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3관왕을 이룬 파올로 조르다노 화제의 데뷔작
전 세계 46개국 출간 | 300만 부 판매
물리학과 일상을 연결하는 독특하고 감각적인 작가
파올로 조르다노의 기록적인 데뷔작
스물다섯 살에 처음 발표한 소설로 이탈리아 문단을 휩쓴 작가 파올로 조르다노의 『소수의 고독』이 새 옷을 입고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주로 중견 작가에게 수여되던 스트레가상을 데뷔작으로 수상하고, 캄피엘로상, 머크 세로노 상 등 이탈리아의 문학상을 휩쓸며 문단에 등장한 조르다노는 서로에게서 자신의 결핍을 발견한 두 주인공의 사랑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일본 등 46개국에서 출간되고 300만 부 이상 판매고를 올린 이 소설은 동명 영화 <소수의 고독>으로도 만들어져 제67회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소수의 고독』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조르다노는 입자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물리학자이기도 하며, 작가의 독특한 이력은 작품세계에서도 개성 있게 펼쳐진다. 『증명하는 사랑』 『태즈매니아』 등 소설에서는 물리학과 일상을 연결하며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인간이 가진 근원적 고독과 결핍을 끌어안는 순수한 사랑을 그린다.
서로에게서 자신의 고독을 알아본 두 사람,
이들의 불완전한 사랑은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소수의 고독』은 각자 결핍을 안고 있는 두 사람, 알리체와 마티아의 사랑을 그린다. 아버지의 강요로 스키 대회를 준비하던 알리체는 어릴 때 사고로 다리를 다친다.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는 신체적 결함을 안게 되며 알리체는 외모에 대한 열등감으로 거식증까지 앓는다. 수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마티아에게는 발달장애를 가진 쌍둥이 동생 미켈레가 있다. 미켈레를 잠시 공원에 두고 친구의 생일파티에 다녀온 사이 동생은 실종되고, 이 사고로 마티아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해하는 버릇이 생긴다. 두 사람은 결핍과 상처를 감추고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며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섞이지 못하고 상처를 끌어안은 채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눠지는 외로운 소수(素數)처럼 살아간다.
쌍둥이소수는 근접한, 거의 근접한 두 수가 한 쌍을 이루는데, 그 사이엔 항상 둘의 만남을 방해하는 짝수가 있다. 11과 13이라든가 17과 19, 또는 41과 43 같은 수가 그렇다. 참을성 있게 계속 세어나가면, 이 쌍둥이소수가 점점 희소해지는 걸 발견하게 된다. 오직 기호로만 이루어진 고요하고 규칙적인 세계에서 길을 잃은 채 더욱 고립된 소수를 만나게 된다. 그러면 그때까지 만난 쌍둥이소수는 우연의 산물이며, 결국 그들의 진정한 운명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불안한 예감이 밀려온다. 그래서 더 세어볼 마음이 들지 않아 그만두려고 하면, 서로 꼭 붙어 있는 쌍둥이소수를 만나게 된다. (...) 마티아는 자신과 알리체가 그런 사이라고 생각했다. 외로이 방황하는 두 소수, 가깝지만 실제로 서로 닿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쌍둥이소수. (본문 중에서)
그렇게 외로움을 표출하지도, 이해받으려고 하지도 않던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나게 되고 서로를 알아본다. 다른 사람에게 곁을 내주지 않던 마티아는 알리체에게 친근함을 느끼지만 알리체를 향한 자신의 마음은 좀처럼 털어놓지 못한다. 둘은 서로의 곁을 맴돌다가 각자의 길을 떠나고, 의미 없는 작별인사만 나눈 채 헤어진다. 수학연구자가 된 마티아는 유학을 떠나고, 알리체는 사진작가로서 길을 걸으며 둘은 서로를 가끔 떠올릴 뿐이었다. 그러다가 미켈레와 닮은 여자를 발견한 알리체가 마티아에게 급히 메시지를 보내며 두 사람은 9년 만에 재회한다. 서로에게서 자신을 본 두 사람이 쌓은 불완전하고 비대칭적인 사랑. 과연 이들은 서로에게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자기연민에 침잠하지 않고 결핍을 마주한다면
다시 한번 순수한 사랑을 꿈꿀 수 있다
『소수의 고독』에는 알리체와 마티아 둘 사이의 사랑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등장한다. 같은 반 친구인 마티아를 짝사랑하는 데니스는 자신의 동성애를 터놓을 수 없는 외로움을 마음 한편에 오래도록 감추고 마티아의 곁에 머문다. 알리체는 마티아와 헤어져 있던 사이,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온 의사 파비오와 결혼한다. 이 결혼을 통해 알리체는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사랑으로 마티아의 부재를 채우려 하고, 파비오는 알리체를 사랑하는 본인의 모습에 도취되어 상대방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마티아는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알리체에게서도, 유학 생활 동안 자신에게 호감을 표현한 나디아에게서도 계속 도망친다. 미켈라에 대한 죄책감이나 자신의 진정한 속내를 마주해야 할 때마다 수학이라는 도피처를 찾는다.
데니스는 그후로도 여러 번 그 클럽을 드나들었다. 매번 다른 남자와 이야기를 나눴고 상대가 물어도 이름을 말해주지 않으려고 늘 적당히 둘러댔다. 누구와도 그 이상의 관계까지 가지 않았다. 대신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는데, 대부분 침묵을 지킨 채 듣기만 했다. 그는 서서히 그 이야기들이 서로 엇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은 같은 길을 걸었다. 머리 전체를 물속 깊숙이 집어넣어 바닥을 치고 나서야 수면 위로 올라와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본문 중에서)
네 사람은 성숙하지 못한 사랑으로 각자의 구멍을 메우려 하지만, 모두 실패하고 만다. 『소수의 고독』의 등장인물들은 이 처절한 실패를 통해 타인에게 의지해 자신을 똑바로 세우려 했던 과거에서 한걸음 나아간다. 마티아는 “이미 소진된 가능성, 조금 전까지 둘을 하나로 묶어줬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려 보이지 않는 역선을” 깨닫게 되고, 알리체 역시 홀로서기를 선택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상처에 파묻혀 외로이 방황하는 젊음이 자기연민에서 벗어나 결핍을 마주할 때, 다시 한번 순수한 사랑의 가능성이 생겨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기 자신과 타인을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새로운 내일을 보여준다.
알리체는 골짜기로 추락해 눈에 파묻혔던 때를 떠올렸다. 그 순간의 완전한 고요를 생각했다. 지금도 역시 그날처럼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번에도 찾아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더이상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았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