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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의 님의 침묵 상세페이지

작품 소개

<한용운의 님의 침묵> 한용운은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 한국의 시인이다. 그는 불교 승려이며 작가이자 독립 운동가이다. 본관은 청주이고, 호는 만해(萬海)이다.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이었다.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저항 정신으로 집도 조선총독부 반대 방향인 북향으로 지었고, 식량 배급도 거부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또한, 친일로 변절한 최남선이 한용운과 가까운 사이임을 자처하자, 한용운은 ‘최남선이라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이미 장례를 치러서 당신은 모르는 사람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 책은 시를 수록한 ‘님의 침묵’이다.

출판사 서평

서문을 대신하여

한용운은 1879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491번지에서 아버지 한응준과 어머니 방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여섯 살때 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열네 살이 되던 해인 1892년에 전정숙과 결혼했다. 열여섯 살 되던 해인 1894년 부터는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18세 때인 1896(또는 1897)년 고향 홍성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수년 간 불교서적을 읽었다고 한다. 출가의 원인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당시 고향 홍성군 홍주에서도 갑오농민전쟁과 의병운동이 전개된 것으로 미루어 역사적 격변기의 상황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1905년 백담사에서 김연곡에게 득도한 다음 전영제에게 계(戒)를 받아 승려가 되었고, 이후 수년 간 불교활동에 전념했다. 이즈음에 불교 관련 서적뿐만 아니라 양계초(梁啓超)의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 등을 접하면서 근대사상을 다양하게 수용했으며, 1908년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혔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이 그의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911년 송광사에서 박한영·진진응·김종래 등과 승려궐기대회를 개최하여 일본의 조동종(曹洞宗)과 한국불교의 통합을 꾀한 이회광 등의 친일적인 불교행위를 규탄·저지했다.
1913년 박한영 등과 불교종무원을 창설했고 1917년 8월 조선불교회 회장에 취임했다. 그해 12월 어느 날 밤 오세암에서 좌선하던 중 바람에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진리를 깨우쳤다고 한다. 1918년 불교잡지 유심(惟心)을 창간했으며 이 잡지를 통해 불교 논설만이 아니라 계몽적 성격을 띤 글을 발표했고, 또 신체시를 탈피한 신시 심(心)을 발표하여 문학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1919년 3·1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으며, 독립 선언서 낭독과 만세 운동에 가담했다가 피신하지 못하고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받았다. 출옥 후에는 언론에 칼럼을 발표하는 한편, 1922 - 1923년 민립대학 설립운동과 물산장려운동 등의 민족운동에도 참여했다. 이 기간 중 그는 김성수, 조만식, 안재홍, 이광수, 방응모 등을 만나 인맥을 쌓기도 했다.
1924년 조선불교청년회 회장에 취임했고, 1927년 신간회 결성에 적극 참여해 중앙집행위원과 경성지회장에 피선되어 활동했으며, 1931년 잡지 불교를 인수하여 사장으로 취임했다. 같은 해 김법린·최범술·만공·김상호 등이 조직한 청년법려비밀결사인 만당(卍黨)의 당수로 추대되었으며, 1936년 단재 신채호의 시신이 비밀리에 입국한 것을 접하고 방응모와 함께 신채호의 묘비건립과 정약용 서세100년기념회 개최에 참여했다. 1940년 창씨개명 반대운동과 1943년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만년에는 방응모, 정인보, 안재홍, 홍명희, 김성수, 만공 등과 교류하며 그들이 보내주는 생활비로 어렵게 생활하였다. 일제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비타협적인 독립사상을 견지하다가,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은 성북동 집(심우장)에서 중풍으로 66세의 나이로 죽었다.

- 한용운의 약력과 소개는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에서 발췌하여 수록하였음을 밝힌다.


저자 프로필

한용운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879년 8월 29일 - 1944년 6월 29일
  • 경력 1927년 경성지회 회장
    1927년 신간회 중앙 집중 위원
    1923년 조선민립대학기성회 상무 위원
  • 데뷔 1926년 시집 [님의 침묵]
  • 수상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2017.05.2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한용운(韓龍雲, 1879 ~ 1944)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 한국의 시인, 불교 승려, 작가이자 독립 운동가이다. 본관은 청주이고, 호는 만해(萬海)이다.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이다.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저항 정신으로 집도 조선총독부 반대 방향인 북향으로 지었고, 식량 배급도 거부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또한, 친일로 변절한 최남선이 한용운과 가까운 사이임을 자처하자, 한용운은 ‘최남선이라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이미 장례를 치러서 당신은 모르는 사람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1879년 충청남도 홍성 출생.
1908년 명진학교(明進學校, 지금의 동국대학교) 졸업.
28세에 설악산 백담사에서 불문에 귀의.
1919년 3월 1일(3·1 운동) 불교 대표로 독립 운동에 참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감옥살이.
1926년 시집 님의 침묵 출판
1944년 서울에서 중풍으로 사망.

목차

님의 침묵
일출
비바람
모순(矛盾)
반달과 少女
심우장(尋牛莊) 1
심우장(尋牛莊) 2
심우장(尋牛莊) 3
山村의 여름저녁
사랑의 끝판
꿈이라면
나의 꿈
당신이 아니더면
해당화
나의 노래
사랑하는 까닭
행복
두견새
떠날 때의 님의 얼굴
후회
그를 보내며
가지 마셔요
사랑의 측량
비밀
포도주
님의 얼굴
달을 보며
최초의 님
자유 정조(自由貞操)
진주
잠없는 꿈
착인
거짓 이별
참말인가요
쾌락
거문고 탈 때
밤은 고요하고
당신의 편지
당신의 마음
당신이 가신 때

예술가
참아주셔요
눈물
생명
슬픔의 삼매
꿈과 근심
비방(誹謗)
심은 버들
꽃이 먼저 알아
인과율
어디라도
우는 때
수의 비밀
버리지 아니하면
‘사랑’을 사랑하여요.
요술
여름밤이 길어
명상
오셔요
고대
꽃싸움
군말
님의 손길
차라리
의심하지 마셔요
당신은
첫키스
?
어느 것이 참이냐
선사의 설법
금강산
낙원은 가시덤불에서
만족
論介의 愛人이 되어 그의 廟에
잠꼬대
계월향에게
반비례
사랑의 불
타고르의 詩(GARDENISTO)를 읽고
구원(久遠) 2
구원(久遠) 3
산골물
칠석
낙화(落花)
산거(山居)
경초(莖草)
지는 해
해촌(海村)의 석양(夕陽)
강(江) 배
독자에게
나의 길
복종
생의 예술
나는 잊고자
이별
고적한 밤
길이 막혀
사랑의 존재
꿈 깨고서
하나가 되어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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