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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아들에게 보내는 그리움 편지 상세페이지

이중섭, 아들에게 보내는 그리움 편지작품 소개

<이중섭, 아들에게 보내는 그리움 편지> 이중섭은 6.25 전쟁통에 가족을 먹여 살릴 힘이 없어 1952년 7월경 일본인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 친정으로 보낸다. 홀로 남은 이곳저곳 떠돌며 가족에게 많은 편지를 띄웠다. 현존하는 편지는 약 70통, 150매이다. 이 책은 그중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화를 중심으로 엮었다. 편지는 모두 일본어로 씌어졌는데 편지에 그림을 그렸으므로 편지화라 부른다.


출판사 서평

1916년 평남 평원군에서 부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이중섭은 1938년 일본 유학 시절 만난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에게 매일같이 그림엽서로 자신의 사랑을 전달한 끝에 1945년 결혼에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6.26 전쟁으로 1950년 12월 부산으로 월남하였고 또 다시 제주도로 갔지만 1년도 못돼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결국 1952년 2월 부인은 일본인 수용소를 거쳐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 친정으로 떠났습니다. 이때부터 다시 이중섭은 부인과 자식들이 있는 일본으로 그림엽서를 보내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습니다.1년 뒤 그리운 가족을 못 잊어 일본으로 갔지만 밀항자의 불안한 신분을 걱정한 장모의 반대로 더 이상 머물 수 없었습니다. 1주일 만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1954년 7월 누상동 친구 집에 얹혀사는 형태로 머물며 이 소식을 아내에게 편지로 알렸습니다.가족에게 갈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어렵게 미도파 화랑에서 개최된 1955년 개인전은 예상치 못한 일로 그만 실패하고 맙니다. 디프테리아로 죽은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형상된 여러 작품들에서 어린 아이들이 벌거벗은 채 있다는 이유로 춘화로 낙인 찍혀 철거당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나마 전시돼 팔린 그림조차 돈을 떼이기도 하여 오히려 그에게 기회를 줄 것이라 기대했던 개인전은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들고 말았습니다.개인전 실패로 실의에 빠진 이중섭은 4개월 뒤 바로 대구 미국공보관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지만 역시 돈 버는 것에는 실패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실의 벽 속에서 그만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며 여러 병원을 떠돌다 아무도 지켜 봐주는 이 없이 그가 숨진 곳은 서대문 적십자병원이었습니다. 시신은 무연고 처리돼 사흘간 방치되는 망자의 고독까지 느껴야만 했습니다. 그 후 홍제동 화장터를 거쳐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때는 1956년 9월 6일. 그의 나이 40세였습니다.

전인권의 평전 '아름다운 이중섭'에 따르면 이중섭이 남긴 작품은 유화 60여점, 은지화 120점, 드로잉 150점, 엽서화 88점 등 모두 320여 점으로 추산됩니다. 그중 1940~1943년 그려진 엽서그림을 빼면 나머지 230여 점은 모두 1951년 이후 그려진 것입니다.

친구 구상은 이중섭이 "판잣집 끝방, 시루의 콩나물처럼 끼어 살면서도 그렸고, 부두에서 노동을 하다가 쉬는 참에도 그렸고, 다방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 대폿집 목로판에서도 그렸다.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으니 연필이나 못으로도 그렸다. 잘 곳과 먹을 것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다. 부산, 제주도, 충무, 진주, 대구, 서울 등을 표랑 전전하면서도 그저 그리고 또 그렸다."고 말했습니다.


저자 프로필

이중섭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916년 - 1956년 9월 6일
  • 학력 도쿄문화학원 미술과
  • 경력 국방부 정훈국 종군화가단 단원
    원산 신미술가협회 회장
    원산사범학교 미술교사
    북조선 미술동맹 회원
    미술창작 작가협회 회원
    자유미술협회 회원
  • 데뷔 1941년 미술창작 작가협회전
  • 수상 은관 문화훈장
    자유미협전 태양상

2016.04.21.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대향(大鄕) 이중섭(1916~1956)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지주의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친가 쪽은 대지주이고, 외가 쪽은 평양의 민족 자본가 집안이었다. 5세 무렵 아버지가 사망했다.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데이코쿠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얼마 후 좀 더 자유로운 분카쿠잉으로 옮겨 수학했다. 여기서 후배인 일본 여성 마사코를 사귀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도쿄에 머물면서 그림그리기에 몰두했다. 1940년 도쿄와 경성에서 열린 제4회 지유텐에서 서 있는 '소', '망월', '소의 머리' 등을 출품하여 찬사를 받았다. 1745년 마사코가 일본에서 홀로 건너와 원산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이름을 이남덕으로 바꾸었다. 첫째 태현(1947)과 둘째 태성(1949)이 태어났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했다. 부산 범일동 창고에 거처하며 부두에서 짐 부리는 일을 하기도 했다. 1951년 더 살기가 낫다는 소문을 듣고 가족과 제주도로 건너갔다. 그러나 서귀포에서 셋방을 살면서 피난민에게 주는 배급과 고구마로 연명하면서 게를 잡아 반찬으로 많이 먹었다. 서귀포에서 그린 그림은 서귀포의 환상, 섶섬이 보이는 서귀포 풍경, 바닷가의 아이들이 있다.

1952년 생활고에 못 이긴 마사코는 결국 두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가게 된다. 그 후 이중섭은 1953년 도쿄에서 단 5일의 해후를 끝으로 가족과 영영 이별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생이별의 아픔은 아이러니하게도 필생의 걸작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다. 지인의 도움으로 1954년까지 통영에 머무른 그는 소 연작 등 한국미술의 대표작을 쏟아냈다.

주요작품으로는 '황소'를 비롯한 여러 '소' 그림과 '달과 까마귀', '도원', '돌아오지 않는 강', '길떠나는 가족', '아이들' 등 300여 점이 있다.

목차

■ 작가소개
■ 아들에게 보내는 그리움 편지
■ 작가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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