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헌의 ‘그림아 놀자’
류병학 미술평론가
“그림은 나의 오랜 친구다. 그가 내가 될 수 없고 내가 그가 될 수 없지만,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친구처럼 항상 곁에서 바라봐주고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며 응원해준다. 그와는 가끔 싸우며 화를 내기도 하지만 곧바로 손을 내밀어 화해를 청한다. 그는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투사시키는 거울 같은 대상이다. 아주 가끔 의기투합하여 높은 산을 오르기도 하지만, 평소엔 하릴없이 거릴 싸돌아다니며 사람들 사이를 기웃거리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그것도 지루해지면 몇 달 동안 일정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 일체 간섭하지 않고 지내기도 한다. 둘 사이가 이러니 그와 나 사이엔 명확한 룰이 없다. 느닷없이 어깨를 툭 치거나, 은근히 다가가 꼬시기도 하고, 그도 여의치 않으면 억지로 끌고 함께 놀면 된다. ‘그림아 놀자!’”
- 2013 놀子 태헌
김태헌의 ‘그림과 놀기’는 멀게는 그의 초딩 시절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초딩 시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당시 그림을 제법 잘 그렸던 것 같다. 나는 그에게 ‘화가가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초등학교 졸업 때 담임선생님이 내 손을 꼭 붙잡고 ’넌 꼭 화가가 되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는 초딩 담임선생님의 말에 마치 ’최면‘에 걸린 듯 화가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김태헌이 본격적으로 ‘그림과 놀기’를 시작한 때는, 그가 미대를 졸업한 후부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1992년 경원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다음 해인 1993년 삼정미술관에서 첫 개인전 『‘감춰진 역사’의 숨은 그림 찾기』를 개최한다. 따라서 그의 공식적인 ‘그림과 놀기’는 어언 27년이 되는 셈이다. 만약 당신이 그의 27년간 행적들을 따라가 본다면, 그는 아티스트(artist)를 넘어 전시기획자 그리고 작가(writer)로도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KAR은 김태헌 개인전 <나는 거짓말쟁이 화가>와 함께 그의 ‘전자책(e-book)’ <그림아 놀자>도 발행한다. 그것은 그림과 글로 편집된 일종의 ‘아트북(art-book)’이다. 김태헌은 오래전부터 그리고 쓰기를 병행해 왔다. 1999년과 2000년 지역신문인 ‘분당뉴스’에 그림+글 형식의 ‘그림일기’를 연재한다. 그는 2007년 중앙일보 공지영 연재소설 <즐거운 나의 집> 그림작업을 했으며, 경기일보에 <경기, 1번 국도를 가다>라는 타이틀로 그림/글을 연재하기도 했다.
물론 그는 이미지와 텍스트로 이루어진 몇 권의 ‘아트북’도 발행했다. <천지유정(天地有情)>(갤러리 피쉬. 2004), <1번국도>(그림문자. 2004), <김태헌 드로잉>(아르코미술관. 2006), <그림 밖으로 걷다>(갤러리 스케이프. 2007), <붕붕>(그림문자. 2010), <검은말>(TABLE STUDIO. 2010), <빅보이>(UPSETPRESS/알마 출판사), <연주야, 출근하지 마>(UPSETPRESS/알마 출판사) 그리고 전자-아트북인 <제화유언(諸畵有言)>(KAR, 2021)이 그것이다.
김태헌이 공식적으로 기획한 전시들은 다음과 같다. 2007년 성남아트센터의 <우리동네 문화공동체 만들기> 그리고 2015년 성남아트센터의 <내안의 DMZ>와 성남시청의 ‘광복 70주년 특별전’ <성남 도시공간을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하다> 또한 2017년 김포문화재단 전시실의 <DMZ 10주년 특별전>이 그것이다. 하지만 1993년 삼정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첫 개인전이 사실 그가 직접 기획한 것이란 점에서 그의 첫 기획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 이제 김태헌의 전시 경력에 관해 간략하게나마 언급해 보도록 하겠다.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그의 첫 개인전은 1993년 삼정미술관에서 개최되었다. 1998년 성곡미술관은 ‘내일의 작가’란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성곡미술관은 김태헌을 첫 번째 ‘내일의 작가’로 선정한다. 그래서 그는 1998년 성곡미술관에서 두 번째 개인전 <공간의 파괴와 생성_성남과 분당 사이>를 개최한다. 그가 야심차게 준비한 개인전은 미술계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는다.
김태헌의 개인전이 미술계에 주목받으면서 이후 그는 <민중미술 15년전>(국립현대미술관), <청계천 프로젝트>(서울시립미술관), 광주비엔날레, <빅보이(BIG BOYS)>(Andrewshire Gallery, 미국 LA) 등 국내외 다양한 그룹전에 초대된다. 김태헌은 삼정미술관, 성곡미술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갤러리 피쉬, 갤러리 스케이프, 스페이스 몸 미술관, 봉산문화회관 기억공작소 등에서 20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나는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문득 ‘이종격투기(hybrid martial arts)’를 넘어 '종합격투기(mixed martial arts)'를 떠올랐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종격투기’는 서로 다른 종류의 무술 간 대결하는 격투기이다. 반면에 ‘종합격투기’는 여러 무술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도를 가진 선수끼리 대결하는 격투기이다. 김태헌은 여러 예술 장르들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도를 가진 아티스트로 드로잉과 회화 그리고 판화와 사진 또한 오브제와 텍스트 등을 접목시키는 작품을 한다. 따라서 나는 그의 작품을 일종의 ‘종합예술(mixed material arts)’로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