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의 극장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자발적 관객’의 형상은 점차 생산자들이 구상했던 소통의 대상, 즉 ‘내포관객’으로 인식되는 과정을 거치며 영향력을 확대해 나간다. ‘내포관객’은 시모어 채트먼이 논의한 서사의 의사소통 모델을 연극을 비롯한 극장 프로그램에 적용한 것이다. ‘내포독자’가 작가에 의해 예상된 독자를 가리킨다면, 내포관객은 극장 프로그램의 생산주체에 의해 미리 상정된 관객을 의미하게 된다. 이정숙에 따르면, 내포관객은 경험세계에 연루된 왜곡성을 가지지 않고 텍스트 속에서 현실관객을 인도하는 존재이며, 텍스트가 그 수용조건으로 제시한 텍스트 구조에 내포된 관객을 가리킨다.
이 책은 ‘내포관객’ 개념에 착안하여 한국연극사의 연속성을 파악하는 과정이 기존의 수용자 연구에 돌파구를 제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볼프강 이저의 논의를 출발점으로 한 문학의 수용자 연구는 기존의 생산자 중심적 관점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함께 부각되었으며,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에 의해 독자의 기대지평을 바탕으로 한 문학사의 재구축 작업까지 시도된 바 있다. 한편 연극이라는 행위를 완성시키는 존재로서 ‘관객’의 위상이 제고됨에 따라 연극의 수용자인 관객 연구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대중’에 대한 연구 역시 주목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수용자 연구는 양적 확대에 비해 충분한 성과의 축적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는 기존의 수용자 연구가 수용자라는 ‘물자체(ding an sich)’를 정의하는 데 역점을 두어왔기 때문인데, 대중이 정의 불가능한 대상이라 보았던 허망한 결론은 결국 수용자 연구가 도달한 막다른 골목이었다. 기실 현재의 수용자 연구는 가장 근원적인 극복 대상, 즉 대중을 병리적 현상으로 규정한 구스타프 르봉의 관점에서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개별적인 수용자 사례 분석은 종합적 결론에 이르지 못했고, 집단적 수용자로서의 대중에 주목한 연구들은 실제적인 문화 실천 과정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반례들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포관객’의 구성 문제에 착목한다면 기존 수용자 연구의 난맥을 우회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즉, 수용자 자체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할지언정, 수용자 집단의 구성에 개입된 네트워크와 동력의 문제는 제한적으로나마 논의 가능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불특정한 관객과 달리 생산자의 문화적 기획 속에서 탄생한 ‘내포관객’은 비교적 균질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내포관객’의 상에 의거한 이데올로기적 호명의 기제는 ‘실제관객’을 ‘균질화’시키려는 욕망을 드러내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이 책은, ‘내포관객’ 개념에 내재된 수행성과 실천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자 한다. 즉, 관객들의 자발성이 곧 자율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관객은 무대 상연의 의미를 완성하는 존재인 동시에 그들을 둘러싼 담론적 자장으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도 하다. 실제로 극예술협회의 순회공연은 당대 저널리즘의 전폭적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사건이었고, ‘고학생’의 표상을 ‘조선의 미래 세대’로 읽어냈던 당대 관객들의 과잉 해석은 신문을 통해 보도되는 특정한 담론들을 통해 인식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1920년대에 부각된 자발적 관객의 표상은 ‘생산자-담론장-수용자’의 상호관계를 전제로 한 간단없는 길항작용 속에서 형성된 결과물에 가깝다.
이처럼 다양한 변수들의 합력으로 형성된 것이 자발적 관객의 형상이라면 외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이러한 형상은 영향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재석은 주로 검열의 문제를 거론하며 그 합력의 양상을 묘사하고 있으나 이러한 관점은 과도한 변인 통제로 비쳐질 위험성을 내포하기도 한다. 즉, 1920년대 초에 형성된 관객 공동체의 정체성이 1930년대까지 계승된다고 보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변수들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 중간 과정을 충분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재석이 지적한 것처럼 1920년대 중반 이후에 소인극 운동의 동력은 점차 위축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그는 강화된 검열의 효과로 이를 설명했지만, 여기에는 보다 다층적인 맥락이 개입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동정금 모집에 실패한 사례들을 다룬 신문기사를 살펴볼 경우, 모든 공연에 관객들의 자발성이 발휘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의 관객들은 완성도 차원에서 발생하는 ‘모자람’을 조소나 공박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그렇다면 ‘자발적 관객’의 형상은 다양한 변수들의 이행과정을 충분히 고려한 ‘유동적 연속체’의 형태로 묘파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본다.
담론장의 압력이라는 변수를 중요하게 볼 경우, 주목해야 할 대목은 1920년대 중반에 이르러 창작극을 통해 민중의 삶을 사실적으로 재현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된다는 점이다. 이승희에 따르면, 개인의 삶에서 집단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려는 경향은 1910년대와 1920년대의 극작을 변별하는 기준점이 된다. 그는 개인을 절대화하던 1910년대 희곡의 양상이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회를 절대화하는 양상으로 변모하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김영일의 사〉가 이와 같은 변화과정에 있어 교량적 역할을 담당한 텍스트라고 보았다. 즉, 〈김영일의 사〉는 개인에게 판단 및 행위 주체로서의 권위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바로 전 시기의 희곡과 동궤에 놓이면서도, 이 주체가 사회로 향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후 희곡의 전조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는 근대적 지식인이 품었던 개인으로서의 자의식이 점차 사회에 대한 도덕적 책무 위에 놓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토월회의 번역극 공연을 둘러싼 일련의 평론들은 〈김영일의 사〉에 내재된 변화의 방향성을 보다 직접적으로 생산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것들이다.
이 책의 주안점 중 하나는 이와 같은 담론의 효과가 불러일으킨 결과를 살펴보는 데 있으며,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제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중의 삶을 핍진하게 재현해야 한다는 식민지 조선 창작극의 기대지평이 표면화되고 그것이 생산자에게 압박을 주게 되었을 때, 생산자들은 어떤 대응 전략을 취하게 되는가? 이때 그들이 설정한 내포관객은 어떤 존재인가? 그 내포관객은 실제관객과 조응되는 것이었는가?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이며, 이러한 국면 속에서 새롭게 제기되는 과제는 무엇이었는가?
이 책은 1920년대에 생산된 희곡들의 계보와 일련의 문화적 흐름에 대한 검토가 이상의 질문들에 해답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가정한다. 특히 2부에서 이어질 논의를 경유하며, 1920년대 초에 형성된 해석공동체가 1930년대 연극으로 이행해나가는 양상을 보론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해명되는 데 그쳤던 1930년대 연극의 제반 현상이 관객성과 기대지평의 연속적 형성과정에 따라 도출된 귀결점이었음을 밝힐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