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부딪혀 이마가 깨져도 되나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날았고
이마가 깨졌다”
깨트림에서 비롯되는 탄생
헝클어짐에서 비롯되는 사랑
작은 인간, 작은 우주, 작은 나에게서 비롯되는 세계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등단한 이후 시와 산문, 소설 등 장르를 넘나들며 독자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아온 박연준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을 펴낸다. 소시집 『밤, 비, 뱀』(현대문학, 2019) 이후 5년 만이자, 등단 20주년이 되는 해에 펴내는 신작 시집으로 특별함을 더한다.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창비, 2007) 속 삶과 세계를 부정하며 생살을 찢는 아픔을 거침없이 말하던 20년 전 박연준의 화자는, 사랑하는 이들을 상실하며 쓴 뜨거운 슬픔의 시세계에서 “나와 나 사이의 불화를 중재할 수도 있게”(신형철,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해설에서, 문학동네, 2012) 되었다. 이후 “은밀하고도 섬세한 언어를 통해 뿜어나오는 명랑하고도 발랄한 에로티시즘의 미학”(조재룡, 『베누스 푸디카』 해설에서, 창비, 2017)이라는 평을 받으며 매혹적인 리듬감을 펼쳐보인 그는 “내 시는, 내가 쓰고 당신이 연주하는 음악이다”(『밤, 비, 뱀』 수록 에세이에서)라 말하며 고요한 밤의 자리를 독자와 나누기에 이르렀다.
이번 시집에서는 보다 더 ‘작은 것’에 집중한 화자를 만날 수 있다. 작은 인간, 작은 우주, 작은 나 등 미시적 세계를 잘 들여다보는 것이 시의 일이며, 작은 것이 사소한 게 아닌 본질에 가까운 것임을 드러내는 일이 시인의 책무임을 말하는 듯한 58편의 시편들. “작게 말하면 작은 인간이 된다 (…) 공책을 펼치면 거기/ 작은 인간을 위한 광장/ 납작하게, 죽지도 않고 살지도 않는/ 이름들/ 사소한 명단이 걸어다닌다/ 작은 이름표를 달고 작게 작게”(「작은 인간」)… 그렇게 작아질수록 구별짓기는 무색해지고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볼”(「구원」)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죽음을 사고파는 것/ 작은 죽음을 사랑한다는 것/ 작은 죽음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작은 돼지가 달구지를 타고 갈 때」)을 아파할 줄 알게 될 것이다. 그 어떤 큰 것도 작은 것들이 촘촘히 모여야 가능해진다는 것 또한.
“이제부터// 작은 것에만 복무하기로 한다”(「유월 정원」)는 결심은 시집 곳곳에 흩뿌려진 ‘깨트린 것/부서진 것’들과 만나 이상하고 아름다운 불협화음을 낸다. ‘작은 인간’을 향한 몰두가 박연준 시세계가 당도한 지금의 얼굴이라면, 능동적으로 깨트리거나, 무언가에 의해 부서지는 것에 대한 발화는 그의 시세계가 그간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구축해온 구심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