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에 가린 또다른 걸작 『로마사 논고』
미술관 산책하듯 175개 명화와 에피소드로 만난다
지난 2023년 국내 최초로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를 번역해 선보인 하인후 작가가, 이번에는 『로마사 논고 – 고전 명화로 보는 175장면』과 『군주론』을 동시에 내놓았다. 『피렌체사』처럼 800페이지 내외의 ‘벽돌책’인 『로마사 논고(Discorsi sopra la prima deca di Tito Livio)』 완역판에 앞서, 독자들이 전반적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내놓은 ‘화보판’인 셈이다. 작가는 “언감생심 『로마사 논고』의 정수精髓를 담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로마사 논고』나 마키아벨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며, “『로마사 논고』를 만나기에 앞서, 미술관에 놀러 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또 재밌게 읽어주시면 더없이 기쁠 것”이라고 밝혔다.
마키아벨리가 1517년 발표한 『로마사 논고』는 BC 27~9년 로마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 건국사』(총 140권)에 자신만의 해설을 더해 정리한 책이다. 고대 로마 역사를 바탕으로 하지만, 마키아벨리가 활동하던 중세 유럽의 정치이론을 정리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마키아벨리는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피렌체 공화국의 최고행정기구 시뇨리아를 보좌하는 제2서기국 국장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재임 기간 프랑스·로마냐·로마·신성로마제국 등지로 파견돼 외교사절로서 활약하고, ‘9인의 군사 위원회Nove di Milizia’의 수장으로서 피렌체 시민군을 조직해 프랑스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침공 때 독립한 피사를 재복속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15년 남짓의 화려한 공직 생활 이후로는 메디치 가문의 피렌체 복귀와 함께 쫓겨나 두 번 다시 공직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렇게 절치부심하며 메디치 가문의 신뢰를 사기 위해 써 내려간 책이 『군주론』이고, 바로 이 『로마사 논고』다. 결국 그에게 복귀의 희망을 가져다준 것은 마지막 역작 『피렌체사』였지만, 이번에는 메디치 가문의 축출로 기회를 잃고 쓸쓸히 세상을 떠나고 만다. 『로마사 논고』은 그러한 그의 간절한 노력이 담긴 대표작이다.
『로마사 논고』는 리비우스의 저작 가운데 15세기에 발견된 제1권부터 제10권까지 수록된 고대 로마 공화정의 사례를 참조해 논의를 전개한다. 마키아벨리는 전통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구분법을 따라 정치체제를 크게 군주정, 귀족정, 민중정, 참주정, 과두정寡頭政, 중우정衆愚政의 여섯 가지로 나누고, 각각의 정치체제의 장단점을 지적한다. 로마 공화정을 모범사례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정치체제가 바람직한 것인지, 공화정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며 현실주의 정치사상을 전개한다. 『군주론』의 명성에 가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저작이지만, 근대 공화국 형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저서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하인후 작가는 『로마사 논고』를 전체 3권, 175개 장으로 정리해 핵심 문구를 인용하고,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을 주제로 한 고전 명화를 골라 해석을 더한다. 어렵고 무겁게만 느껴지기 쉬운 역사적 사건과 해석에, 그 자체로도 훌륭한 명화를 배치해 감동을 더한다.
이를테면 1권 17장 <타락한 사람들은 자유를 유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에서는 이작 월라븐의 작품 <전투 중 가슴에 창을 맞고 죽어가는 에파미논다스>를 매칭한다. 마키아벨리가 책 속에서 카이사르 이후 타락한 로마의 참담함이 사실 그보다 앞선 에파미논다스 장군 사후의 테베를 반복한 것이라고 질타하는 부분이다.
또 2부 16장 <오늘날의 군제制는 고대의 군제와 얼마나 많이 다른가?>에는 알렉상드르 로맹 호네의 <군율을 어기고 싸운 아들을 참수하라고 명령하는 토르쿠아투스>를, 3권 17장 <상처를 준 사람에게 중요한 직책을 맡겨서는 안 된다>에는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의 <하스드루발의 잘린 머리를 보고 경악하는 한니발>을 배치했다.
시대가 지나도 인간의 본성은 크게 변하지 않고, 그들이 만들어낸 체제와 집단 역시 비슷한 오류와 성공을 반복한다. 같은 맥락에서 마키아벨리는 서문을 통해 “역사가 들려주는 다양한 사건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을 넘어 역사를 읽고 배우는 진짜 목적, 다시 말해 공화국을 세우고, 나라를 유지하고, 왕국을 통치하고, 군대를 조직하고, 전쟁을 벌이고, 법을 집행하고, 제국을 확장한 고대인의 고귀한 행동을 본받고 따라 하는 일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현대인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2000여 년 전 리비우스의 『로마사』에서, 500여 년 전 『로마사 논고』에서 우리가 무엇을 읽어낼지는 또한 우리의 몫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