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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자주 읽던 나라의 작품이 아니라서 그런지 다소 새롭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부분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울리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작가님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다섯 살이 되도록 입을 열지 않는 아이 샤허브에게 세상은 벙어리라는 낙인을 찍는다. 하지만 아이의 내면은 결코 비어 있지 않다. 오히려 어른들의 위선과 편견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꿰뚫어 보고 있다. 이 소설은 말을 잃어버린 한 아이의 고통스러운 성장을 통해,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무심한 폭력과 결핍의 풍경을 서늘하고도 다정하게 그려낸다.
목소리를 삼킨 아이. 선택적 함구증을 가진 샤허브와 그의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선택적 함구증. 샤허브는 가족 안에서 소외를 경험하는 어린이입니다. 아빠와 엄마 형 그리고 샤허브. 가족의 구성원 안에서 어린 샤허브가 느끼는 두려움이 말 더듬기 증상을 넘어 소리를 집어 삼키기 까지 꽉 막혀가는 과정과. 어린 아이의 내면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의 미숙함을 투명하게 해체하고 있습니다. 밖으로 소리를 내지 못하고 삼킨 샤허브의 내면에는 무수한 눈과 귀가 있어 가족내 관계의 기울어짐과 어른들의 감정을 읽어냅니다. 작은 아이가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고, 유일하게 강요가 없는 외할머니를 아주 작게 디딜 곳으로 선택하는 과정들이 너무 아프고 인상적이에요. 실화를 모티프로 한 소설은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증상이 아니더라도 유년기에 자기만의 틈새에서 안전함을 학습하던 모든 이들의 기억에 여진을 일으킬 것 같아요.
'나의 몫'을 읽고 이것도 이어 읽으니 이 소설 속의 실어증이 무척 처절한 싸움처럼 느껴져요. 아이의 침묵이 단순한 병증이 아니라 억압적인 구조에 대한 무언의 저항이었고, 억눌린 환경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했음이 아닌지. 타인이 규정한 벙어리라는 낙인에 속으로 파고들며 어둠 속에 웅크리던 소년의 모습은, 단순한 개인의 불행을 넘어 구조적 억압이 남기는 지독한 상처같았어요. 작가님이 표현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깊고 응원하게 되네요
작가님의 다른 책들을 너무나 감동적으로 읽었던 터라 이번 책 역시 첫 페이지를 넘기기 전부터 기대가 참 컸습니다. 이란 여성들의 팍팍한 삶과 시대적 억압을 묵직하게 그려냈던 이전 작품들과 비교하면, 입을 닫아버린 어린 소년의 내면을 따라가는 이번 이야기는 결이 조금 다르지 않나 싶어 처음엔 낯설고도 신선하게 다가오더라고요. 하지만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며 샤허브의 깊은 침묵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보니, 결국 작가님이 우리에게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놀랍도록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폭력적인 환경과 무관심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리거나 스스로 삼켜야만 했던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특유의 따뜻하고 단단한 시선은 이 책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거든요. 가장 안전해야 할 가족 안에서조차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고 다른 형제들과 끊임없이 비교당해야 했던 샤허브를 보며 마음이 참 많이 쓰였습니다. 아이의 그 지독한 침묵이 단순한 고집이나 장애가 아니라, 자신을 몰라주는 어른들의 세상에 맞서는 가장 처절한 방어기제이자 슬픈 저항이었다는 사실이 가슴을 아프게 찔러왔어요. 무심코 던진 어른들의 말 한마디가 아이의 연약한 세계를 얼마나 차갑게 얼어붙게 만드는지 지켜보는 내내 어딘가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편견 없이 온전한 사랑으로 아이를 끌어안아 준 할머니의 다정한 품이 결국 얼어붙은 아이의 입을 열게 하고 다시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가게 하는 과정을 보면서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이 참 많았어요.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샤허브가 마침내 세상 밖으로 꺼내놓은 그 작고 떨리는 첫 목소리가 제 귓가에 조용히 부서져 내리는 것만 같습니다. 그 여운이 마치 차가운 겨울 끝에 닿는 첫 봄볕처럼 뭉클하고 포근해서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네요. 누군가 굳게 닫아버린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는 결국 거창한 가르침이 아니라 묵묵히 기다려주는 다정한 눈빛이라는 걸, 이 따스한 온기를 빌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집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추천합니다. 아이 샤허브의 입장에서 전개 되는 이야기...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알고보니 작가님이 이란 분이신데. 꽤나 새로웠다고 해야 할까... 엄마 얘기도 조금 나오기도 하는데. 끝이 어떻게 될까? 궁금해하면서 읽었네요.
평소 금쪽이를 애청하는 부모의 관점에서 읽었습니다. 섬세하고 생각이 많은 사하브의 문제행동이 일어나기까지 내면의 과정을 아이 입장에서 잘 풀어내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족을 돌아보게 되네요. 부모와 아이의 기질이 맞는건 참 행운같습니다.
<목소리를 삼킨 아이>는 ‘선택적 함구증’을 가진 이란의 한 소년과, 그를 둘러싼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 보니 그것이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입을 열었을 때 가족들이 보이는 반응이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말을 하고 싶어도 차마 입을 떼지 못하게 되는 감정이 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말을 하고 싶어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쉽게 입을 열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외할머니처럼 아이가 조금씩 입을 열어도 크게 흥분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떠벌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비로소 소년이 다시 자연스럽게 말을 하기 시작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벙어리’라고 놀리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거칠게 반항하던 소년은, 어느 순간 스스로 자신이 벙어리라고 인정한 뒤부터 자신만의 어두운 세계 속으로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다. “벙어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순간부터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벙어리라는 말을 들어도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대신 무언가가 목구멍에 걸려 있는 것 같은, 누군가가 내 심장을 할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색깔들도 전부 희미해졌고 태양은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나는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앉아 양 무릎에 얼굴을 묻고 몸을 한껏 옹송그렸다. 다시는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도록 몸을 작게 만들려고 했다. 더는 놀고 싶지도 않았고, 웃는 법도 기억나지 않았다. 나를 기쁘게 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이 때로는 하루 이틀 동안 지속되었다.” 어린 아이에게 ‘너는 …이야’라고 규정하는 말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더 가슴 아픈 사실은, 소년이 처음에는 ‘벙어리’라는 말이 그저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사촌 형이 그 말을 쓰면서 간식을 내밀거나 친절하게 다가오기도 했고, 그런 모습을 보며 다른 아이들도 함께 웃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지만, 때로는 성인들보다 아이들 사이에서 그 잔인함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은 아직 타인의 마음에 어떤 상처가 남는지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많은 일을 그저 놀이처럼 가볍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이나 인종차별 같은 문제가 아이들 사이에서 빈번하고 심각하게 나타나는 이유도 어쩌면 그 때문일지 모른다.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는 시간이 흐르고 사람이 성숙해진 뒤에도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소설의 말미에서 잘 드러난다. 소년은 학교에 들어가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으며 훌륭하게 성장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상처가 남아 있다. 마음속 가해자였던 아버지는 끝내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형의 아버지’로만 남아 있다. 그 위에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도의적인 죄의식까지 덧씌워지면서 그는 또 다른 마음의 짐을 떠안게 된다. 부당한 상처 위에 또 다른 고통이 겹쳐지는 셈이다. “내 입장에서는 자식으로서 아빠를 사랑하려면 많은 것들을 망각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서서히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빠에 대한 믿음은 생기지 않았는데, 왠지 모르게 그 사실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마치 사랑해야 마땅할 아빠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 배은망덕한 자식이 된 기분이었다.” 직접 목격했던 상황은 아니지만, 어린 아이와 마주하는 순간 우리가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 존재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특히 이란이라는 낯선 문화적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말 한마디, 작은 반응 하나가 한 사람의 마음속에 얼마나 깊이 남을 수 있는지를 조용하지만 강하게 보여주는 작품. ______ 그곳에 있으면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내가 말을 못 한다는 사실도 속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를 이해해주었고, 내가 말을 못 한다는 것은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내게 짐이 되지도 않았다. 말을 못 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구역질이 나거나 공포에 휩싸이는 일도 없었다. 아무도 나를 비웃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였다. 나는 몇몇 단어를 소곤소곤 내뱉어보게 되기도 했다. 목소리를 삼킨 아이 | 파리누쉬 사니이, 양미래 저 #목소리를삼킨아이 #파리누쉬사니이 #북레시피 #선택적함구증 #이란소설
우리는 흔히 아이가 말을 하지 않으면 '발달이 늦나 보다' 혹은 '성격이 내성적인가 보다'라고 가볍게 치부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일곱 살까지 입을 닫아버린 소년 샤허브의 시선을 통해, 그 침묵이 사실은 주변의 무관심과 편견에 맞선 처절한 '삼켜진 목소리'였음을 서늘하게 폭로합니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샤허브와 엄마 마리얌의 시선을 교차시키며, 한 가정이 '정상'이라는 기준 아래 얼마나 쉽게 약한 존재를 소외시키는지 보여줍니다. 똑똑한 형은 '아빠의 아들', 말 못 하는 자신은 '엄마의 아들'이라 정의하며 아버지를 '아라쉬 형네 아빠'라고 부르는 샤허브의 모습은 가슴을 후벼파는 슬픔을 안깁니다. 30대를 지나며 누군가의 엄마 혹은 이모로 살아가는 저에게, "네가 보여주는 건 걱정이지, 사랑이 아니란다"라는 외할머니의 일침은 뼈아픈 성찰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샤허브의 내면에서 갈등하는 두 자아 '바비'와 '아시'의 존재는 압권입니다. 아이가 저지르는 과격한 행동들이 사실은 "나 여기 있어요, 나를 좀 봐주세요"라는 간절한 외침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독자는 샤허브의 고독한 투쟁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이란이라는 특수한 사회적 배경을 넘어, 현대 사회의 모든 부모와 어른들이 읽어야 할 보편적인 성장 소설이자 심리 소설입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아버지를 '형네 아빠'로 기억하는 결말은, 어린 시절의 상처가 얼마나 깊고 오래가는지를 경고합니다. 지금 내 곁의 소중한 사람이, 혹은 내 안의 어린아이가 목소리를 삼키고 있지는 않은지 가만히 귀 기울여보고 싶은 모든 분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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