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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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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 스튜어트 밀 저자
고전파 출판
소장
전자책 정가
16,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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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00원
소장
출간 정보
  • 2026.10.29 전자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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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 EPUB
  • 약 6.7만 자
  • 0.3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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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PER
ISBN
9791123021607
UCI
-
공리주의

작품 정보

옳고 그름의 기준은 행복이라고 주장한 밀이 공리주의에 대한 오해를 풀고 그 원리를 변호한 윤리학의 고전.

1861년에 잡지 연재로 처음 나온 이 책은 도덕의 토대를 원리 하나 위에 세우려고 쓰였습니다. 행위는 행복을 늘리는 경향에 비례하여 옳고, 그 반대를 낳는 경향에 비례하여 그르다는 최대 행복 원리입니다. 밀은 둘째 부에서 이것을 밝히고, 나머지 대부분을 이 원리에 쏟아진 반론에 답하는 데 씁니다.

그가 맞선 비난 가운데 하나는 돼지에게나 어울리는 학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밀은 쾌락에도 질이 있다고 답합니다.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문장이 여기서 나옵니다.

그가 말하는 행복은 행위자 한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정도가 같다고 상정된 한 사람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 정확히 같은 만큼으로 셈해져야 한다고 그는 씁니다. 다섯째 부에서는 이 이론의 가장 큰 걸림돌인 정의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정의의 감정이 왜 그토록 절대적으로 느껴지는지 따져 묻고, 그것이 공리와 어긋나지 않는다는 데까지 논증을 밀고 갑니다.

무엇이 옳은지를 계산으로 가리려는 발상은 오늘 정책과 기계의 판단에까지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 책은 그 발상의 원형을 가장 강한 모습으로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발상이 받을 법한 반론을 밀 스스로 하나하나 불러내 답합니다.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 논쟁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이 도서는 퍼블릭 도메인 원문을 바탕으로 생성형 인공지능을 번역·편집·검수 과정에 활용하여 제작했습니다.

작가 소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이며 정치 사상가입니다. 1806년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제임스 밀은 《영국령 인도사》를 쓴 역사가였습니다. 그는 제러미 벤담의 가까운 벗이자 공리주의를 앞장서 퍼뜨린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손수 가르쳤습니다. 밀은 세 살에 그리스어를, 여덟 살에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열두 살 무렵에는 논리학을, 열세 살에는 정치경제학을 익혔습니다. 열다섯 살 무렵 벤담의 저작을 제대로 읽고 나서, 그는 평생의 목적을 얻었다고 느꼈습니다. 세상을 고쳐 나가는 일이었습니다. 1822년 겨울, 열여섯 살의 그는 뜻이 맞는 젊은이 몇과 작은 모임을 꾸려 '공리주의자 협회'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 책 둘째 부의 지은이의 주에서 '공리주의자'라는 낱말을 처음 쓰기 시작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이 일을 두고 한 말입니다.

1823년, 열일곱 살에 그는 아버지가 일하던 동인도회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1858년 회사가 해산될 때까지 서른다섯 해를 그곳에서 일했습니다. 그가 남긴 저술은 대부분 이 직장에 다니면서 쓴 것입니다.

스무 살이던 1826년 가을, 그는 깊은 우울에 빠졌습니다. 자기가 바라 온 개혁이 모두 이루어진다 해도 조금도 행복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뒷날, 분석하는 습관만 길러진 탓에 감정이 말라 버렸다고 돌아보았습니다. 이 어둠에서 그를 건져 낸 것 가운데 하나는 워즈워스의 시였습니다. 이 위기를 지나며 그는 벤담의 체계에 모자란 것이 있다고 보게 됩니다. 감정을 가꾸는 일, 그리고 사람의 내면을 기르는 일입니다. 그는 콜리지와 칼라일처럼 공리주의 바깥에 선 사상가들에게서도 배우려 했습니다. 1838년과 1840년에는 벤담과 콜리지를 하나씩 다룬 두 편의 긴 평론을 써서 양쪽을 나란히 저울질했습니다.

1830년 그는 해리엇 테일러를 만났습니다. 그녀에게는 남편이 있었고, 두 사람의 오랜 교류는 세간의 입길에 올랐습니다. 그녀가 남편을 여읜 뒤 1851년 두 사람은 결혼했습니다. 그사이 그는 1843년 《논리학 체계》와 1848년 《정치경제학 원리》로 당대의 손꼽히는 사상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공리주의》의 원고는 대부분 해리엇과 함께 살던 마지막 몇 해에 쓰였습니다. 1858년 해리엇이 아비뇽에서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 그는 《자유론》을 냈습니다. 그다음 그는 결혼 생활 마지막 몇 해에 써 두고 발표하지 않은 원고를 꺼냈습니다. 《자서전》에 따르면 거기에 몇 가지를 보태 다듬은 것이 이 작은 책입니다. 이 책은 1861년 《프레이저스 매거진》에 세 차례 나뉘어 실렸고, 1863년 단행본으로 나왔습니다. 《대의 정부론》도 1861년에 나왔습니다.

이 책에서 밀은 아버지와 벤담에게서 물려받은 학설을 그 비판자들에게서 지켜 냅니다. 그러나 그대로 지키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쾌락에 양뿐 아니라 질이 있다는 둘째 부의 논증이 그렇습니다. 만족한 바보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도 그렇습니다. 이것들은 스무 살의 위기를 지난 사람이 벤담의 계산에 덧붙인 것입니다. 셋째 부에서 도덕의 구속력을 양심과 사회적 감정에서 찾는 대목에도 같은 흔적이 있습니다. 그는 한 사람의 내면이 어떻게 길러지는가를 물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 책을 낸 뒤에도 손보았습니다. 다섯째 부 끝 지은이의 주에 허버트 스펜서의 편지에 답한 대목이 덧붙은 것도 뒤의 판에서입니다.

1865년 그는 웨스트민스터에서 하원의원으로 뽑혀 세 해 동안 일했습니다. 1867년에는 선거법 개정안에서 '남자'를 '사람'으로 바꾸자는 수정안을 냈습니다. 여성 참정권이 의회에서 처음으로 표결에 부쳐진 일이었습니다. 1869년에는 《여성의 종속》을 냈습니다. 만년의 그는 아내가 묻힌 아비뇽에 집을 두고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1873년 오월 아비뇽에서 세상을 떠나 아내 곁에 묻혔습니다. 같은 해 그의 《자서전》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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