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둘이 손 잡고 일본』은, 마치 대기 중이던 여행 열정을 쏟아내듯 일 년 사이에 하쿠바, 대마도, 도쿄, 후쿠오카를 누빈 어느 부산 게이 커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일제 불매운동과 코로나로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일본이었지만, 스키와 쇼핑, 퀴어 퍼레이드와 게이바에서 재점화된 그들의 해외 여행 에너지는 끊임없이 새로운 여정을 만들어냅니다. 가까운 듯 멀고, 익숙한 듯 새롭게 다가오는 이웃 나라에 ‘홀릭’ 된 지난 1년의 기록이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십 년 전 아파서 즐기지 못한 핫뽀네 스키장에 다시 가보자’는 작은 발단으로 시작된 일본 여행은 대마도에서의 운전 연수, 도쿄의 퀴어 퍼레이드, 후쿠오카의 렌터카 여행으로 이어지며 전혀 새로운 일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스키를 타고, 옷을 사고, 게이바에서 흥겨운 시간을 보낸 듯 보이지만, 그 속에는 세대를 아우르는 추억, 다채로운 욕망, 그리고 게이 커뮤니티에 대한 솔직하고도 유쾌한 통찰이 녹아 있습니다. 이 책은 보통의 일본 여행기와는 차원이 다른 독특한 시선으로 일본을 탐험하며, 독자들에게 색다른 일본을 선사합니다.
『남자 둘이 손 잡고 일본』은 이전에 출간된 국내 한달살기 여행기 『남자 둘이 손 잡고 한달살기』와 시리즈로 연결되며, 주인공인 선우비와 오스씨의 끝나지 않는 여행기를 예고합니다. 지금도 다음 여정을 꿈꾸고 있을 그들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요? 그들의 다음 모험이 궁금하다면, 이 유쾌한 일본 여행기에서 첫 번째 장을 열어보세요.
책 속에서
1.
일본은 최근 법원 쪽에서 성소수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이 속속 나오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차별이 공공연하게 존재하는 나라다. 일본 회사에서 성소수자들이 일하기 편하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 없다. 그런 나라의 퀴어 프라이드 축제 부스가 이렇게 상업화되어도 되는 걸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마냥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 정치계가 게으름 피우고 있으면 이렇게 기업들이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도 있으니까. 뭐가 우선해야 한다는 법은 없는 거 아니야?"
이렇게 딱 정리해서 말하진 않았지만, 대충 이런 뜻으로 오스씨가 나의 조바심을 달래준다.
그 말을 들으니 거대한 상업화의 개입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어쩌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순서의 차이인 건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대한민국 민주화세대를 꼰대라고 지칭하는 이유가 있구나, 나 참 꼬였다 싶다.
좋게 좋게 생각해도 되는데 말이지.
"그러네. 나 참 웃긴다. 해준다는 데도 고까워하고 난리야. 우리나라에선 꿈도 못 꾸는 상황인데."
2.
그런데 뜬금없이 하와이안 셔츠냐, 의문이 들 수 있다. 그 부분을 설명해 보겠다.
내년은 오스씨와 내가 사귄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십 주년 때는 부고 시 재산을 서로에게 주기로 문서 작성해서 공증을 받았고, 오스씨는 가족들에게 커밍아웃했다. 이 정도면 한국에 사는 동성애자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셈인데... 그럼 20주년에는 무엇을 더하지? 고민하다가, 결혼하자. 결정하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는 내년에 결혼을 한다.
일가친척 다 모아놓고 하는 결혼은 아니고, 우리가 부부라는 사실을 증명할 결혼증서를 얻기 위한 결혼이다.
한국 정부는 동성 커플에게 결혼증서를 안 주겠다고 버티고 있어서, 미국에서 받기로 했다. 미국은 해외에 거주하는 외국 동성 커플도 자신의 영토 안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식을 올리면 결혼증서를 발급해 준다. 미국산 결혼증서는 우리가 앞으로 살면서 여행할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효력을 발휘하고, 선진국(한국 포함)에 기반한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에서도 통용된다. 예를 들어, 미국산 결혼증서를 가진 한국 동성 커플은 대한항공의 가족 합산 마일리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3.
오스씨는 일본식 스나쿠 문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도 게이바 방문은 필수였다. 후쿠오카 게이바는 스미요시 신사 주변으로 주로 포진해 있는데, 우리가 묵은 호텔(텐진 미나미 소재) 근처에도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게이바 하나가 있었다. 심지어 오스씨가 좋아하는 GMPD스타일(GMPD는 ガチ(가치:근육) ムチ(무치:체지방 높은 근육) ポチャ(포챠:통통한) デブ(데브:뚱뚱한)을 뜻하는 일본어의 앞 글자를 영어로 줄임말)이 주로 오는 가게다. 월요일에도 영업을 하고, 다른 가게보다 일찍 문을 열어서 오픈시간부터 들어갔다. 한 시간 반을 떠들었는데, 손님은 우리 둘뿐. 요일과 시간을 생각하면 당연한 귀결인데, 상관없었다. 통통한 베어 스타일의 마스터 한 명만으로도 눈요기(오스씨 한정. 난 마른 사람 좋아함)는 충분했고, 다른 손님이 없던 덕에 실컷 수다를 떨 수 있었다. 도쿄의 신주쿠를 방문할 때는 대체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술집에 가기 때문에, 이렇게 체형에 특화된 가게를 가는 건 오랜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