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문화의 꽃
백화점은 도시의 상징물이다. 도시의 발전과 함께 등장하면서 오랜 역사성을 유지해 왔다.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는 그의 저서 '단절의 시대'에서 “대도시는 19세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장 시장이었다. 그것은 발명에 자극을 주었고, 그 발명에 근거해서 발전하는 산업에 대해 커다란 시장을 제공하게 되었다. 이들 발명 중에는 가스등에서 발전한 조명과 지하철, 전차, 고가철도 등의 수송, 전화, 전신, 로마시대 이래 최초의 건축자재의 변혁인 고층 철골 빌딩의 건설, 신문, 게다가 백화점 등이 포함된다”고 하며 백화점을 하나의 발명품으로 취급하였다.
드러커가 지적한 것처럼 19세기 중반에 백화점이라는 ‘욕망의 환기 장치’가 발명된 이후, 사람들은 그 발명에 자극되어 더욱 커다란 소비 시장을 창조해 갔다. 그때마다 백화점은 혁신가요, 교육가로서 도시민을 계몽해가면서 도시의 상징물로 자리를 잡았다. 때로는 ‘사치의 민주화’로, 때로는 ‘소비의 전당’이나 ‘스펙터클 공간’ ‘상업의 대가람大伽籃’ 등 다양한 형용으로 치장하면서 백화점은 20세기 문화의 꽃으로 피어났던 것이다.
프랑스에는 봉마르셰, 조선에는 미츠코시 경성지점
백화점의 기원은 1852년 프랑스 파리에 설립된 봉마르셰이다. 개설 초기의 봉마르셰 백화점은 내?외관이 극도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파리 어느 곳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호화 사교 살롱의 이미지를 갖추었다. ‘살롱’이 귀족이나 부르주아들이 성이나 저택을 일상적인 생활공간에서 연회나 토론의 장으로 바꾼 것이라면, 봉마르셰라는 백화점은 이들 살롱을 통해 사회적 역할이 커지고 과거의 풍습에서 해방된 여성의 욕망 분출구였다. 그러다 보니 봉마르셰는 자연스럽게 파리 최대 사교 살롱의 이미지도 갖추어, 파리인들 사이에서 베르사유 궁전에 버금가는 ‘소비의 궁전’으로 불렸다. 봉마르셰의 등장 이후 휘틀리와 해롯 등 유럽에서 급속히 확산된 ‘백화점’은 곧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최초의 백화점이 등장한 시기는 언제이고, 누구에 의해서였을까? 세계 최초의 백화점인 프랑스의 봉마르셰가 탄생한 후로부터 약 80년이 지난 1929년, 일본의 미츠코시 백화점이 일제 치하의 서울에 진출한 ‘미츠코시 경성지점’이 국내 최초의 백화점이다. 본래 한일합방 이전인 1906년에 세워졌던 미츠코시 경성출장대기소’는 조선에 체류하고 있는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통신판매업체였으나 한일합방 후 조선재류 일본인이 급증하면서 그와 함께 발전, 1929년 9월 1일부로 정식지점으로 승격하였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30년 10월, 현재의 명동 신세계 백화점의 건축공사를 완공하여 개점하였다. 국내 최초의 백화점이 일본인의 손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유감스럽긴 하지만, 어쨌든 미츠코시 경성지점은 만주의 대련지점과 함께 미츠코시가 식민지에 세운 직영점의 하나로, 1930년대 말부터 해방이 되기까지 전 미츠코시 지점망 가운데 매우 중요한 점포로 군림하였다.
조선의 양대백화점, 동아백화점과 화신상회
백화점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국내에서 백화점 여사원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32년 동아백화점이다. 그들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지만, 동아백화점의 최남 사장이 화신백화점과의 차별화를 위해 미모의 여사원들을 고용했다고 한다. 소위 ‘백화점 걸’이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장안의 미인은 비행기와 백화점 안에 모여 있다”는 이야기가 돌던 시기도 있었다.
한국 초기 백화점의 양대산맥이었던 동아백화점과 화신상회는 경쟁방식에서 차이를 보였다. 전자는 양장에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미모의 여직원들을 활용, 미인계 전략을 선보였고, 후자는 봉사제일주의, 신용제일주의로 맞섰다. 처음 몇 달 간은 양 백화점의 경쟁이 점점 심화되어 좀처럼 승부가 판가름나지 않았지만, 장기화되리라던 예상과 달리 이 백병전은 불과 6개월 만에 동아백화점이 백기를 듦으로써 종식되었다. 당시 동아백화점의 최남 사장의 경영방식이 주먹구구식이었고, 미인계 전략의 운영에 있어서도 경영자의 감독 소홀을 틈탄 관리자가 오히려 여직원 여러 명을 농락했다는 추행이 세간에 알려졌던 것이다. 결국 동아백화점은 화신상회에게 상호와 상품 및 경영권 일체를 양도하였고, 화신상회와 동아백화점의 양 건물을 잇는 한국 초유의 육교가 가설되어 경성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았다.
탄생 후 150년 동안 백화점은 대자본의 ‘욕망환기 장치’로, 때로는 도시민의 ‘전인교육장’ ‘도시의 오아시스’ ‘입장료 없는 생활 유원지’로 시기마다 그 기능을 달리해오며 도시인들의 끊임없는 변화 적응성과 사회 순응 테스트 과정의 정점에 위치했다. 저자는 백화점의 이러한 시류적응성과 문화의 원류를 탐험해 나아가며, 오늘날 쇼핑과 소비의 공간으로만 여겨지는 백화점을 다른 문화적 코드로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