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중세를 주목해야 하는가? 과학의 눈부신 발전을 목도하고 있는 오늘날, 중세는 종종 인간 이성의 암흑기로 오해받곤 한다. 그러나 편견과 달리 중세는 인류 지성사의 중대한 초석이었다. 고대 사상의 유산을 이어받아 인간 지성을 꽃피운 시기, 중세만의 독창적인 사유를 통해 서양 정신의 기본적인 토양을 이룬 시기, 인간과 세계에 관한 복합적인 탐구로 가득한 시기, 이러한 중세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고대 그리스철학과 그리스도교라는 두 문화의 만남을 통해 찬란한 빛의 시대 중세가 탄생했다. 융성하고도 혼란했던 로마제국의 시작과 끝에 걸쳐 두 문화가 충돌했고, 서서히 중세 특유의 사유가 태동했다. 철저히 인간 이성을 바탕으로 한 그리스-로마 철학에 그리스도교의 초월적 절대자, ‘신’이 받아들여진 이후, 고대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중세 사유의 색채가 드러났다. 신앙을 철학적 방법론과 결합하는 다양한 지적 실험 끝에 영원한 진리를 향한 인류의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사도 바울로부터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는, 중세 초기를 살아냈던 다섯 인물의 사유와 삶을 통해 중세의 시대정신을 돌아본다. 서양을 넘어 인류 지성사의 위대한 유산으로 남은, 그리스-로마 문화와 그리스도교라는 서양 문화의 두 기둥을 생생히 만난다. 여전히 각자의 신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중세 지성의 역사는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빛나는 거울이 될 것이다.
▶ 시리즈 소개
시대정신으로 읽는 지성사, ‘역사의 시그니처’
국내 최고 연구자들의 입체적 해설로 만나는 인문 앤솔러지
‘역사의 시그니처’는 기원전부터 현대까지 각 세기의 대표적 시대정신을 소개하는 인문 교양 시리즈입니다. 한 시대를 이끈 상징적인 인물들을 엄선해 그들이 남긴 말과 글을 소개하고 인류의 사상이 어떤 갈래로 이어져 왔는지 살펴봅니다.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시대별로 어떻게 충돌하고 융합되어 오늘의 21세기를 만들었는지 ‘역사의 시그니처’ 시리즈를 통해 만나보세요.
◎ 책 속으로
바울로가 없었다면 가톨릭교회도, 그리스-라틴 교부신학도, 그리스도교적 헬레니즘 문화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도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그리스-로마 문화와 그리스도교의 교차점에서 탄생한 중세철학의 유구한 역사도 태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상적 대화에서처럼 그리스도교와 주변 문화 사이에 이루어졌던 대화 역시 대화에 참여하는 상대자를 변화시켰다.
【그리스도교를 세계종교로 만든 장본인_59쪽】
플로티노스가 제시한 신플라톤주의가 지중해 연안으로 퍼져나갈 무렵, 그리스도교는 박해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종교적 성장과 함께 자신들이 믿는 교리를 신학이라는 학문으로 발전시키기를 원했다. 이를 위하여 거쳐야 했던 논증과 정의 과정에서는 철학과 수사학에서 빌려온 개념과 범주가 사용되었다.
【세상의 불완전함을 숙고하는, 삶의 예술가_106쪽】
오리게네스는 이미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서 헬레니즘 교육을 받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알렉산드리아 교리학교의 교장이 되었을 때, 그는 세례 지원자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자신의 온 힘을 다했다. 그는 고등 과정의 학생들에게 여러 철학 학파의 가르침을 자세히 설명하고 그들의 저서들을 해설해서 위대한 철학자라는 명성을 얻기에 이른다.
【플라톤의 철학으로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다_126쪽】
그리스철학의 신 관념에 따르면, 그 자체로 완전한 신은 그 어떤 결핍도 없으므로 고통을 겪는다는 말은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플로티노스의 일자도 완전성의 충만함이기 때문에 어떤 결함이나 고통도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리게네스는 플라톤 철학에 심취했음에도 ‘신도 고통받는다’고 대담하게 주장하고 있다.
【사랑의 고통을 통한 신의 구원_150쪽】
아우구스티누스가 신만을 절대적인 향유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해서, 결코 이 세상의 다른 사물들을 경시하거나 악의 근원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에게 만물은 창조주가 ‘보시니 좋더라’라고 선포했던 근본적으로 좋은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전통에 따라 철학에 도입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선하다’라는 원리에 따라 사유하고 있다.
【존재의 가치에 따른 사랑의 윤리학_193쪽】
보에티우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받아들여 악은 그 자체로서 실체가 아니라 선의 결여이며, 악에 대한 책임은 궁극적으로 피조물의 자유의지에 있다고 보았다. 『철학의 위안』에는 이 모든 것에 대한 보에티우스의 설명이 자세하게 이어진다. 그러나 그가 궁극적으로 정말 묻고 있는 것은 “왜 내가 감옥에 갇혀 있는가?” 하는 실존적인 질문이었다.
【철학은 운명 앞에 답을 줄 수 있을까?_2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