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뜨겁게 폭발했던 사유의 시대
충돌과 융합의 한·중·일 사상사
◎ 도서 소개
시대정신으로 읽는 1~8세기 동아시아 사상의 특징
유교, 불교, 도교의 공존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극심한 문명의 갈등을 겪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 그 핵심은 종교적 대립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하나의 종교로 수렴한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는 유교, 불교, 도교의 가치를 다채롭게 수용한 동아시아 문화의 전통을 경험했다. 세 가지 사유의 치열한 충돌과 융합을 통해 한‧중‧일을 묶는 ‘동아시아 세계’가 형성되어 동아시아의 다원주의적 문화를 함께 발전해온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부터 이어진 유교와 도교 전통 아래, 외래종교 불교의 유입, 토착신앙의 발전 등 1~8세기 동아시아는 인간과 삶에 관한 다채로운 생각들이 얽히고설킨 사유의 용광로와 같았다. 우리의 기틀을 이루는 세 가지 사상은 국가 통치이념인 유교, 내세를 기원하는 불교, 개인 수양을 위한 도교로 나뉘어 충돌 끝에 조화를 이루었다.
이 책에서는 다섯 명의 인물의 고전 속에 드러난 동아시아 문화의 생생한 기원을 들여다본다. 동아시아 제왕학의 교과서였던 『정관정요』, 우리나라 삼국의 사상적 흐름이 담긴 최치원의 『계원필경』과 『사산비명』, 김부식의 『삼국사기』, 일연의 『삼국유사』, 일본 문화의 기원이 된 『일본서기』의 기록을 통해, 우리 의식 깊숙이 자리한 화합과 상생의 정신을 새긴다.
▶ 시리즈 소개
시대정신으로 읽는 지성사, ‘역사의 시그니처’
국내 최고 연구자들의 입체적 해설로 만나는 인문 앤솔러지
‘역사의 시그니처’는 기원전부터 현대까지 각 세기의 대표적 시대정신을 소개하는 인문 교양 시리즈입니다. 한 시대를 이끈 상징적인 인물들을 엄선해 그들이 남긴 말과 글을 소개하고 인류의 사상이 어떤 갈래로 이어져 왔는지 살펴봅니다.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시대별로 어떻게 충돌하고 융합되어 오늘의 21세기를 만들었는지 ‘역사의 시그니처’ 시리즈를 통해 만나보세요.
◎ 책 속으로
본래 우리나라의 토착 신앙은 천신과 산신을 숭배하는 것이지만, 중국에서 들어온 유교와 도교, 그리고 인도에서 비롯하여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불교가 융합된 것이다. 결국 토착 신앙인 자연숭배 신앙에 유교적 가치인 충효 사상, 노자의 무위자연 사상, 불교의 이상인 집착과 구애를 받지 않는 자비와 선행까지 모두를 아울러 함께 실천한다는 의미이다.
【유‧불‧선을 융합한 풍류도 정신의 부활_74쪽】
당나라 때에는 황제가 개인적으로 불로장생을 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도교를 숭상하였다. 노자와 같은 ‘이(李)’ 씨 성을 가진 당대의 황실은 통치의 합법성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자신들을 노자의 후예라고 칭하며 도교를 받들었다.
【당나라에 널리 퍼진 최치원의 문명_77쪽】
신라의 장군 김유신은 15살에 화랑이 되었으며, 그를 따르는 낭도들을 용화향도(龍華香徒)라고 불렀다. 당시에 화랑은 승려 낭도 1명과 낭도 몇백 명을 거느렸다. 용화향도는 미륵을 좇는 무리라는 뜻으로 불교의 미륵불과 연관이 있었다.
【김유신은 괘 그 많은 기도를 올렸을까?_165쪽】
발해는 유학을 목적으로 주자감을 설립하여 귀족자제에게 유교 경전을 가르쳤으며, 당나라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빈공과에 급제한 사람을 많이 배출하였다. 이 중에는 빈공과에 수석으로 합격한 합격자도 있었다.
【발해를 우리의 역사로 명확히 인식하다_192쪽】
삼국통일 이후 신라는 통합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나라를 하나로 묶는 이념을 필요로 하였다. 유교, 불교, 도교에 더불어, 민간신앙과 설화, 신화 역시 당대 이념의 형성에 큰 역할을 끼쳤다.
【피리를 불어 통일신라의 건국을 알리다_194쪽】
신라의 불교는 사람의 병을 치료하고, 나라가 위기에 처하였을 때 신이한 기적을 통하여 이를 극복하는 호국적 성격을 보인다. 이러한 호국불교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우리나라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의 불교는 사람을 고치고 나라를 지킨다_215쪽】
왜국이 백제부흥운동에 대규모 군대를 파견한 데에는 백제로부터 선진문물을 지속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의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백제와 왜국은 전쟁에서 패배하고 말았고, 이후 백제의 왕족과 귀족 및 엘리트는 왜국으로 망명하여 일본 고대 국가의 발전과 고대 문화의 진흥에 기여하였다.
【일본이 백제부흥운동을 지원한 이유_2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