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전략은 왜 계획대로 실행되지 않는가
이 책은 이 질문에서 출발해 전략이 조직 내부에서 실제 행동으로 전환되는 흐름을 따라간다. 분석의 중심에는 소니(Sony)가 전자제품 중심 기업에서 콘텐츠와 플랫폼 중심 기업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은 PlayStation 사업이 있다. 이 사례를 통해 전략이 어떤 경로를 거쳐 조직의 행동 방식으로 자리 잡는지를 살펴본다.
PlayStation 사업은 단순한 신사업의 성공 사례로 보기 어렵다. 기업의 정체성이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형성된 전환의 사례에 가깝다. 동일한 방향과 목표가 제시되더라도 어떤 조직에서는 성과로 이어지고, 다른 조직에서는 실행의 동력을 잃는다. 관심의 초점은 외부 환경이나 전략 자체의 완성도에 있지 않다. 전략이 실제 실행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조직 구조와 리더십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조정되는지에 주목한다.
이 질문은 20년 넘게 소니에서 PlayStation 사업을 담당하며 사업과 조직의 변화를 경험하는 가운데 형성되었다. 그동안 실무와 관리의 여러 역할을 거쳐,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의 대표이사로서 전략과 조직 운영을 직접 경험했다. 전략은 늘 존재했고 조직은 그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판단과 조정은 처음 제시된 계획과 조금씩 다른 흐름을 만들기도 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합리적으로 보였던 선택이 연결되고 축적되면서 예상하지 못한 실행 방식을 형성하는 장면도 반복해서 나타났다.
전략의 방향을 정하는 일과 조직이 그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일은 서로 다른 과제였다. 전략이 명확하더라도 조직 내부의 판단 기준과 권한 구조가 달라지지 않으면 실행은 기존의 방식으로 이어지기 쉬웠다. 새로운 목표가 제시된 뒤에도 과거의 절차와 관행이 반복되었고, 개별 부서의 합리적인 선택이 모여 전체 전략과 다른 흐름을 만들기도 했다. 전략의 내용만큼이나 그것이 어떤 조직 안에서 누구의 판단을 거쳐 어떤 방식으로 실행되는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이러한 경험에서 출발했다.
기업의 성장 전략과 조직 운영을 자문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기업이 분명한 목표와 정교한 전략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략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 과정은 기업마다 달랐다. 어떤 기업에서는 전략의 방향이 조직 전체의 판단으로 이어졌지만, 다른 기업에서는 대표와 일부 경영진의 구상에 머물렀다. 구성원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각자의 활동이 하나의 방향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성공적인 전략은 좋은 방향을 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이 더욱 분명해졌다. 전략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려면 조직이 무엇을 우선하는지, 누가 어느 범위까지 판단할 수 있는지, 부서 사이의 의견이 어떻게 조정되는지가 함께 정리되어야 했다. 리더의 역할 역시 방향을 제시하는 데 머무르지 않았다. 전략이 조직의 일상적인 판단 기준으로 자리 잡도록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대학에서 학생들과 전략과 조직, 리더십을 논의한 경험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기업 사례를 설명하고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현장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판단과 관행을 다른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같은 사례를 두고도 학생들은 전략의 내용과 조직 구조, 리더의 선택을 서로 다르게 해석했다. 이러한 질문은 현장의 경험을 개념으로 정리하고, 다시 그 개념을 실제 사례에 비추어 설명하도록 만들었다.
이론은 복잡한 현상을 이해하는 언어를 제공하지만 실제 조직의 움직임은 하나의 이론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전략과 조직 구조, 리더십은 개념적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현장에서는 서로 분리되어 작동하지 않았다. 전략이 달라지면 조직의 역할과 권한도 조정되어야 했고, 리더십은 그 변화가 실제 판단과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연결해야 했다. 대학에서 이어진 논의는 이 세 요소를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기업 현장과 자문 활동에서 형성되고 대학에서 구체화된 문제의식은 박사논문으로 이어졌다. PlayStation 사업의 장기적인 변화를 따라가며 전략 실행을 조직 구조와 리더십의 관계를 통해 분석하고, 실행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고 조정되는지를 살펴보았다. 학위논문이 이를 이론과 연구의 형식으로 정리했다면, 이 책에서는 그 문제의식을 경영자와 관리자, 실무자가 보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고자 했다. 전략 실행을 최종 성과로만 바라보기보다 조직 안에서 누가 판단하고 어떤 기준과 선택이 반복되는지를 따라가며 실행이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 책은 기술 중심 실행 구조의 형성과 그 한계, 그리고 콘텐츠와 플랫폼 중심 실행 구조로 이동하는 재설계 과정을 장기적 관점에서 다룬다. 조직 내부의 조건과 반복된 선택은 하나의 실행 방식을 만들고 일정 기간 성과를 뒷받침한다. 환경과 전략이 달라지면 과거의 성공을 만든 방식도 새로운 조건에 맞추어 다시 살펴볼 필요가 생긴다. 실행을 결과로만 보면 그 이면의 형성과 변화 과정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실행을 흐름으로 볼 때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고 유지되며 조직의 기본 운영 방식으로 자리 잡는지가 보다 분명해진다. 이 책은 그 과정 속에서 전략, 조직 구조, 리더십과 실행이 어떻게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는지를 따라간다.
이 책이 집필되기까지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다. 전체 틀을 제안하고 중요한 인사이트를 더해 주셨으며, 책의 문제의식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공동 저자로 함께해 주신 조봉순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교수님의 오랜 연구와 통찰은 PlayStation 사례를 개별적인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실행 구조가 형성되고 변화하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PlayStation 사업의 성장과 변화를 함께 경험했던 동료들의 판단과 노력은 이 책을 집필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특히 책의 내용을 현실적인 관점에서 검토하고 조언을 주신 유혁종 님과 우혜연 님께 감사드린다. 두 분의 의견은 연구의 언어와 현장의 언어 사이에 놓인 간격을 확인하게 해주었으며, 독자가 책의 내용을 실제 조직에서 마주하는 문제와 연결해 읽을 수 있도록 표현과 논의를 다듬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한 원고를 읽고 의견을 나누어 주신 분들과 책의 완성을 위해 애써 주신 출판 관계자들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오랜 연구와 집필의 시간을 이해하고 지지해 준 가족에게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책에 담긴 해석과 부족함은 필자의 몫이지만, 질문을 만들고 생각을 이어 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동안 함께했던 사람들과 경험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