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물을 마셨다고?
‘그보다 더한 짓’도 했다!
“심지어 인분도 드셨다”
가수 조관우가 최근 한 TV 프로그램KBS 2TV '승승장구‘ 30일자 방송에서 고백한 일화는 충격적인 파장을 몰고 왔다. 아버지 조통달이 득음을 위해 인분까지 마셨다는 것. (조관우의 아버지 조통달은 이모인 박초월과, 정권진으로부터 소리를 배운 소리꾼이다. 그의 소리는 우렁찬 천구성으로 유명하다. 197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판소리박초월 바디 <수궁가> 이수자 선정)
아무리 득음을 위해서라지만 인분이라니! 그러나 소리꾼들은, 득음을 위해 그보다 더한 짓도 했다.
◆ 득음과 독공, 곰삭은 소리의 비밀
판소리에서 말하는 아름다운 소리란, 태생부터 고통의 씨앗을 품고 있다. 으뜸으로 치는 수리성을 얻기 위해 목에 상처를 내고 또 상처를 내 아예 목을 흉터투성이로 만드는 것이 바로 득음의 시작이다. 소리를 얻기 위해, 그 유명한 박동진도 아버지에게 똥물이라는 비책을 부탁했다. 여색에 깊이 빠져 소리를 상했던 그가 나무에 팔을 매달아놓고 북을 치며 거의 다 죽게 된 지경에 이르러 마신 것이 바로 똥물(본문). 대나무 마디를 잘라 인분통에 넣어두었다가 고인 맑은 물을 먹으니 비로소 눈이 환해지면서 소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뿐인가. 득음은 끝없는 수련의 시작일 뿐이다. 소리꾼은 득음을 한 뒤에도 소리가 폭포를 뚫고 나갈 때까지 몇 번이고 백일공부를 다시 한다. 가왕 송흥록이 그렇게 독공을 했으며, 염계달은 자그마치 10년 동안 상투에 끈을 묶어 천장에 매달고 소리 공부를 했다(본문).
◆ 진채선과 대원군, 떡목으로 판을 막은 정정렬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소리꾼의 인생, 거기 판소리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네
소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소리꾼의 일생은 그 자체로 우리 삶의 온갖 슬픔과 기쁨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최근 소설이정규, 『진채선』과 뮤지컬타루, (국악뮤지컬)『진채선』의 소재로 각광받은 진채선은 최초의 여자 소리꾼이다(본문). 그간 팩션으로 다뤄진 진채선의 삶을, 이 책은 실제 사료를 토대로 추적해간다. 진채선은 신재효의 각별한 배려 속에 소리를 배웠고, 남자 복장을 한 채 한양에 올라가 흥선대원군의 눈에 들어 그의 집에 기거하며 소리를 한다. 대원군이 실각한 후 진채선의 행적은 알려진 것이 없으나, 기생이 되었으리라는 세간의 소문과 달리 출궁녀가 되어 조용히 일생을 마쳤으리라는 것이 저자의 추론이다.
한편, 좋지 않은 목소리를 뜻하는 ‘떡목’을 가졌던 정정렬이 목소리의 한계를 극복하고 용틀임하는 창법을 만들어내기까지의 고군분투, 임방울이 마침 그 시대에 등장한 방송과 음반이라는 근대문물을 통해 온 국민의 스타로 데뷔한 이야기, 그리고 김연수가 임방울을 시샘해 일부러 목이 나빠지도록 그에게 우렁이회를 사다준 일화 등 이 책은 소리꾼들의 드라마로 가득하다.(그런데 우렁이회를 먹은 임방울은 어떻게 됐을까? 그는 우렁이회를 먹고도 소리를 잘만 했다. 이를 본 김연수는 “목이 좋은 놈은 우렁이회를 처먹어도 목이 환장하게 잘 나오네그려”라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본문)
◆ 살아 있으라, 소리는 살아 있으라…… 소리꾼의 각오
지금, 판소리는 절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 박제된 예술은 이미 예술이 아니다. 판소리는 1964년부터 국가의 정책적 보호를 받기 시작했다. 저자에 따르면, 판소리가 문화재 보호법에 근거해 “원형을 얼마나 잘 보존하고 있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지기 시작한 것 자체가 이미 적신호다. 그것은 판소리가 완전히 전승의 활력을 잃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본문). 그렇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청중의 선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농악은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등장과 함께 ‘과격한 변이형’일지언정 대중예술로 살아남는 데 성공했는데 판소리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소리꾼이 가야할 길은 무엇인가. 저자는 박동진의 판소리를 예로 들며 대안을 모색한다. ‘마지막 대가’ 박동진의 위대함은 그가 위기에 처해 있던 판소리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것으로 만들어놓았다는 데 있다. 그는 매번 새로운 공연을 할 때마다 청중의 성격에 맞게, 즉흥적으로 사설을 지어내기로 유명했다. 평생 다시 태어나도 광대의 길을 가겠다고 공언하며 스스로를 광대로 불렀던 박동진, 그렇게 사람들 속에서 살아 있는 소리를 하고자 했던 그의 정신, 그것이 바로 오늘날 소리꾼들이 품어야 할 각오일 것이다.
이 책은 소리꾼의 일생을 통해 판소리의 정수를 보여주는 책이다. 판소리학회장을 역임한 저자는 ‘소리꾼’을 키워드로 전승예술로서의 판소리가 지닌 특징을 보여준다. 신재효는 <광대가>에서 광대가 갖춰야 할 요건으로 인물치레, 사설치레, 득음, 너름새를 꼽았다. 이 중에서 소리꾼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바로 득음이다. 저자는 소리꾼이 득음하기까지의 혹독한 과정을 생생한 일화를 통해 보여주고 득음 후에도 계속되는 독공(소리공부)의 노력을 묘사했다. 또한 진정한 소리꾼은 자신만의 사설을 창조하여 독창적인 바디를 가짐으로써 비로소 예술가의 반열에 올랐음을 강조한다. 요컨대 판소리란, 충분히 곰삭은 목소리에 스승에게 전승받은 소리를 당대의 대중과 소통하는 사설로 변이시켜 창조를 거듭하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소리꾼의 일화와 소리의 현장을 그대로 옮긴 듯한 사설(‘판소리 한 대목’)은 판소리를 멀게만 느꼈을 독자와의 간격을 바짝 좁혔다. 하늘이 준 목을 지녔다고 불린 김소희와 소리 임방울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타고난 목이 좋지 않았음에도 피나는 독공으로 자신만의 소리를 개척한 정정렬과 김연수의 이야기는 뭉클한 감동을 준다. 최초의 여자 소리꾼 진채선, 약자의 서슬을 소리에 담아 표현한 박초월, 그리고 완창 발표회로 화제를 모았던 마지막 대가 박동진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득음이란 ‘소리를 얻는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소리꾼이 되기 위해서는 본래 소리꾼이 가지지 못한 ‘소리’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리꾼은 오랜 시간 동안 늘 소리를 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아예 오랜 시간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괜찮도록 성대를 단련해야 한다. 이때 소리꾼이 하는 훈련이 바로 성대를 단련해서 항상 목이 쉰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일이다.
판소리가 기본적으로 거칠고 탁한 소리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다. 판소리의 성음은 ‘곰삭은 소리’, 곧 ‘충분히 삭은 소리’여야 한다고 한다. 소리를 수련한다는 것은 생목에 여러 가지 감정을 담아 표현하는 방법을 익힌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거칠고 얕았던 소리는 부드럽고 깊은 맛을 지니게 된다. 음식이 발효를 통해 맛과 향기를 갖게 되듯이 목소리도 수련을 통해 온갖 맛과 향기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판소리의 맛과 향기를 대표하는 것은 ‘슬픔’이다. 그러나 충분히 삭은 슬픔은 인간을 깜깜한 절망으로 이끌어가는 슬픔이 아니다. 슬픔이면서도 그런 슬픔을 준 대상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다 가신, 그래서 그러한 상대마저도 이제는 용서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함께 껴안을 수 있는 너그러움이 깃든 슬픔이다. _본문에서
목이 나쁘면 기교나 공력으로 소리를 한다. 판소리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은 그런 소리를 좋아한다. 목이 좋은 사람은 목소리에 의지해 소리를 한다. 목소리가 너무 좋기 때문에 다른 것은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임방울 같은 사람은 아무렇게나 소리를 해도 좋았다고 한다. 그냥 소리를 내면 내는 대로 다 좋았다. 그러니 새로운 영역을 탐구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목이 나쁘면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목소리 외의 다른 방법을 탐구할 수밖에 없다. 정정렬이나 김연수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판소리를 개척했다. 그리고 소리를 갈고닦아 좋은 목소리에서 느낄 수 없는 깊은 맛을 담았다. 그들은 이른바 공력을 닦은 것이다. 목이 나빴던 정응민의 소리가 현대 판소리의 중추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정응민이 소리를 갈고닦아 거기에 오색찬란한 광채를 담았기 때문이다. 타고난 목을 지녔던 사람의 소리는 생명이 짧고, 목이 나빴던 사람의 소리는 오히려 생명이 길다는 이 역설은 판소리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판소리는 오히려 역경 속에서 빛을 더해가는 예술인지도 모른다. _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