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는 삶의 현장이었던 그리스. 인류가 걸어온 모든 정치체제들을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시험하고 정비한 나라. 과두정, 민주정, 참주정 등 고대 그리스의 정치사를 추적하고, 정치가들의 파란만장한 일화 등을 소개한 책.
고대 그리스 정치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아테네 역사는 역동하는 삶의 현장으로서, 사회적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기득권층의 배타적 이기심과 그에 대해 도전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여러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테네인들은 특히 국가의 권력?기능이 강화되는 순간부터 그 권력이 불평등하게 행사되지 않도록 다양한 조처를 취하였다. 이 책의 저자는 빈부 사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한 채무말소, 중앙권력이 민주적으로 행사되도록 하는 지역적 안배의 원칙, 혈연?지연 등의 인맥에 의한 연고주의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소수 정치가에 의한 권력 농단을 방지할 수 있는 추첨제 등 아테네인들이 추구했던 정치방법은 오늘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의 발견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솔론의 유산
저자는 그리스 정치의 독특한 특징과 그 변천사를 소개한 후, 후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정치가들의 정치철학, 여러 주변국들과의 관계 등을 조망한다. 책을 읽다보면, 인간이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역사적으로 만들어온 모든 이론들과 정치체제 등이 어떠한 역사적 상황에서, 그리고 누구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가 자연스럽게 소개된다. 이 조그만 땅에서,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그처럼 다양한 정치체제가 시험되고 발전되어온 것을 보면 자연스레 그리스인들의 저력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스 민주정에 초석을 세운 솔론의 개혁 하나만 살펴봐도, 현대의 민주주의가 그 뿌리를 2,500년 전의 그리스에 두고 있음을 알게 된다. 솔론의 개혁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부담을 지우는 데 비례평등의 원칙을 도입한 것이었다. 그는 소득에 따라서 주민을 4등급으로 나누고 각 등급마다 의무부담을 달리 정하였다. 아테네에서는 국가의 행사나 전쟁을 치를 때에는 그 경비를 부자들에게 부담시켰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로 ‘재산 바꾸기 소송’을 들 수 있다.
에게 해에 델로스 동맹이 형성된 후에는 해전이 증가하였는데, 전선(戰船)의 제조나 유지의 경비를 부자들에게 부담하게 하는 것이 ‘재산바꾸기 소송’이다. 선주에 지명된 부자들은 적지 않은 경비를 사재(私財)에서 지출해야 했고, 선주로 지명된 사람이 그 부담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있었다. 그것은 주변에 자기보다 더 부유한 사람을 찾아내어 자신의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엉뚱하게 ‘발굴’된 사람이 고분고분 그 부담을 넘겨받는 일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자 간에는 자연히 소송이 일게 된다. 재산이라는 것이 값을 측정하기 어려운 토지일 경우나, 또 여러 형태의 재산권이 있어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마침내 ‘재산 바꾸기’의 방법을 택하도록 한다. 이것은 ‘발굴’된 사람이 그대로 부담을 위임받는 것과, 그것이 억울하다고 판단되면 자기 재산과 상대편의 재산을 맞바꾼 후 국가의 부담을 떠안는 것 중 양자택일하는 것이다.
또한 솔론은 다수 민중의 참정권을 확대하였는데, 먼저 과거 상류층들로 구성된 아레오파고스 의회 혹은 관리가 가지고 있던 재판권을 민중재판소로 많이 넘겼다. 또 아레오파고스 의회가 뽑던 관리의 선출방법을 바꾸어 9명의 아르콘을 추첨으로 뽑도록 하였다. 장관을 추첨으로 뽑는 것은 국가권력이 소수의 특정인들을 중심으로 행사되지 못하도록 하는 데 기여하였다. 아테네인들은 국가의 기능이 강화되는 순간에 인맥?혈연 등 인간적 유대에 의해 권력이 농단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를 함께 고안해냈던 것이다. 아테네인들은 동양인들보다 인간 개인에게 신뢰성을 적게 두며 소집단에 의한 자의적인 전횡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제도적인 조처를 강구하였다.
개혁과 혁명 그리고 전쟁의 치열한 격전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가진 자들은 토지재분배나 부채말소의 개혁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경계하였다. 이 같은 개혁은 위정자들의 정치권력 및 무력이 강화되는 헬레니즘 군주국 및 로마제국 시대에는 보기도 듣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스의 정치적 갈등은 바로 도시국가의 시민들 간, 즉 한편으로 배타적 자기중심의 이익과 다른 한편으로 공익 사이의 대결이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원전 6~4세기경에 이르러 그리스 도시국가 간에는 군사동맹이 체결되고 용병제가 발달되었는데, 그 결정적 계기는 기원전 5세기 초 페르시아 전쟁 및 그에 대항하여 결성된 아테네 중심의 델로스 해상동맹이었다. 무력의 발달은 시민사회의 온갖 특징을 말살시켜 갔다. 군사력 증강과 함께 폴리스 안팎으로 정치권력 및 사회적 억압도 진전되었다. 혈연 및 시민 사회의 공동체성은 파괴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눈덩이같이 커져 갔다. 그 같은 전례는 알렉산드로스와 로마의 침략적 제국주의로 이어지게 된다. 이 책은 그와 같은 변화의 조짐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기원전 338년경까지를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