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만이 쓸 수 있는, 쇼를 꼭 빼닮은 글
2016년 가수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을 당시 대중가수가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는 받는 것을 두고 각종 논란이 일었다. 찬사와 우려가 뒤섞인 속에서 그는 조용히 어떤 역사적 기록의 두 번째 주인공이 되었는데, 그 기록이란 ‘노벨상과 아카데미상을 동시에 거머쥔 인물’이라는 타이틀이었다. 그리고 밥 딜런에 앞서 각각 1925년과 1939년에 《성녀 조앤Saint Joan》과 《피그말리온Pygmalion》으로 노벨 문학상과 아카데미 각색상을 모두 받은 첫 번째 인물이 있었다. 바로 조지 버나드 쇼였다.
위의 작품들을 포함해 《무기와 인간Arms and the Man》, 《인간과 초인Man and Superman》 등의 극작품으로 잘 알려진 버나드 쇼는 그만의 블랙 유머와 촌철살인의 입담으로도 유명하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다른 하나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등 그가 남긴 글들 속에는 인생을 꿰뚫는 날카로운 시선과 풍자가 녹아 있다.
빈한했던 가정 형편 탓에 그가 받은 교육이라곤 초등학교 교육이 전부였지만, 버나드 쇼는 왕성한 호기심으로 문학 외에도 음악, 미술 등 다방면에 관심을 보이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나갔다. 특히 음악은 아마추어 프리마 돈나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접하고 친숙한 분야였다. 그는 “어머니께서 〈위그노 교도〉 제1막의 시동侍童의 노래를 부르시는 걸 듣고 앙코르를 연호하던 어린 시절부터 이미 떡잎이 보였지만 음악은 줄곧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아일랜드 더블린 태생인 버나드 쇼는 젊은 시절 극작가로 성공하기 위하여 런던으로 이주해 글쓰기에 전념했고, 각종 매체에 문학, 연극뿐 아니라 음악에 대한 평론글을 써내려갔다. 그의 말마따나 “악보를 읽는 법도, 그 어떤 악기로 음표 하나 소리 내는 법도 모르”던 쇼는 순전히 음악에 대한 열정과 노력만으로 음악 평론가가 되었으며, 그렇기에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도 능히 읽을 수 있는 음악 평론”을 쓰고자 했다. 《쇼, 음악을 말하다》에 담긴 글들은 이렇듯 쇼만이 쓸 수 있는, 쇼를 닮은 글이라 할 수 있다.
가장 활발했고 가장 논쟁적이었던 평론가
평론가의 역할은 예술가를 꾸짖고 또 꾸짖는 일
“내 평론 글에 담긴 개인적 감정을 지적하며 마치 내가 경범죄라도 저지른 인사인 양 목소리를 높인 독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개인적 감정을 배제하고 쓴 평론은 읽을 가치가 없는 평론이라는 점을. 좋은 예술 혹은 나쁜 예술을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만드는 능력, 바로 그것이 평론가에게 요구되는 자질이다. (…) 최선을 다하지 않는 예술가를 보면, 게다가 그나마도 ‘나 스스로만 만족하면 그만이지’ 하는 식으로 서툴게 해버리고 마는 예술가를 보면, 나는 그가 밉다. 그를 혐오하고 증오한다. 그의 사지를 토막 내어서 무대 위에다 흩뿌려 던지고 싶다. 오페라를 보러 가서는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 초병의 마티니 소총과 탄약 몇 발을 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지휘자나 자만심에 우쭐대며 실수를 남발하는 가수를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제거하고 싶은 욕망이 든다.” _ p.74-75(‘개인적 원한’ 중)
버나드 쇼는 약 13년간 신문과 잡지의 비평란을 담당하며 수많은 글을 남겼다. 출간된 음악 평론집만 해도 장장 2,7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이 책 《쇼, 음악을 말하다》는 그 가운데서 오늘날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을 만한 글들을 뽑아 엮은 것이다. 쇼의 나이 서른 초반이던 1880년대 후반에서 1890년대 초반에 걸쳐 약 6년간 〈스타The Star〉와 〈월드The World〉지를 통해 선보인 음악 평론이 그 가운데서도 정수로 꼽히는데, 이 책에 수록된 글들 대부분이 바로 그 시기에 쓰인 것들이다.
런던에서 가장 활발하면서 동시에 가장 논쟁적이기도 했던 쇼는 책의 서두에서 자신이 음악 평론가로 활동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며 “나의 평론문은 당시의 지배적인 음악 평론 방식과는 조금도 닮은 구석이 없어 아마 다른 언론인들은 이 모든 게 한바탕 농담은 아닐까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음악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전문적인 교육 과정을 밟지 않았다 뿐이지(그럼으로써 쇼는 연주자가 될 운명을 모면하는 천운을 타고났다고 농을 친다), 그는 건반 그림이 그려진 책을 가지고 피아노 연주법을 독학하고, 전공자들이 보는 교과서를 공부하고, 모차르트가 쓴 《통주저음 개론》을 읽고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지만 덕분에 다른 위대한 작곡가들보다 음악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긴 했다며 여유를 부린다. 그런 이유로 쇼의 글은 이론적인 차원에 집착하지 않는다. 평론가들이 으레 쓰기 마련인 “학술적이기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쳐 읽기조차 힘들고 종종 앞뒤도 맞지 않는 글”쓰기 역시 지양함으로써 독자 곁으로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간다.
버나드 쇼는 모차르트와 바그너 음악을 높이 샀다. 예술에서의 가장 큰 성공은 본인이 속한 혈통의 시원始原이 아니라 마감자가 되는 것이라며, “100년의 시간이 다시 흘러 1991년이 오면 바그너가 20세기 악파의 시작이 아니라 19세기의 끝이자 베토벤 악파의 종결자였음을 온 세상이 이해하게 될 것”이며 이는 “모차르트의 가장 완벽한 음악이 19세기의 시언始言이 아니라 18세기의 종언終言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훌륭한 음악에 붙는 연주가 형편없을 경우 거침없이 독설을 날리기도 한다. 어느 날 영국의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된 〈라인의 황금〉 연주를 듣고는 “부디 더 이상 나빠지지만 말라고 내가 빌 정도로 형편없었다. 넘실거리는 강물을 표현해야 할 전주곡을 듣고는 마치 라인강이 끈끈한 시럽—그것도 여기저기 덩어리진 시럽—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쓴다.
대체로 평론가들은 특정한 작품을 비평할 때 최대한 개인적인 감정은 배제한 채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애쓴다. 작품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경우 ‘개인적인 원한’ 같은 것은 없다며 애써 부연하기도 한다. 뛰어난 식견을 가진 전문가라 해도 예술가가 공들인 결과물을 평가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쇼는 당당히 ‘개인적 원한’ 때문에 혹평한다고 이야기한다. 양심적인 평론가라면 예술가의 죄과에 상응하는 ‘박해’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예술가를 꾸짖고 또 꾸짖어 개전의 노력을 보이도록 이끄는 것이 본인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작곡가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공연에 대한 평가는 어떠할까. 헨델 사후 꾸준히 이어지던 헨델 페스티벌의 〈메시아〉 공연은 보통 천 명에 달하는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무대를 꾸리는 것이 마치 유행과도 같았다. 하지만 쇼는 이와 같은 대규모 공연이 템포나 표현 면에서 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하며 이를 ‘폭력 행위’로 규정한다. 심지어 천 명의 아마추어 예술가를 “천 개의 목구멍”으로 표현하기까지 한다. 이렇게까지 거칠어지는 이유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오라토리오가 〈메시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쇼가 생각하는 적정 인원은? 딱 스무 명이다.
국내 첫 소개, 유머와 위트 넘치는 쇼의 음악 평론
평생에 걸쳐 수많은 글을 쓰며 인상적인 문장들을 남긴 쇼의 재능은 음악 평론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책에는 “천박한 표현이었더라도 여러분을 웃게 하였다면 개의치 않으려 한다. 천박함은 문필가가 필히 가져야 할 가질 가운데 하나다”, “평론가는 시계를 멈추는 존재다. (…) 평론가는 돌로 만든 벽에 자신의 머리를 던져 짓찧는 존재다”, “단 한 차례의 끔찍한 공연에도 발끈하여 예술가의 개인적 원수가 되는 사람이 진정한 평론가요, 훌륭한 공연을 여러 차례 접하고서야 그 화를 누그러뜨리는 사람이 또한 진정한 평론가다” “훌륭한 유머만큼 진지한 것은 달리 없다”처럼 거듭 되뇌게 하는 표현들이 등장한다. 이 밖에도 책 곳곳에서 포착되는 그의 시니컬한 농담과 기발한 표현에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음악 전문 번역가 이석호는 이렇듯 쇼 특유의 빈정거림과 반어적인 표현들 때문에 머리를 싸맨 적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이는 또한 “원석을 손에 쥔 흥분과 쾌감”의 경험을 선사했다고 밝혔다. 모든 사람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철칙으로 평론의 품격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렸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저자와, 그런 저자의 의도가 우리말로도 충분히 전해질 수 있도록 수고를 아끼지 않은 옮긴이 덕분에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버나드 쇼의 음악 평론이 10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우리 눈앞에 당도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