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속, 미와 추, 생과 사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를 체화한 도스토옙스키의 통찰
국내 러시아문학 최고 권위자가 연구한 도스토옙스키의 ‘미술평론’
★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 · 고리키 세계문학연구소 학술위원 역임
★ 2002 러시아 문화예술 최고 훈장 푸시킨 메달 · 2017 조지아 대통령상 수상
◎ 도서 소개
러시아문학자 조주관 교수가 안내하는 도스토옙스키의 ‘구원의 미술관’
도스토옙스키가 꿰뚫어본 ‘인간 내면의 양면성’과 ‘예술적 진실’
‘미술평론가’로서의 도스토옙스키를 발견하다!
“예술작품을 창의성의 교재로 삼은 그의 문학은 그 자체로 거대한 미술관(美術館)인 셈이다.”
― 작가의 말에서
국내 러시아문학 최고 권위자 조주관 교수의 저서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이 아르테에서 출간되었다. 반세기가량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에 경도되어 살아온 저자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도스토옙스키의 ‘미술평론’과 독자적인 ‘미술관(美術觀)’을 깊이 탐구한 책이다. 당대 미술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도스토옙스키는 시각예술의 전문가로서 자기만의 해석과 평론을 『작가 일기』에 기록해놓았다. 이 일기에는 마음의 고통으로 방황하던 시기에 미술 관람을 통해 치유받은 일화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일기뿐 아니라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도 화가와 작품명이 자주 등장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예술을 모르면 인생이 외로워진다’고 생각했기에 여행 때마다 유명한 미술관을 찾아다녔고, 예술작품에 심취해 있는 순간에 커다란 행복을 느꼈다. 그는 미술관을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표현하며, 미술관에서 자주 황홀경에 휩싸였고 이러한 경험은 소설을 창작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렇듯 그가 감명받은 미술작품은 세 가지 형태로 남아 있다. 첫째는 『작가 일기』와 『도스토옙스키 아내의 회고록』에 남은 기록, 둘째는 소설에 실제로 언급된 작품명, 셋째는 ‘미술평론’에서 논한 그림들이다.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은 조주관 교수가 도스토옙스키가 남긴 세 가지 형태의 기록물을 면밀히 연구해 ‘그만이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탁월한 안목’, 즉 도스토옙스키의 미술관(美術觀)을 밝혀내는 첫 시도이다.
조주관 교수는 단순히 도스토옙스키의 미술작품 취향을 밝히는 데서 나아가, 특정 화가들을 작중인물의 창조에 ‘회화적 상상력’으로 활용한 기저를 분석함과 동시에, ‘인간 내면의 양면성(성과 속, 미와 추, 생과 사)’을 첨예하게 드러내는 도구로서 혹은 도스토옙스키가 꿰뚫어본 ‘예술적 진실’로서 미술이 어떤 형태로 그의 문학작품에 풍부한 자양분이 되어주었는지를 해부하듯 낱낱이 탐구한다.
저자는 이 작업을 위해 『백치』『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죄와벌』『악령』『지하로부터의 수기』『미성년』『폴준코프』등의 소설을 ‘시각예술적 관점’의 독법으로 새롭게 번역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들어 있는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작품은 이전에 읽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감수성으로 다가간다. 미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전에는 스쳐 지나갔던 ‘도스토옙스키의 디테일’을 새롭게 발견하기를 원한다면, 그로써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확인하고 싶다면 이 책이 특별한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 본문에서 〈성가대〉
섬광으로 빛나는 도스토옙스키는 예술의 신이다. 그 신의 섬광은 나의 무지(blindness)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통찰의 기회도 준다. 그 섬광에 적응하기 위해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독서 근육을 꾸준히 천천히, 그리고 열심히 단련해왔다. 읽고 쓰기만 하는 일상을 보내는 나에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새로운 에너지 충전소가 되어주었다.(13쪽)
미술이나 문학 모두 고통과 상실의 예술이다. 카라치의 그림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고통의 길을 택한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고통은 도스토옙스키의 최대 관심사다.
그의 문학은 고통을 관리하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고통, 분노, 슬픔과 같은 것은 우리가 행복이라 부르는 것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뭉치로 따라다닌다.
도스토옙스키의 말에 따르면 “고통을 거치지 않고는 행복을 알 수 없다. 황금이 불로 정제되는 것처럼 이상도 고통을 거침으로써 순화되는 것이다. 천상의 왕국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사실 세상은 고통받는 사람들로 인하여 전진해간다. 본디 기독교의 기본 사상에서 나온 ‘고통을 통한 구원’은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문법이 되었다.(38쪽)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에서 돈은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의 상징이다. 인간들은 돈으로 타인을 지배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 세상을 변하게 한다. 그의 소설에서 돈은 힘이며 자유이고 시간이자 언어다. ‘돈’이라는 코드로 인간과 사회를 연구하고 분석했던 도스토옙스키가 티치아노의 〈공전〉을 좋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돈을 소재로 세기를 넘나드는 사상과 예술을 빚어낸 위대한 작가였다.(79쪽)
도스토옙스키는 『작가 일기』에서 쿠인지의 그림 〈발라암섬의 풍경〉도 소개한다. 여기서 도스토옙스키는 유럽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는 러시아 화가들에 대해 다루며 유럽인들은 러시아 문화와 국민정서를 모르기 때문에 러시아 미술을 정확하게 감상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러시아 자연환경을 모르면 풍경화에 대한 이해는 더 어렵다. 예컨대 쿠인지의 풍경화 〈발라암섬의 풍경〉속에 그려져 있는 자작나무 두 그루가 그 좋은 예다.(73쪽)
도스토옙스키가 가장 사랑한 화가 역시 라파엘로다. 그는 라파엘로를 최고의 예술가로 꼽았고, 그의 작품 〈시스티나의 마돈나>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림이라고 격찬했다. 바로 이 성화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류의 이상을 찾았다. 그가 ‘라파엘로 그림의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독일 드레스덴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아내와 함께 츠빙거궁의 미술관에 수시로 들러 라파엘로의 그림들을 즐겨 감상했다. 그의 그림들은 도스토옙스키의 심장을 들뜨게 하며 끊임없이 영감을 주었고 창작열을 불태우게 했다. 라파엘로의 그림에 영감을 받은 도스토옙스키는 4대 장편 『죄와 벌』 『백치』 『악령』 그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아름다움과 구원’의 문제를 서사의 모티프로 삼았다.(121~122쪽)
어린이에 대한 도스토옙스키의 유별난 사랑과 관심은 유명하다. 그의 아내도 남편의 어린이 사랑을 자주 강조했다. 그의 소설들과 『작가 일기』에서도 어린이는 계속 주목을 받았다.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어린아이들의 이미지는 라파엘로의 성화 〈시스티나의 마돈나〉의 하단에서 확인된다.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뻗친 귀엽고 순수한 모습에서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아이들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이 성화에 두 아기 천사가 없었다면, 종교성과 비극성만 강조되고, 삼각형의 안정적 구도가 부각되어서 성스러움이 반감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두 아기 천사가 매우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작고 매력적인 조연을 곁들이려 한 라파엘로의 아주 치밀한 계산이었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 역시 아기 천사들의 이미지를 놓치지 않았다. 그의 긍정적인 인물들은 한결같이 어린이의 특징을 공유한다. 『죄와 벌』의 소냐, 『백치』의 미시킨,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알료샤는 모두 어린이의 순수함과 천진함을 갖고 있다. 특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조시마 장로의 어린이 사랑은 그의 설교에 잘 드러나 있다.(142~143쪽)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소설에서 ‘죽음의 가시화(형상화)’를 모색했다. 그의 관심은 죽음의 미학에 있다. 미학은 ‘무엇’보다는 ‘어떻게’의 문제다. 말하자면 미술작품이 죽음에 대해 얘기할 때는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똑같은 주제라도 그것을 다루는 방법은 화가마다 다르다. 그리하여 화가에게 중요한 것은 죽음을 ‘어떻게’ 다루는가이다. 여기서 ‘어떻게’는 화가의 개성을 반영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시각예술인 미술과 화가의 의무를 논할 때, ‘보기’의 문제를 중시한다. 그에게 화가는 무엇보다도 ‘잘 보는’ 사람이며, 그렇기에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211쪽)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에는 클로드 로랭의 그림 〈아키스와 갈라테이아〉가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문학작품에서 반복은 곧 강조를 의미한다. 그의 작품 주인공들은 이 그림을 바로 인류의 ‘황금시대’라 말하며, 자신의 심원한 동경을 나타내는 강렬한 상징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루카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황금시대란 진실한 인간들 사이의 진실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말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이 황금시대가 자기 시대에는 하나의 허망한 꿈에 지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꿈을 단념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며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들과 감정들이 이 꿈과 첨예하게 모순된다고 할지라도 이 꿈을 단념할 수 없었다. 이 꿈이야말로 도스토옙스키적 유토피아의 진짜 핵심이며 진실한 황금의 내용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이 자신을 알고 또 사랑할 수 있는 세계 상태이다. 그 상태에서는 문화와 문명이 인간 영혼의 발전에 대해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242쪽)
도스토옙스키는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고차원의 리얼리티’를 요구한다. 그는 화가들에게 대상을 자세히 정확하게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대상의 함축적 의미를 파악하여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술가는 자신만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때 비로소 현실의 진면목을 작품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308쪽)
도스토옙스키가 강조한 ‘눈’은 시각예술인 그림을 논하는 이야기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가 언급하는 화가들은 모두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는’ 눈의 소유자이다. 그러한 화가들의 예술적 상상력은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스토옙스키에게 창작과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눈’에 대한 예술적 접근을 본격적으로 보여준 예술가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창조해낸 시각예술은 현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3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