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콘텐츠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남성 중심 영화사에 균열을 낸 전복적 천재,
도리스 위시먼을 만나다
혁신적이지만 잊혀진 여성 감독,
도리스 위시먼을 조명한다
‘미천한 산업’ 출신의 여성 감독은
왜 이토록 과분한 주목을 받고 있는가?
“지옥에 가서도 영화를 계속 만들겠다”던 그녀의 선언이 반드시 이뤄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기왕 지옥에서 만드시는 영화라면 지상의 것보다 훨씬 더 화끈하고 훨씬 더 파격적이었기를! 지옥을 찢으셨기를!
_이해영(영화감독)
이 책은 한국의 독자와 학자, 시네필들에게 섹스 영화산업에서 일했던 몇 안 되는 여성 영화감독 중 한 명인 위시먼의 반항적이며 대담하고 급진적인 천재성을 소개한다.
_마거릿 리(뉴스쿨 미디어학과 교수, 시인)
매혹적인 인물에 대한 연구를 넘어, 영화사와 더 넓게는 문화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독창적 시각을 제공한다. 위시먼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이들, 혹은 저급 문화(lowbrow culture)에 관심이 없다고 여기는 이들조차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_마크 얀코비치(이스트앵글리아대 명예교수)
섹스플로이테이션의 여왕,
페미니즘 영화사의 숨겨진 주인공을 다시 읽다
도리스 위시먼은 세계 최초의 여성 성인 영화감독이다. 그녀는 포르노 영화가 성행하기 이전 ‘누디 큐티스(nudie cuties)’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던 나체 영화들로 시작해서 섹스플로이테이션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하드 코어 영화들, 그리고 퀴어 다큐멘터리와 에로틱 호러까지 다양한 성인 영화들, 혹은 (현 시대의 평가로는) C급 영화들을 연출, 제작했다. 동시에 위시먼 감독은 영화사상 가장 많은 편수의 영화를 만든 여성 감독이기도 했다. 위시먼 감독은 활동을 시작한 1960년대부터 사망한 2000년대까지 총 31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도리스 위시먼 감독은 그녀의 활동기 이후로 하버드대학, MOMA를 포함한 명문대학교와 세계를 대표하는 예술 관련 기관에서 재평가를 받고 있는 유일무이한 섹스플로이테이션 감독이다. 그렇다면 왜, ‘미천한 산업’ 출신의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그녀가 이토록 과분한 주목을 받고 있는가. 이 책 『도리스 위시먼의 영화들』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이 책은 착취와 언더그라운드 분야의 주목할 만한 공백을 메울 뿐만 아니라 착취와 주류 영화와의 관계에 대한 더 큰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독립 제작에 뛰어든 여성들에게 열려 있는 길(지위 고하를 막론하고)과 미국 독립영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종종 간과되는 여성들의 역할에 대해 탐구한다.” _조앤 호킨스, 「서문」에서
결정적 순간에 섹스신은 사라지고,
관객의 음탕한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도리스 위시먼의 영화들』에서 조명하고 있는 위시먼의 경향 중 하나로 위시먼의 ‘섹스 영화’에는 섹스가 없다는 것이다. 섹스의 부재는 이 책에 참여한 학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는 이슈 중 하나이다. 예컨대 위시먼의 대표작 〈더블 에이전트 73〉에서 여성 스파이, ‘제인’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무려 73인치!) 맨 가슴을 드러내고 포획을 위해 범인들을 유혹한 후 침대로 끌어들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서 섹스신은 생략되고, 기대할만한 에로티시즘은 공중으로 분해된다. 위시먼의 모든 영화에서 에로틱한 시퀀스가 등장할 만한 분위기에서는 반드시 의자 다리, 화분 등 전혀 상관없는 오브제들이 마치 정물화처럼 등장해서 관객들의 음탕한 기대를 산산히 부숴 놓는 식이다.
이러한 수법은 여성의 신체를 전시하는 방식에서도 비슷하게 발견된다. 위시먼의 영화에서 여성의 누드는 더 나은 시각화를 위해 파편화되거나 신화화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영화들에 등장하는 여배우, 혹은 여성 캐릭터의 몸은 그저 평범한 (다소 풍만한) 몸집에 주름이 적당히 있는 일상의 육체일 뿐인 것이다. 이처럼 여성 누드의 대상화와 관음주의를 타파하는 방식의 (여성) 육체, 혹은 섹스의 재현 방식은 위시먼의 영화들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경향이다. 이는 동시에 섹스플로이테이션의 공식과 남성 시선의 (성인 영화) 제작 방식을 완전히 전복하는 그녀만의 고집스러운 전통이기도 했다.
위시먼의 카메라는 언제나 여성의 자리를 되찾고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위시먼은 어쩌면 가장 역설적인, 즉 영화사에서 가장 남성중심적인 (창작자로서나 수용자로서) 섹스플로이테이션 산업에서 가장 여성주의적인 성인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참여 학자들은 척박한 땅, 섹스플로이테이션에서 그저 생존했던 여성 감독, 도리스 위시먼에서 나아가 그녀의 영화들이 어떤 방식과 기술적인 속임수로 여성 착취의 전통을 전복했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재평가를 시도하고 있다.
기괴한 성적 재현으로 도출하는 전복적 에너지
위시먼 감독의 다각적인 탐구서를 한국어로 읽다
이 엄청나고 도발적인 책 『도리스 위시먼의 영화들』은 어쩌면 앞서 공개된 서양의 독자들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여성 육체에 대한 농담과 공격이 난무하면서도 성적 보수성을 고집하는 역설의 문화, 그곳이 바로 현재의 한국이다. 이 책은 한 여성 감독의 괴상한, 그러나 심오한 성인 영화들을 소개하고 분석함으로써 인간의 육체와 섹스를 미디어가 다루는 방식의 역사, 그리고 그것에 대한 비판과 그에 맞선 동시대 여성들의 전복적인 시도 (도리스 위시먼, 스테파니 로스맨, 캐롤리 슈니만 등)를 설파한다.
원서의 저자 중 한 명이자, 번역가 몰리 김
이 책의 번역은 원서의 저자로도 참여했던 영화평론가 김효정(Molly Kim) 박사가 맡았다. 그녀는 한국의 호스티스 영화와 1970년대 검열법을 분석한 박사논문으로 시작해서, 첫 저서 『야한영화의 정치학』을 포함한 다수의 국·영문 학술서와 저서에서 영화의 성적 재현과 여성의 육체,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사회, 문화적 역학을 분석하는 글을 발표했다. 이번 번역서, 『도리스 위시먼의 영화들』은 아마도 그녀가 이제껏 발표했던 수많은 글 중에서 가장 파격적이면서도 흥미로운 프로젝트로 남을 것이다. 동시에 이 책을 손에 든 한국의 독자에게도 도리스 위시먼의 작품세계가 담고 있는 기괴한 성적 재현과 그것이 도출하는 전복적 에너지는 결코 적지 않은 여운을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