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없이 사적인 이야기가 때마침의 언어를 입는 시간
삶이라는 거대한 기후 아래 각자의 계절을 살아가는 인물들
30년에 가까운 작가생활 내내 인간 삶의 다채로움을 폭넓게 탐구해온 소설가 이신조의 다섯번째 소설집 『너의 계절, 나의 날씨』가 출간되었다. 일곱 편의 수록작들은 작가가 처음부터 ‘날씨-계절-시간-변화-존재’들을 아우르는 글쓰기를 의식적으로 시도한 것으로, 인간을 가능한 한 넉넉히 포괄하기 위해 미리감치 기획되었다. 책의 첫머리에 놓인 제사, “대자연은 날씨 물후의 수많은 변화를 통해 우리 몸의 직관과 영감을 회복하도록 이끈다”(위스춘, 『시간의 서』)는 문장처럼, 이신조는 삶이라는 거대한 기후 아래 각자의 계절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내밀한 풍경을 펼쳐 보인다.
우울에 잠식되는 것은 하늘이 서서히 구름에 덮이는 일과 비슷했다.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언제 끝나는지, 어째서 그러는지, 왜 그래야만 하는지, (…) 이 슬픔과 피로와 마비와 공허와 나락은 왜 내게 당도한 것인지,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난다 해도, 그 흩어져 사라짐이 좀처럼 기쁨과 의욕과 활기와 충만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 이내 다시 구름이 밀려오듯, 이별과 상실과 불운과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 구름처럼 삶을 가눌 수 없다는 것. _「봄밤의 번개와 질소」에서
이신조의 인물들은 종종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의 기억을 안고 현재를 살아간다. 그 기억은 때로는 개인적인 트라우마로, 때로는 역사의 상흔으로 남아 이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소설집의 문을 여는 「봄밤의 번개와 질소」는 전남편의 제사를 지내겠다는 아내의 말로 시작된다. 아내가 제사를 준비하는 동안 화자는 “우울증, 알코올의존증, 공황장애”로 얼룩져 어떻게 “더욱 빨리 더욱 확실하게 죽을 수 있는지”만을 탐구하던 자신이, 4년 전 아내의 전남편에게 일어난 불의의 사고 이후로 자신 역시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아내와 나, 함께 보낸 시간과 함께 보낼 시간, 얼마든지 없을 수도 있었던 이 모든, 꿈 같은 실체들”은 질소고정을 통해 존재에 숨을 불어넣는 봄밤의 번개와 대지처럼 인간이 예지할 수 없는 관계와 시간으로부터 비롯한다는 것을 느끼면서.
이어지는 「여름철 기압 배치」는 관계에 대한 고찰을 연대기의 차원으로 확장하여, 개개인의 날씨를 집어삼키는 역사의 모습과 그 끝에 솟아오르는 생명의 경이를 돌올하게 선보인다. 쌍둥이 딸의 탄생을 앞두고 설렘과 동시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는 남자 ‘한솔’이 있다. 단순히 초보 아빠로서의 막막함만이 아닌 그의 불안 위에 분명 그가 겪어보지 못했을, 친할머니 ‘김난옥’이 겪어야 했던 6·25전쟁의 참혹한 기억이 오버랩된다. 그 고통들을 생생히 망라하면서도 소설은 할머니 난옥의 등에 업혔던 한솔의 “생의 첫 기억”과 막 태어난 쌍둥이 딸들의 울음소리를 교차시키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생명의 고리를 그려낸다.
애끊는 이별과 결코 끝날 수 없는 애도에 대해서라면 「펫로스, 겨울 편지」가 일곱 편의 소설들 중에서도 가장 곡진한 마음을 내어 보인다. 추운 겨울 길 위에서 태어나 ‘나’에게 온 아기 고양이 ‘묘조’, 그 작은 존재가 깊은 어둠 속에 파묻혀 있던 ‘나’를 어떻게 구원했는지. 그러나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묘조의 마지막 순간이 닥쳐오고, 그후로 절절하게 이어지는 애도의 과정이 격렬하면서도 절제된 파토스를 동반해 펼쳐진다. 13년간 함께했다가 떠나보낸 반려묘에게 보내는 2인칭 편지 형식의 소설은 ‘펫로스 증후군’이라는 오늘날 더욱 시의적인 공적 경험을 다룸으로써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돌봄’이 무엇인지 헤아리게 한다.
너와 나는 십삼 년간 서로를 낱낱이 샅샅이 보고 또 본다. 보지 않을 때도 본다. 서로를 보지 않을 수 없이 살아간다. 우리는 눈(眼)이 아닌 것으로도 본다. 존재 전체를 사용해 서로를 감지하고 파악하고 인식한다. 계절이나 날씨처럼 그것이 우리의 자연이다. _「펫로스, 겨울 편지」에서
“이 사랑과 섭리만을 위한 다른 언어가 필요하다.”
너와 내가 함께 쓴 내밀한 역사로서의 일기日記/日氣
『너의 계절, 나의 날씨』의 특별함은 서로 다른 정체성을 지닌 존재들을 따스하게 아울러내는 넓은 품에 있다. 「오늘 서울은 하루종일 맑음」에서 눈부시게 맑은 5월의 한강을 따라 걷는 ‘지수’의 머릿속은 지난겨울 겪었던 교통사고의 트라우마, 예상치 못한 임신, “통증과 충격과 고립감이 느껴지는 청혼”, 그리고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 서울로 왔지만 끝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하늘’에 대한 생각으로 복잡하다. 얼핏 인간을 환대하는 듯한 강변의 화창한 풍경과는 달리 연약한 이들을 잔혹하게 집어삼키는 도시의 생리,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한 폭의 유화처럼 어우러져 인간에 대한 너른 묘사를 전한다.
「세탁기 속의 그녀─『인어공주』 외전(外傳)」은 고전 동화를 신화적 상상력으로 이어 쓴다. 물거품이 된 후에도 266년간 물처럼 흘러다니며 세상을 관찰해온 인어공주는 어느 늦은 밤, 코인 빨래방에서 피 묻은 침대 시트를 세탁하는 한 젊은 여성을 발견한다. 목소리를 잃고 인간의 다리를 얻었지만 결국 사랑에 실패했던 인어공주의 비극이 빨래방에 앉아 밤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투사될 때, 시대를 초월하여 반복되는 여성들만의 역사가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한편 「숲그늘의 개와 비」의 ‘나경’은 아버지와 자신의 커리어에 연이어 찾아온 커다란 스캔들로 삶의 최저점에 다다랐을 때, 외딴 숲속 펜션을 찾는다. 그곳에서 그녀는 7년 전 맞선 상대였던 의사 ‘인준’과 조우하는데, 당시 나경을 밀어냈던 그는 이제 약초꾼이 되어 은둔자처럼 살아가고 있다. 아직 그들 사이에는 “어둠 그 자체” 같은 커다란 검은 개, 계곡과 숲길, 섣불리 넘어가기에는 서로 너무나 다른 아픔의 역사가 있지만, 오직 단둘이 남는 어떤 밤이 이윽고 찾아온다.
『너의 계절, 나의 날씨』를 닫는 소설은 스쳐지나간 인연들, 떠나보낸 소중한 존재들과의 사적인 역사를 영화를 매개로 풀어낸 이야기 「스필버그와 나」이다. 소설은 우리에게 영화는 단순히 괴로움을 덜고 즐거움을 주는 오락이 아니라 실로 “영화필름처럼 흘러”가는 현재의 시공간을 기억하게 하고 과거에 생기를 부여하는 예술임을 증명하는 동시에, 어느 누구의 생이든 수많은 관계와 사연들을 통해 마치 영화처럼 정교하고도 근사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진실을 설득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신조의 소설은 고요한 정동으로 가득하다. 고요하지만 격렬하고 잔잔하지만 끊임없이 요동하는 그것은 보이지 않으면서도 지상에 머무르는 공기와도 같다. (…) 그런데 『너의 계절, 나의 날씨』에서 날씨나 계절은 특정한 정념이나 주제를 암시하거나 은유하는 것을 넘어서, 소설을 구성하는 로직이기도 하다. 날씨가 정념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날씨 자체가 정념의 소유자인 것이다. 따라서 이신조에게 날씨나 계절은 소설의 행위자이기도 하다. _양윤의 해설, 「너는 날씨를 바꾼다」에서
『너의 계절, 나의 날씨』 전체를 감싸는 날씨와 계절의 은유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인간의 내면과 삶의 조건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때 인물들은 날씨의 변화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때로는 서로에게 서로의 날씨를 바꾸는 존재가 되어준다. “어긋난 인사(人事)를 감싸안”고 “서로가 서로의 돌봄의 주체”(해설에서)가 되어갈 때, 마침내 “겨울을 통과해 봄에 닿”(「펫로스, 겨울 편지」)을 수 있을 것이므로. 인간은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불어오는 날씨를 느끼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몫만큼의 삶을 살아내려 애쓸 것이다. 다만 『너의 계절, 나의 날씨』가 그러하듯 유형무형의 고난들 끝에 아스라하게 불을 밝히는 삶의 의지까지도 능숙하게 감각할 때에야 독자는 비로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오래 곱씹고 마음에 담아둘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너의 계절, 나의 날씨』는 변화무쌍한 삶의 기후 속에서 길을 찾아나서는 우리 모두에게, 다정하고도 든든한 우산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