분뇨 문(Dung Gate), 사자 문(Lions' Gate), 새 문(New Gate) 등 일곱 개의 문은 지금도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으며, 황금 문(Golden Gate) 하나는 오래전에 봉쇄되었습니다. 성벽 안쪽은 오늘날 무슬림 구역, 그리스도인 구역, 아르메니아인 구역, 유대인 구역이라는 네 구역으로 구분됩니다. 하지만 골목을 걷다 보면 향신료 냄새와 종소리, 기도 소리가 서로 다른 경계를 넘어 뒤섞여 흘러나옵니다.
1981년, 유네스코는 이 역사적 도시 공간과 성벽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습니다. 그런데 신청서를 낸 주체는 오늘날 이곳을 통치하는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그 나라는 바로 요르단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국제법상 지위와 세계유산의 관리 문제를 둘러싼 복잡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 이 유산은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의 국제법상 지위와 주권 문제로 유산의 귀속 국가를 둘러싼 논쟁이 있습니다. 해당 유산은 제3자인 요르단이 1981년 유네스코에 신청하여 등재된 세계유산으로, 2026년 현재도 공식 문서에는 ‘요르단이 제안한 유산(site proposed by Jordan)’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