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도시
보스턴은 면적으로 치자면 디즈니랜드보다 작지만, “자유의 요람”이나 “아메리카의 아테네”, 혹은 좀 더 오만하게 “우주의 중심”이라 불리면서 미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성을 배출하는 중심지이자 문화경제적 선도자의 역할을 해 오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끝없이 뻗어나간 고속도로 사이로 시대를 앞서가는 초현대식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동시에, 오늘날까지 그대로 보존되어온 17세기 이래의 유적들이 시내 곳곳에 전통의 향기를 가득 채워주고 있는 보스턴의 풍경은 그야말로 현대의 첨단문화와 역사적 장엄함이 공존하는 절묘함을 자아낸다. 보스턴을 느끼는 즐거움은, 이 도시가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흥미로운 공간일 뿐만 아니라 뛰어난 교육 환경과 선진 의료기술을 보유한 미국 산업혁명의 중심지이자 최첨단 신기술 개발의 근원지라는 사실과 함께 한다. 여기에 더해 세계적 수준의 여러 경이로운 박물관들과 훌륭한 심포니의 고장인 동시에 뜨거운 스포츠의 활기로 가득 찬 곳, 역동적인 정치현장으로 주목받는 곳, 그곳 또한 보스턴이다.
살아 숨쉬는 미국 역사의 현장
미국 역사에서 보스턴은 영국에 대한 저항의 불씨가 당겨진 사건 현장이나 본격적인 혁명의 산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마침내 독립을 쟁취하게 된 역사적 장소이다. 이러한 이유로 보스턴 곳곳에는 그 역사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건물들이 많다. 독립 혁명 기간 중에 봉화대가 불타올랐던 자리에 세워진 ‘승전 기념탑’, 노예였던 흑인들의 군 입대가 처음으로 인정된 남북전쟁에서 백인과 흑인 연합군을 이끌고 전장에서 많은 공적을 세웠던 쇼우 대령과 대원들을 기념하는 ‘쇼우와 제54연대 기념관’, 세 명의 독립선언서 서명자-존 핸콕, 사무엘 애덤스, 로버트 T. 페인-를 비롯하여 아홉 명의 매사추세츠 주지사, 보스턴 초대시장, 그리고 뛰어난 공예예술가이자 열렬한 애국지사 폴 리비어 등이 잠들어 있는 ‘올드그래너리 묘지’ 외에도 수많은 역사적 유적들이 보스턴에 자리 잡고 있다.
그중 ‘올드사우스 공회당’은 식민 시절 내내 시민운동의 본거지 역할을 했던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보스턴 시민들과 인근지역 주민들이 식민국에 부당한 세금을 부여한 영국 정부에 대한 항의를 표명하기 위해, 차 등의 물품을 싣고 온 배를 습격하여 물건들을 모두 항구에 쏟아 부어버린 사건인 ‘보스턴 차 사건’을 구상하고 지휘한 애덤 스미스가 이곳을 작전본부의 성격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보스턴 학살 사건이 일어난 옛 보스턴 주청사, 뛰어난 은 세공사이자 독립전쟁의 영웅이었던 폴 리비어의 생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역 전투함으로서, 미국이 독립을 쟁취한 이후 나라를 수호하려는 워싱턴 대통령의 절실한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USS컨스티투션호 등과 관련된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미국 역사의 현장에 발을 들여놓은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아메리카의 아테네
보스턴 중심가인 스쿨가와 워싱턴가가 만나는 모퉁이에 있는 올드코너 서점은 랠프 에머슨이나 헨리 D. 소로우, 루이자 M. 앨코트, 워즈워스, 롱펠로우, 호손 등의 작가들이 문학토론을 벌이거나 지적 정보를 나누는 장소로 종종 이용하였고, 멀리 영국의 작가들에게까지 알려져 윌리엄 터커레이나 찰스 디킨스가 미국 여행 중 즐겨 들렀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그야말로 ‘뉴잉글랜드 지역의 개화가 시작된 곳’으로서 1776년에 발화한 정치 혁명의 진원지이자 정신적 근간이며, 나아가 보스턴이 ‘아메리카의 아테네’로서 문화 예술의 중심지가 되도록 해준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나 롱펠로우의 히어워드의 노래, 줄리아 W. 호우의 승전가 등이 바로 이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20세기 벽두에 보스턴은 또 하나의 역사적인 기념관을 가지게 되는데, 바로 오늘날 세계적 명성을 누리고 있는 심포니홀이 그것이다. 하버드대학 의과 교수의 자문을 얻어 음향원리를 과학적으로 연구, 설계에 적용한 최초의 음악관인 이곳은 벽돌과 철재가 적절히 배합된 외부 벽면이나 특별 가공한 참나무가 깔린 마룻바닥, 가죽으로 마감 처리된 좌석, 석고회벽 등 음향효과를 최대로 고려한 내부 환경을 갖추어 오늘날 세계에서 두세 손가락 안에 드는 훌륭한 음악관으로 꼽히고 있다. 피에르 먼터나 세르지 쿠세비츠키, 에리히 레인스도르프, 세이지 오자와 등과 같은 세계적 거장들이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대에 섰고, 번스타인이나 스트라빈스키는 보스턴 오케스트라단에 헌정하는 특별곡을 만들기도 했다.
지성과 문화를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은 전통과 역사의 창을 통해 보스턴이 거쳐온 창의적 진화과정을 이 책에서 엿볼 수 있다. 시대의 인본주의적 의지와 더불어 호흡하는 문화의 생태적 원리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