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앞에 여름 내내 마음 하나가 있었고
그는 네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멋진 일이었다.”
닿기 위해 물러나는 '진짜 급진주의자 시인'
되어가는 것들이 펼쳐 보이는 흰 빛의 목소리
문학동네시인선의 245번째 시집으로 채호기 시인의 『이상한 밤』을 펴낸다. 198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하여 시력 40년에 육박해가는 그의 10번째 시집이다. 전작 『머리에 고가철도를 쓰고』가 출간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신작 시집을 선보이는 그의 왕성한 창작활동을 ‘초신성’에 빗대고 싶을 만큼, 그의 시작은 매번 새롭게 죽고 매번 새롭게 태어난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참신과 경신을 거듭하며 뜨겁게 빛나는 에너지로 똘똘 뭉친 『이상한 밤』은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점에 이를락 말락 할 때의 바로 그”(인터뷰에서) 시적 에너지로 넘실거리고 우글거리고 예측 불가능한 ‘시적 공작물’에 다름 아니다. 이번 채호기의 시집에서는 빛이 말한다, 음악이 만진다, 벌레가 쓴다, 집이 건축한다. 이 무한한 (불)가능성과 (비)상상력 앞에서 시인은 우주의 필경사가 되어 삼라만상을 기록-현상한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저 우주를 쓰는 것이 아니라, 우주로서 우주를 쓰고 말하는 필경사가 된다.
진짜 급진주의자 시인은 사물을
새로운 언어로 명명하지 않고
새로운 사물을 만들어낸다.
진짜 급진주의자 시인은 글을 쓰거나 말하지 않고
시가 사물에 접근하거나 사물이
인간을 읽고 기록하는 시적 공작물을 만든다.
시인은 쓰기에 열중하는 만큼 그것이 유일한 열정이 아니라는 것.
시는 생각과 실행이 합치는 곳에
종이와 잉크와 낱말이 만나는 지점을 발명한다.
_「세 개의 모음」 부분
『이상한 밤』은 10개의 묶음으로 총 145편의 시를 선보인다.
이 예외적으로 묵직한 시집은 시편 하나하나가 “하나의 단일하고 유일한 개체이면서도” “시집이라는 다양체로서의 집합에서는 제각각의” 기능을 해야 했기에 “최대한 많은 객체”(인터뷰에서)가 소집되어야만 했다. 더불어 평론가 전승민의 제안에 따르자면, “반드시 목차대로 읽을 것을 권한다”. 이는 “한 편의 교향곡을 개별 악장으로 청취할 수 있으나 그 곡을 하나의 음악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1악장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과 같”(해설에서)은 이치로, ‘전체를 위한 하나-하나를 위한 전체’라는 유기적 순환을 체험하는 차원에서도 그러하다. 그의 이번 시집을 읽는 또하나의 방법이자 비유를 제안하자면, 마치 ‘테라리움 전시관’을 구경하는 마음으로 한 편 한 편을 감상해도 좋을 듯하다. 각기 하나의 고유한 세계이면서 그 세계가 하나로 응집된 장소로서의 시. 물론 이를 감상하는 관객인 우리 역시 전시의 일부라는 것을 인지하면서, 나아가 우리 역시 테라리움으로부터 감상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네가 달을 볼 때, 달은 너를 보고 있지 않다.
네가 달을 보고 있을 때 달도 너를 보고 있지만, 네가 보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네가 너를 중심으로 달을 보듯 달도 달을 중심으로―너를 본다.
_「달을 위한 두 개의 모음」 부분
바다는 바다고 해변은 해변이어서
그것들과 너는 고유하고 독립적이어서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서로 설렌다.
_「서로 설렌다」 부분
시는 생래적으로 언어와 시선에 붙박여 있을 수밖에 없기에, 시와 시인은 그 한계 내에서 문학적 장치를 통해 뛰어넘거나 무화시키며 독자와 교감한다. 그러나 채호기의 시는 문학적 장치라 할 법한 그 ‘인간적’인 수사와 기예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듯하다. 차라리 비인칭/비인간의 목소리라고 말해도 좋을 법한 필경사의 쓰기를 통해, 그는 객체를 완전히 그려내고 담아낼 수 없는 불가능성과, 인간에게는 상상력으로 보이지만 비인간에게는 비-상상력일 현상을 쓰는 일에 몰두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시를 읽는 재미가 발생하는데, 인간이 사물을 꾀어 취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흉계에 기꺼이 인간이 연루되는 전복의 향연 속에서, 독자들은 진정한 시적 자유와 에너지를 느끼는 것이다. 시편 하나하나에서 생겨나는 차이와 반복, 주체와 객체가 전도되거나 주체가 사라져가는 소멸의 운동 속에서 “인칭의 물리적인 전환이 아니라 시적 주체가 자신으로부터 물러나 타자화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해설에서)이 발생하고, 그리하여 시와 시인이, 시인과 독자가, 독자와 시가 아름답게 만난다.
무엇에 이끌리는지 모르는 채 우리는 어떤 것들의 심연 가까이로 허겁지겁 달려든다.
사랑은 입술을 내밀고 손으로 거머쥐려는 포옹
에 앞서 빛이 어루만지는 그윽한 시선이다.
몸을 부리지 않고도 돌보고 지키는, 만지지 않고도 만지는 빛의 터치.
_「세 개의 조각」 부분
모든 있는 것의 생각은 열기다.
어떤 것이 문턱을 넘어 먼지가 될 때
먼지가 문턱을 넘어 어떤 것이 되어갈 때
열이 난다. 가장 차가운 것도 되어가는 것들의 불이다.
_「부패는 생각의 힘이다」 부분
채호기의 『이상한 밤』을 읽는 일은 그러니까 시를 읽는다기보다, 이상하고도 기이한 시적 체험에 가깝다. “지금까지 열려 있던 바다의 액체가 순식간에 완전한 침묵의 고체로 닫”힌 장면을 박제하여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고 강렬한 색상, 완전하고 미친 듯한 햇빛과 빛을 감싸는 검청색의 반복하는 패턴,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동하는 색상, 기하학적 형태, 선과 기호의 구성이 나타나고 반복하며 새로운 패턴으로 진화”(「뱃머리」)하는 언어와 사고의 용융 운동 그 자체를 그려내는 일을 그가 하고 있기 때문. 시로 고정되는 것을 택하느니 시적인 것으로 우글거리는, 다시 말해 시가 아닌 시적인 것으로 살아 움직이는 한 생명체를 채호기는 건넨다.
시인의 앞선 말대로 “진짜 급진주의자 시인은 글을 쓰거나 말하지 않고/ 시가 사물에 접근하거나 사물이/ 인간을 읽고 기록하는 시적 공작물을 만든다”. 그러므로 인간이 사물에 접근해 들어가거나 사물이 ‘되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시’를 그는 쓸 수 없다. 기성의 “세련된 언어 감각은 오히려 부숴버려야” 하고, 구태한 질서는 “새로운 시가 나타날 때 그 새로운 시에 의해 부서져야”(인터뷰에서) 하기에 그의 시는 언제나 낯설고 기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그의 시에 절대 익숙해질 수 없을 것이다. 채호기의 시가, 그리고 시인이 그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채호기의 시를 읽어야만 하는 가장 큰 이유다.
독자인 우리는 이토록 ‘이상한 밤’의 체험―‘나’가 ‘나’를 말하는 순간 ‘너’가 되고, 시가 언어로 시를 쓰는 순간 그것은 몸이 쓰는 음악이 되는 기이한 세계로 초대된 이들이다. 이 밤의 한가운데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세계라는 행성의 생태계 안에서 사건적으로 이어지고 해체되며 또다시 연결되는 반복적 변주로서의 얽힘, 그 일렁이는 만남의 우주적인 감각이다. 객체들의 향연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는 이곳은 시의 새로운 존재론적 우주다. ‘나’는 ‘너’에게로 닿기 위해 이제 천천히, 물러난다. _전승민, 해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