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계간 《문장》으로 등단한 권순이 수필가가 첫 수필집 『용마루』를 펴냈다. 『용마루』는 한국현대수필100년 사파이어문고 스물여섯 번째 작품으로 작가의 삶과 글이 일치하는 현재진행형 자전수필의 진수를 보여준다.
권순이 작가는 경북 상주 출신으로 팔거백일장, 달구벌문예대전, 노계문학전국백일장, 경상북도이야기보따리 수기공모전 수상 등 그 실력을 인정받고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뷔퐁이 “글이 곧 그 사람 자신이다”라고 말했듯 『용마루』에 담긴 글들은 권순이 작가의 삶이 투영되어 있다. 54편의 글을 1부 〈뿌리〉, 2부 〈줄기〉, 3부 〈잎〉으로 나누어 수록하고 공모전 수상작을 4부에 부록처럼 싣고 있다.
1부 〈뿌리〉에 담긴 작품들은 말 그대로 권순이 수필가의 ‘뿌리’를 소재로 삼고 있다. 작가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가정의 용마루’인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가족을 위해 희생적 삶을 사신 할머니, 삶의 태도를 가르쳐준 아버지, 산과 같은 사랑을 주신 어머니, 격변의 세월 속 고향 안동을 떠나 정착한 상주에서의 추억 등이 주를 이룬다. “할아버지께서 꿈꾸셨던 미래가 이런 것은 아니었을는지. 바르게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도리를 침묵으로 훈시하고 계신 할아버지, 혼은 싸늘하게 연기 되어 사라지고 몸은 풍화되어 흙으로 돌아가신 그 세월이 어언 70여 년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 그늘 아래서 자손들이 음덕을 기리며 미래를 논하고 쉼을 갖는다.”(「용마루」 중에서) “할머니는 우리 가문의 시묘살이 부처님 같은 분이셨다. 고사상에 올릴 붉은 설기를 만들기 위해 시루에 떡을 안치듯이 가슴속에 자식들을 하나같이 정성을 다해 품으셨다. 죽어서도 가문의 영광과 후손의 번창을 빌었을 할머니의 거친 손을 잡고 얼굴을 비비고 싶은 오늘이다.”(「시루」 중에서) “우리 삼 남매의 바탕에는 아버지가 깔려 있다. 우직한 고집은 타협 모르는 외골수를 빼닮았다. 그 고집이 오빠들의 사회생활에서 승진하는 데 걸림돌이 된 적도 있었겠지만, 옳은 길을 가는 데는 디딤돌 역할을 충분히 하였을 것이다.”(「바탕」 중에서) “이제 곧 봄이 올 것이다. 나무에는 물이 오르고 새순들은 온 산천과 들녘에 온갖 향기를 흩뿌릴 것이다. 하지만 한번 내려앉은 우리 집의 큰 산, 어머니는 다시 솟아오를 줄 모른다. 부모도 형제도 함께할 수 없는 그 길을 홀연히 떠나신 그 세월이 어언 서른 번째 봄이다.”(「산」 중에서)
2부 〈줄기〉는 ‘뿌리’를 바탕으로 쑥쑥 자란 ‘줄기’ 삼남매의 우애와 작가 자신의 인생 이야기다. “우리 집에서 지붕은 아버지셨다. 그리고 상량은 큰오빠, 기둥은 작은오빠였다. 어머니는 그 모두를 보듬는 집 자체였다. (중략) 이웃으로부터는 우애 있는 집이라는 칭송을 자자하게 들었다. 우리 마을에서 제일 못사는 집 중의 하나였던 우리는 동네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인 집으로 변해 있었다.”(「기둥」 중에서) “주말에 큰오빠 수하 13명이 가창 농장에 모였다. 작은오빠네 식구도 5명이 왔다. 어머니의 피붙이 세 남매가 한자리에 뭉쳤다. 오빠들의 손자, 손녀들은 신이 났다. 어른 장화를 작은 발에 신고 괭이며 호미도 잡는다. 시멘트 바닥만 밟아보던 아이들이 흙을 밟으며 김을 매겠다고 야단들이다. 가창골이 떠들썩했다.”(「울력」 중에서) “수군거림 속에 이죽거림이 묻어 있었다. 가난은 죽음보다 싫었다. 곤봉을 학교에 가져가지 않은 날이면 어머니는 손가락에 피가 맺히도록 그것을 깎고 또 깎으셨다. 번듯하게 사주지 못하는 그 마음, 날 선 칼끝에 깎여 나오는 대팻밥 같은 얇은 나뭇결에 아린 속도 함께 깎아내셨으리라.”(「곤봉」 중에서)
3부 〈잎〉은 ‘줄기’에서 돋아 영역을 넓혀가는 ‘잎’, 후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녀석은 비위가 약했다. 젖을 자주 토해서 아이의 몸과 내 몸에는 젖 삭은 냄새가 늘 배어 있었다. 그 깊고 아득한 냄새에는 가슴을 적시는 알 수 없는 슬픔 같은 것이 스며들었다. 그 슬픔에는 한 생명의 부모 되는 인륜의 바탕이 깔려 있음이랴. 옷자락에 흥건히 배어드는 젖내 똥오줌 섞인 냄새는 어미 되는 과정의 증표였다.”(「서툰 어미」 중에서) “곧 대학생이 될 것이다. 학문을 쌓고 청춘을 즐기며 사회에 나와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사람으로 거듭날 것이다. 자기 생각을 자신의 말로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성장하리라. 노력보다 값진 보상이 어디 있으랴. 후회 없는 대학 생활을 빌어 본다.”(「아픈 손가락 1」)
“권순이 사백의 수필집 『용마루』는 삶의 진선미를 담아내고 있다. 세상을 읽고 받아들이는 철학적 인식의 진(眞)과 이를 당당하게 실천하는 윤리의 선(善), 그리고 그 결과들로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의 터전, 미(美)의 ‘now and here’를 읽을 수 있다.”(장호병 (사)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의 발문 「진선미를 담아낸 수필집」 중에서)
권순이 작가의 사투와 혼이 느껴지는 수필집 『용마루』. 수필은 독자와 함께 세상을 읽고, 독자와 함께 사유를 펼쳐나가기에 작가는 독자와의 교감을 이끌어낸다. 권순이 작가의 수필을 접한 독자들은 그녀가 추구하는 진리와 실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