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만화, 어떻게 읽어야 아니, 봐야 할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성인만화’와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는 한결같다. 앳된 얼굴에 풍만한 가슴만 눈에 띄는 일본 미소녀, 비속어와 신음으로 가득한 저질스런 야한 만화책, 청소년들에게 무조건 해가 되는 유해 매체, 남성들이 끼리끼리 모여 히득거리는 음담패설 같은 황색잡지, 깡패와 폭력 그리고 강간 등이 난무하는 섹스 만화. 이처럼 성인만화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이것만으로도 부족할 지경이다.
사실 우리나라 성인만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기름을 부은 것은 1997년 7월 1일에 시행된 청소년보호법이었다. 청소년보호법 발효로 국내에서 발간되는 모든 성인만화의 표지에는 ‘19세 미만 구독 불가’(시행 처음에는 ‘18세 미만 구독 불가’였다)라는 새빨간 딱지가 의무적으로 인쇄되어야 했다. 판매하는 서점은 물론, 빌려 보는 대여방과 만화방은 별도의 판매대와 진열대를 마련해야 했다. 또한 19세 미만의 청소년들에게는 성인만화를 빌려주는 것은 물론, 보이는 것도 법으로 금지되었다. 이 법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청소년보호법이 발효되던 그 당시, 일부 대형서점은 청소년을 위한 만화조차도 판매는 물론, 진열 자체를 중단할정도로 이 법의 위력은 대단했다. 급기야 만화는 북한 괴뢰군과 맞먹을 정도의 악의 축으로 대접받았고, 2000년대 초반까지 만화는 대형서점에서조차 만화를 구매하기는커녕, 구경하기도 쉽지 않았다.
1997년 후반 IMF 구제금융으로 인해 우리나라 만화시장은 더욱 위축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명퇴를 한 많은 퇴직자들이 전문 기술 없이도 적은 자본으로 개업할 수 있는 대여방에 관심을 보이면서 전국에 대여방들이 우후죽순으로 급속히 증가했다. 대여방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마케팅 전술이 대여방 개업의 과당경쟁에 불을 지폈다. 대여방 개업 붐의 초기에는 재고 만화책이 소지되면서 불황이던 만화시장에서 청신호를 보이는듯 보였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듯이, 과도한 대여방 개업은 결국 불황에서 몸부림치던 만화시장에 역효과를 가져왔다.
청소년보호법과 대여방의 과당경쟁. 이 두 가지 악재 속에서 오히려 성인만화 장르는 과감한 표현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 ‘19세 미만 구독 불가’ 딱지는 청소년들의 손길을 엄금해야 하는 주홍글씨였지만, 이 빨간 글씨가 일부 성인만화가들에게 면죄부나 다름없는 창작의 자유 아니 창작의 방종을 안겨주었다. “씨팔 좆나게” “좆 까네” “지퍼가 열렸나 왠 조개젓 냄새가” “씹탱이 좆됐수” 등 이런 원색적인 대사와 “AH!”, “으흐…좋아!” 등과 같은 여성들의 자극적인 감탄사들. 많은 ‘섹스 만화’들이 ‘성인만화’라는 이름표를 달고 출간되었다. 결국 성인만화는 포르노 만화다, 라는 등식이 생겨날 정도였다.
특히 일본 포르노 만화를 무저작권으로 번역 ․ 출간한 복사만화들의 노골적인 남녀 성기묘사와 성행위 묘사 등은 오히려 만화 단속의 빌미를 제공했다. 일부에서는 ‘표현에 대한 무한대의 자유’라며 득의양양했지만, 정작 많은 성인만화는 ‘표현에 대한 무한대의 방종’ 때문에 독자들을 잃어가는 우를 범하고 만다. 이것은 만화시장에는 성인만화(?)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정작 그만큼 성인이 볼 만한 성인만화가 없었다는 점을 방증한다.
유럽 에로티시즘 만화에서 우리만의 성인만화문화를 찾다
이제 우리는 제대로 된 우리만의 성인만화문화를 찾아야 할 때다. 그런 시점에서, 해외 성인만화에 눈을 돌려 볼 기회를 갖고자 한다. 특히 예술만화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 성인만화로의 여행을 떠나보고자 한다. 유럽 성인만화가들은 어떤 만화를 그리는지, 유럽의 성인독자들은 어떤 만화를 보면서 그들만의 만화문화를 만들어 왔는지 살펴보자. 이런 접근이 우리 성인만화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은 계기가 될 것이다.
사실, 유럽에는 성인만화라는 특별한 개념은 없다. 다만, ‘성인 위한 만화BD pour adults’라는 용어만 있을 뿐이다. 유럽은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가 되면 대부분 남녀를 불문하고 자연스레 담배를 피우고 서로 사랑을 나눈다. 사실 더 어린 나이에 그러기도 한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다만, 겉으로 드러내지 못할 뿐이지만. 어쨌거나 우리나라처럼, ‘19세미만 구독 불가’라는 딱지로 성인만화와 청소년만화를 구분하는 번거로움을 범할 필요가 없다.
물론, 유럽 성인만화에도 가장 중요한 양념인 섹스와 벌거벗은 여자의 육체, 새디-매조키즘도 빠지지 않는다. 당연히 그런 양념이 없는 성인만화는 존재하지 않으며, 시장에서 도태되고 만다. 어떤 성인만화는 그 표현 수위가 포르노그래피만큼 자극적일 때도 있고, 때로는 스토리나 주제가 우리에게 전혀 공감이 가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많은 유럽 성인만화의 소재와 주제는 우리 성인만화보다 훨씬 다양하고, 때로는 만화의 내용은 심오하고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필자는 이 책에서 ‘유럽 성인만화’라는 용어를 ‘유럽 에로티시즘 만화’로 통일하여 명시한다. 앞서 말했듯, 유럽에는 성인들만 보라는 만화는 없다. 다시 말하지만 성인들이 보는 만화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만화 장르의 구분을 연령대가 아닌, 내용에 따른 용어인 ‘에로티시즘 만화’로 조작적 정의를 내렸다.
이 책은 이제껏 우리의 관심 밖이 있었던 유럽 에로티시즘 만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쓰였다. 첫째 유럽 에로티시즘 만화의 역사를 살펴보고, 둘째 현대 유럽 에로티시즘 만화를 장르별로 엄선하여 만화작가와 그들의 만화를 소개했다. 이들 가운데 우리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만화가들도 있다. 포르노그래피를 포함하여 다양한 장르의 에로티시즘 만화들도 성인을 위한 만화문화로서 재미있게 향유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