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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중 통영, 부산을 중심으로한 사람들의 삶을 그린 박경리의 소설. 당시에도 힘없는 사람들은 밭에서 일하다가도 장터에 나가다가도 군대에 끌러나가고, 돈많은 사람들은 자식들 끼리끼리 결혼시켜 미국으로 보내버리기도 하는 모습들이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주변의 비극적인 상황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자신의 생활에 평화를 느끼면서 ‘비극 속에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존재하기 마련’이라고 말하는 부유층 자제 ‘죽희’에 대한 묘사는 당시 후방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쟁과 가난이라는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돈 뿐이기에 어떻게든 밀무역을 통해서 한몫 잡으려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이는 총칼을 든 진짜 전쟁만큼 치열하고 잔인한 또 다른 지옥을 만들어 낸다. 배금주의에 빠진 사회 분위기 속에 점점 더 소외되고 고통받는 것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어려운 혹은 결혼제도에 편입되지 못한 여성들과 피란민,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도시 외곽의 사람들이었다. 전쟁통에 부모형제를 잃고 이리저리 험한 꼴 당하며 물건처럼 거래되는 ‘수옥’, 빚 때문에 집안 물건들을 싹 다 빼앗기고 자존심에 상처입어 환락가의 삶을 선택하는 ‘학자’는 전쟁이 만들어낸 무력한 희생자들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박경리는 이들의 행로를 끝없는 불행으로 밀어넣는 대신,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대신, 외부 세계의 폭력이나 절망, 낙인에 주저앉지 않고 새 희망을 품고 탈출구를 찾아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전쟁을 치르는 1950~53년의 통영은 잠시 인민군 점령기를 거치긴 했지만,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에서 벗어난 비교적 안전한 피란처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당시 통영은 ‘전쟁 특수’를 누린 것으로도 전해지는데, 감시가 삼엄한 부산을 피해 외려 통영의 밀무역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어장을 주업으로 삼던 통영 사람들은 너도나도 일확천금을 꿈꾸며 밀무역에 뛰어들었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파시(波市)’는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 일반적으로 ‘바다 위에서 열리는 장’, ‘어선과 상선 사이에 어획물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곳’을 지칭하며, ‘항구 근처에 길게 늘어선 어시장’까지 포괄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당시 부산 일대에 대거 유입된 피란민들은 당장 생존을 위해 각자 생계를 꾸릴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주로 가진 물건을 ‘시장’에 내다파는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혼란한 상황에서 그럴 만한 사정이 되는 피란민은 많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위험을 무릅쓰고 미군 부대에서 구호물자를 몰래 빼돌리거나 밀수, 절도 등에 손을 대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부산에는 각계의 고위층과 부유층이 모여들었는데, 이들은 후방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며 온갖 일제와 미제 사치품들을 향유하고 소비했다. 소설 속에서 종종 묘사되는 ‘상점마다 찬란한 일제, 미제 상품이 그득그득히 쌓여’있는 풍경은, 사회적인 양극화 문제가 얼마나 고질적인 것인지 다시한 번 절감할 수 있게 했다. 수옥에 대한 사랑으로 그를 구해내는 ‘학수’, 몰락한 집안과 그의 신세를 비관하며 타락해가는 ‘학자’, 난봉꾼으로 빌어먹는 서울댁의 남동생 ‘문성재’, 그런 문성재를 사랑하지만 사랑하기에 끊임없이 속고 마는 ‘선애’ 등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며 복잡하게 얽힌다. 당시를 살아보지 않은 세대로서 소설을 읽으면서 전쟁이 가져오는 다양한 비극을 가깝게 느낄 수 있었고, 그 현장 한가운데를 살아갔던 다양한 인간군상을 눈앞에 그릴듯 묘사한 박경리 선생님의 필력에 다시한 번 놀랬다. _______ “남자는 도둑질을 해서 돈을 벌지만 여자는 몸을 팔아 돈을 벌 수밖에 없겠죠?” “너무 돈, 돈 하지 말어. 누굴 먹여 살리겠다고 그래? 돈이란 기분 좋게 쓰다 없어지면 그만이고, 기분대로 살다 죽으면 그만이지.” 역시 성재에게도 도둑질이라는 말이 듣기 좋은 것은 아니었던지 그런 식으로 말을 돌려버린다. “고지식하게 살아봤던들 무슨 소용이 있어? 난리 통에 내일 어찌 될지 모르는 세상인데, 흥, 도둑놈 아닌 놈이 어디 있어.” 파시 | 박경리 저 #파시 #박경리 #다산책방 #박경리탄생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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