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출판부에서 출간한 시인 김승희 교수(서강대, 국어국문학)의 는 현대인에게 가장 병리적으로 나타나는 애도와 우울(증)이라는 주제와 증후를 한국 현대시에서 분석한 책이다. 인간 주체를 사유하는 주체, 꿈꾸는 주체, 유희하는 주체, 종교적 주체 등 다양하게 부를 수 있지만 필자는 무엇보다도 인간 존재를 ‘애도하는 인간’, 즉 ‘호모 라멘타티오’라고 보면서 현대시에 나타난 애도와 우울(증)의 증후와 언어를 분석한다. 애도나 우울(증)이란 상실에 대한 반응을 칭하는 것인데 상실은 살아가면서 우리가 잃어버려야 하는 충만한 사랑의 상실일 수도 있고 죽음으로 인한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 역사와 사회적 재난에 의한 이상(理想)이나 이념의 상실과도 연관된다. 상실이란 주제는 ‘한국현대시의 만유인력의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 민족이 현대사에서 유난히도 처절한 인간 상실을 과도하게 겪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현대 시인들은 거의 모두가 다 자기방식으로 애도와 우울증을 노래해온 호모 라멘타티오, 검은 오르페우스라고 할 수 있다. 애도와 우울증의 관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디에서 어디로 이어지는지 구분할 수 없지만 애도의 실패는 우울증을 낳고 우울증은 반(反)나르시시즘 속에서 자기파괴와 자살충동을 낳는다.
사실 한국 현대시는 ‘끝나지 않는 애도와 우울(증)의 시’라고 할 수 있는데 3. 1 운동 직후, 1920년대 초의 >, >나 박종화의 , 박영희의 등에 나타난 거대한 상실감, 그 상실에 대한 병리적 죽음 충동과 허무주의, 탐미적 퇴폐, 사(死)의 예찬 등 출발부터가 그러하였다. 이 책은 한국시 최고의 호모 라멘타티오인 김소월의 시에서부터 1950년대 전후시인인 박인환ㆍ고은, 현대시의 안티고네라고 할 수 있는 김수영, 김지하, 신동엽, 고정희 등의 참여시에서 애도의 수사학과 애도의 정치학, 프로소포페이아라는 애도로서의 의인화 작업을 분석한다. 저항시와 관련하여 애도의 주제는 그동안 연구된 적이 없는 주제인데 필자는 저항시, 참여시야말로 한국문학사에서 ‘애도의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된 눈부신 시세계라고 생각한다. 김수영의 4. 19 이후와 5. 16 이후 시편들에 ‘애도와 우울(증)’의 주제는 강렬하게 드러나고 그 상실의 대상은 ‘4. 19 정신’ 혹은 이상(理想)이나 자유, 이념이었다. 또한 김지하의 시집 역시 상실의 대상은 ‘동학 정신’ 혹은 ‘민주’(民主)와 같은 ‘이상(理想)’이나 이념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애도의 바깥으로 추방된 역사의 비체들을 불러 일으켜 다시 역사의 자리를 주려는 시적 혁명으로서의 애도 작업이라고 분석한다. 그것은 신동엽의 , 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이 찬란한 현대시들은 역사의 비극과 과속, 왜곡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애도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역사의 가장자리를 떠돌고 있던 호모 사커들, 비체들을 불러 모아 늘 지극한 애도를 해왔고 애도를 다 하지 못한 언어들은 시인의 무의식에 우울의 기호들로 남아 우울(증)의 증상을 남기고 그 비체들이 다하지 못한 역사의 꿈을 ‘애도의 정치학’과 연관시켜 노래불러왔다는 슬픈 자각을 보여준다.
김수영의 경우 에 등장하는 소시민적 ,우울증적, 환멸의 주체에서부터 존 레논의 에 필적하는 김수영의 을 애도의 주제와 연관시켜 새롭게 해석해본 것이 무척 새롭고 독창적이다. 에서 왕궁의 음탕을 비난하는 대신에 설렁탕집 주인에게 기름덩어리가 나왔다고 욕설, 비난하는 오그라든 자기비하의 우울증적 주체가 어떻게 의 거대한 농경적 주체로 전환하는지, 그 지점에 우울증에서 애도로의 리비도적 전환이 깃든다는 분석은 김수영 연구사에서 매우 독창적이며 새롭고 신선하다.
또한 현대시만이 아니라 아리랑을 로 분석하여 보여주기도 하는데 민요 아리랑을 ’애도와 우울증, 열락의 언어‘로 보는 방법론이 무척 신선하고 재미있다. 전봉건, 박두진, 노천명 시인 등을 애도, 자기애도, 멜랑콜리, 젠더 우울증, 의인화, 피그말리온 의인화 등과 연결시켜 텍스트 분석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이 제목이 ‘애도와 우울증’이 아니고 ‘애도와 우울(증)’ 인 것에 대해 필자는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저서의 제목에 ‘우울증’이 아니고 ‘우울(증)’은 뭐냐고? 우울, 멜랑콜리(Melancholy)는 풍성하고도 창조적인 힘으로서 사실 예술은 멜랑콜리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그 멜랑콜리는 어둡긴 하지만 유일한 예술의 창조적 산모(産母)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잔 손탁이 ‘우울증이란 멜랑콜리에서 매혹을 뺀 것’이라고 말했듯이 ‘우울증’은 질병이며 파멸적 공허이며 자기살해이며 ‘대양적 공허’(크리스테바)이며 자멸로 가는 무기력한 의기소침, 공격적 침울함이다. 시에서는 이 ‘우울(증)’이 그 괄호를 뚫고 넘나들어서 풍요한 우울을 우울증으로 전환하는 비극적 고비가 범람한다. 예술적 자아는 늘 그 어두운 우울증의 물결에 시달려야 한다. 과정중의 주체, 도전받는 주체, 교란 중에 있는 주체이기 때문에 ‘우울(증)’의 괄호는 늘 벗겨지고 그 아름답고 풍요한 멜랑콜리는 우울증이라는 바닥의 검은 증상으로 애증을 간직한 자기공격의 무기로 나타나기도 한다. 김소월의 경우 그것이 잘 드러나고 ‘우울(증)’이 ‘(증)’의 괄호를 벗고 나타나는 위기의 찬란한 순간에 소월은 허물어지는 자아를 부여안고 자살의 길로 가면서도 그 애절한 음조의 아름다운 시들을 남긴 것이다. ”
한국의 현대시는 그렇듯 많은 시편들에서 ‘애도와 우울(증)의 증후’를 보이는 애도와 우울증의 언어라는 것을 이 책은 잘 보여주며 연구서이면서도 일반 독자도 재미있게 공명할 수 있는 정신분석학적 방법론으로 누벼진 현대시 해설서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