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그곳의 가장 경이로운 신비는 그 모든 질문에 무조건 답변을 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
못 말리는 국어사랑단의 애환과 열정, 광기에 답하는 사람들
‘맞춤법 빌런’이란 말이 흔히 사용되듯, 한국 사회는 맞춤법에 민감하다. 표기 하나 틀리는 것이 줄곧 교양의 결함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일까, 국어 관련 궁금증을 즉각 질문할 수 있는 창구에 대한 요구도 크다. 국립국어원이 카카오톡, 전화, 온라인 게시판 등 통신 수단마다 국어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 책은 국립국어원 국어상담실 10년 차 베테랑 상담 연구원이 국어를 상담하고, 토론하고, 연구한 기록이다. 울고 웃는 노동기이자, 시대에 따른 언어의 변화를 드러내는 언어문화기술지이자, 너무나도 헷갈리는 한국어 지식을 덤으로 챙기게 하는 책이다. 질문과 답변으로 언어의 정확성은 어디까지 추구될 수 있을까? 정확한 말을 정확히 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말들이 필요할까? 어떤 때는 띄어쓰기 하나에도 예송논쟁을 방불케 하는 날카로운 토론이 따르지만, 또 어떤 때는 대중의 실제 쓰임과 함께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것이 언어임을 돌아보면서, 누군가는 절대화하고 또 누군가는 저항하는 규범과 규칙의 의미 또한 짚어 본다.
■ 추천의 글
나는 교정공이다. 책이 인쇄되기 전 교정·교열·윤문을 보는 것이 내 일이다. 가끔 동종업계 친구들과 국립국어원 욕을 한다. 한국어는 왜 이 모양 이 꼴이지? 국립국어원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럼에도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창을 띄워 놓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은 국립국어원 사이트가 먹통이 되기도 한다. 접속 폭주? 한국어 월드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힘내 국립국어원! 나와 같은 이들에게 국립국어원은 최후의 보루이자 최전선의 망루다. 가시처럼 알쏭달쏭한 한 글자 한 칸 앞에서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답을 구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마지막으로 국립국어원의 온라인가나다 게시판을 찾는 수밖에 없다. 그곳에서는 매일매일 새로운 대격돌이 펼쳐지는 중이다. 이게 맞나요? 저게 맞나요? 잘못하면 멍하니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니 조심해야 한다. 뭐가 옳고 그른지 반드시 결론을 내야만 하는 사람들의, 애환과 열정과 광기가 뒤섞여 일렁이고 있다. 영원히 반복되는 똑같은 물음들, 규범의 빈틈을 파고드는 절묘한 지적들, 언문의 신기원을 꿈꾸는 뇌 내 연구들… 그곳의 가장 경이로운 신비는 그 모든 질문에 무조건 답변을 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항상 그들이 궁금했다. 대체 어떤 이들일까? 그들을 보호해 줘야 하는 게 아닐까? 마침맞게 도착한 이 책은 선생님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손으로 쓰였다. 오늘날은 인터넷을 통해 거의 누구나 뭔가를 쓸 수 있는 시대이고, 뭔가를 써서 보이기 전에 누군가의 검사를 맡아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이런 때에 스스로 서로 정확해지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선생이고 해방이다. 물론 그것은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한국어라는 폭풍 속에서 함께 허우적대는 믿음직한 동료들을 확인해 보자.
유리관_출판노동자, 《교정의 요정》 《사명을 찾아서》 저자
우리는 늘 말을 한다. 깨어 있을 때는 물론이고 어떤 때는 꿈속에서도 말을 한다. 조용히 있는 적이 더 많을 것 같다고? 천만에. 입 다물고 조용히 있다고 머릿속도 조용하던가? 그렇지 않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떠돈다. 그리고 그런 생각 하나하나가 다 말이다. 말이 없으면 생각도 없다. 우리의 삶은 곧 말의 삶이다. 우리의 삶이 서로 어우러져야 하듯이 우리의 말도 서로 어우러져야 한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인 식이면 삶이든 말이든 뒤엉켜서 서로 삐걱댈 뿐 어우러지지 못한다. 여기서 삶들이 어우러지는 방법이 모색되고, 마찬가지로 말들이 어우러지는 방법이 모색된다. 말과 말이 어우러져서 소통의 즐거움과 보람으로 충만한 삶이 되려면 최소한의 약속과 예절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법(화법), 쓰는 법(맞춤법) 등이 나타나게 되고, 우리는 이런 것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말하는 법과 쓰는 법의 실상은 어떠한가? 언제 어디서 말하는 법과 쓰는 법의 곤란을 겪게 되는가? 그러한 곤란은 어떻게 넘길 수 있는가? 이런 것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일독할 것을 권한다. 이 책에 담긴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말하는 법과 쓰는 법에 대한 생각이 한층 고양될 것이다.
이정훈_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책 속에서
국립국어원에서 일하는 나는 “선생님은 정말 맞춤법 천재세요”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러나 천재라기에는 여전히 사전을 끼고 산다. 하루 평균 70~80건의 질문에 답하고 다른 사람의 답변까지 검토하는 일을 반복하며 자연스레 사전을 가까이하는 습관이 생겼다. 모든 규정을 머릿속에 다 외워 두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어사전의 양은 방대하고, 새로 생기는 단어가 늘어나는 만큼 사전의 세계는 계속 움직이기 때문이다. 내 일은 결국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내는 기술’에 가깝다. 정답을 모르기에 더 겸손해지는 직업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맞춤법에 이토록 예민할까. 나는 그 이유를 ‘불안’에서 찾는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시대의 소통은 얼굴 없이 글로 먼저 이루어진다. 우리는 상대를 보지 못한 채 상대의 문장을 먼저 본다. 문장이 곧 그 사람이며, 맞춤법은 그 사람의 기본값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글자 하나가 삐끗하면 그 삐끗함 너머로 사람 자체가 흐릿해 보인다. 물론 실제로는 전혀 다른 사람일 수 있지만, 글이 먼저 이미지를 만든다.
“‘로서’와 ‘로써’는 어떻게 구분하나요?”
이런 질문이 오면 나는 잠시 숨을 고른다. 익숙한 질문일수록 더 조심하게 된다. 머릿속에서 짧게 답변의 구조를 정리하고, 간결하면서도 ‘놓치는 부분이 없는’ 문장을 작성할 때까지 몇 초 정도 시간이 흐른다. 한 사람당 하루 평균 60~100건 정도의 질문을 처리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언뜻 같은 질문인 것처럼 보여도 질문마다 표현 방식과 의도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질문의 의도가 파악되면 그에 맞추어 답변 방향도 달라진다.
언젠가 우리는 서로를 ‘칸트의 후예’라고 부르며 웃은 적이 있다. 정확한 시각에 맞춰 움직이고 정확성을 요하는 일을 하는, 약속을 칼같이 지키는 사람들.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우리의 하루를 설명하는 데 그만큼 적확한 표현도 드물 것이다.
국립국어원의 전신인 국립국어연구원은 1991년 1월에 개원하고, 1991년 2월에 전화를 통해 국어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나다전화’를 개설했다. 국립국어원 국어상담실 상담 업무는 무려 35년간 이어져 온 장기 사업인 셈이다. 현재 시점에서는 웹을 통해 국어 상담을 하는 창구인 ‘온라인가나다’와 ‘가나다전화’, 카카오톡 메신저를 통해 국어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리말365’를 모두 운영하고 있다. 한 해 동안 이 세 창구를 통해 이뤄지는 상담 건수는 20만 건에 육박한다. 그만큼 정말 많은 유사한 질문들이 반복되지만, 근래 들어 특히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이거 에이아이(AI)인가요?”
연찬회 이전에도 의견 대립이 팽팽한 사안이었다. 기존의 답변 방향을 고수하는 ‘늘이다’ 쪽의 근거는 이러했다. ‘늘리다’란 어휘는 보편적으로 ‘면적’이나 ‘범위’와 주로 사용하는데, ‘거리’라는 개념은 면적이나 범위로 볼 수 없기에(그 근거로 거리에는 넓이나 부피를 이르는 단위 대신 미터, 킬로미터 등의 단위를 쓴다) ‘늘이다’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리’는 ‘두 개의 물건이나 장소 따위가 공간적으로 떨어진 길이’를 뜻하고, ‘길이’는 보통 ‘늘이다’와 잘 호응하기 때문이다.
반면, ‘늘리다’ 쪽의 주장은 이러했다. 보통 ‘늘이다’란 표현은 고무줄이나 실처럼 원래의 형태가 변하면서 길이가 길어질 때 쓴다. 그런데 ‘거리’는 본디 있는 것을 잡아당기거나 덧붙여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동한 양이나 범위가 커지는 개념이기 때문에 ‘늘이다’보다는 ‘늘리다’로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국립국어원 국어상담실에 전화를 거는 직업군은 공무원, 언론인, 출판인, 법조계 종사자, 교육계 종사자 등 다양하다. 그 다양한 직업군 중에서 유독 자주 전화를 거는 직업군을 꼽자면 학교와 학원의 국어 선생님들이다. 학기 중에는 시험 문제와 관련해 교과서와 평가 문항을 점검하느라 그런지 선생님들의 확인 문의가 늘어난다. 교사들의 성실함과 직업의 무게가 수화기 너머에서도 느껴질 때가 많다. 수화기 너머로 “나는 교사입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분들의 목소리에는 조심스러움, 책임감 그리고 이왕이면 확실하게 알고 가고 싶다는 절박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그 마음이 전해진달까.
국어상담실에서 일하다 보면, 누군가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호칭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감정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어, 사람들을 자주 건드리기 때문이다. 이날의 전화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여보세요, 질문이 있는데요. 제가 올해부터 배드민턴을 배우고 있어요. 근데 배드민턴 선생님이 제 이름을 알고 나서 자꾸 ‘○○ 씨’라고 부르는데… 선생님은 잘해야 서른 정도이고 저는 오십이 넘었어요. 이게 맞는 거예요?”
얼마 전 동료들과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을 일이 있었다. 메뉴판을 펼치자 자연스럽게 이런 대화가 오갔다.
“선생님은 자장면 드실래요?”
“저는 짜장면 곱빼기요.”
“어, 나도 짜장면.”
국립국어원 사람들조차 절반은 ‘자장면’을 고수하고, 절반은 ‘짜장면’을 즐긴다. 표준어 등재 결정이 사람들의 취향까지 바꿔 놓지는 못한다. 언어는 규범 이전에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짜장면’을 좋아한다. 검은 소스가 면발에 달라붙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그 찰진 느낌이 좋고, 볶은 양파의 단맛 섞인 향이 느껴지는 듯해서 좋다. 하지만 누군가 “자장면 먹을래?” 하고 물을 때면, 그 말에서는 정갈하게 차려진 한 그릇이 떠올라 흐뭇해진다. 그런 ‘자장면’도 대접받는 것 같아 좋다.
자리로 돌아온 뒤에도 ‘때 시(時)’와 ‘시장 시(市)’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곱씹었다. 물건의 가격은 ‘때’에 따라 변하고, ‘시장’에 따라 변한다. 장날이 서는 때에만 가격이 형성되는 어느 작은 시골 장터를 떠올렸다. 5일마다 열리는 장터에서 강아지들이 꼬물거리고, 채소 상자들이 햇빛을 머금고 있다. 그곳에서 매겨지는 가격은 분명 ‘때 시(時)’이면서 동시에 ‘시장 시(市)’였다. 장터라는 공간, 그리고 장날이라는 시간이 겹쳐 비로소 가격이라는 것이 생긴다. 그렇다면 킹크랩의 ‘시가’는 무엇일까?
우리 국어상담실에는 ‘연찬회 슈퍼스타’가 있다. 연찬회에서 한 번 등장하고 끝나는 안건이 아닌, 최소 세 번 이상 회의 테이블에 다시 올라오는 일종의 복병같은 안건을 뜻한다. 언어 규범이라는 것이 늘 정확한 답만 존재하는 세계라면 한 가지 표현을 두고 이렇게까지 오래 고민할 일이 없겠지만, 언어는 늘 살아 있고 사람들의 언어 생활은 규범이 변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인다. 그래서 우리는 해마다 비슷한 안건을 두고도 다시 한번 생각하고, 다시 한번 결정하고, 이미 결정된 사항조차 ‘다시 한번’ 검토한다.
그 가운데 가장 ‘징글징글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논쟁을 이어 온 주제가 있다. 무려 5년 동안 총 세 차례나 연찬회 안건으로 올라온, ‘다시 한번’의 띄어쓰기가 그 주인공이다.
상담 시간이 되면 전화 상담과 카카오톡 ‘우리말365’ 상담으로 모두 바쁘다. 그런데 이 중요한 시간에 생리적 신호가 올 때가 있다. 문제는 그렇다 한들 수화기 너머 질문자에게 “죄송한데 저 화장실을 가야 할 것 같아요”라고 양해를 구하거나, 우리말365 답변창에 “잠시 화장실 다녀올게요”라고 메시지를 남기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불의의 상황을 대비해 보통 업무 시작 전에 화장실도 미리 다녀오고 물도 잘 마시지 않는다. 업무 중에 신호가 오더라도 대부분 참게 된다. 업무 전화를 받다가 급하다며 동료에게 넘길 수도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동료들과 회사 앞 중화요릿집에 가서 밥을 먹는데, 내가 시킨 잡채덮밥이 훌륭했다. 딱 알맞게 탄력적인 당면이며, 짭조름한 간, 아삭한 야채들의 익음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너무 맛있다’라고만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개맛있다’고 표현해야 그 잡채덮밥이 얼마나 나를 화나게 할 만큼 맛있는지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아 “잡채덮밥 개맛있네요”라고 했다. 다소 격정적인 표현에 다른 음식을 먹던 동료들도 호기심을 보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맛있다’고 표현된 음식은 다른 누군가가 당장 먹어 볼 필요까진 없다. 그러나 ‘개맛있다’고 표현된 음식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 맛을 보게 만드는 파급력이 있다.
“얘는 착해서 거짓말 못 해.”
이때의 ‘못 해’는 능력 부족으로 보는 게 맞을까? 거짓말하는 것을 능력으로 볼지 말지는 ‘거짓말’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볼 때는 이 문장에서 쓰인 ‘못 해’는 ‘거짓말을 안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 경우에는 ‘하다’의 부정문으로 보아 ‘못 해’로 띄어 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에 하나, 누군가 옆에서 거짓말을 해 보라며 돈을 주고, 지금이야말로 거짓말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부추겨도 마음이 바르고 성정이 올발라 거짓말을 할 ‘능력’이나 ‘수준’이 부족한 사람도 있다고 해 보자. 그러면 ‘못하다’라는 한 단어가 쓰이는 것이 맞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못해’로 붙여 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