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시간의 틈새로 들여다본 인간의 본질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내가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 태어났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15세기 피렌체의 시민이었다면, 메디치 가문을 지지했을까, 아니면 종교 개혁가 사보나롤라의 편에 섰을까? 안전과 번영을 위해 도덕적 타협을 했을까, 아니면 원칙을 지키다 모든 것을 잃었을까?
조지 엘리엇의 『로몰라』는 바로 이런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그냥 던지는 것이 아니라, 생생한 인물들과 치밀한 심리 묘사를 통해 우리에게 이 문제를 살아있는 딜레마로 경험하게 한다. 표면적으로는 15세기 르네상스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이지만, 그 안에는 시대를 초월한 인간 본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담겨있다.
사실 『로몰라』는 독특한 위치에 있는 작품이다. 조지 엘리엇은 주로 19세기 영국 시골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 유명하다. 『미들마치』나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같은 작품들이 그렇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르네상스 이탈리아로 시간여행을 떠나 쓴 작품이 바로 『로몰라』다. 당시 독자들은 이 갑작스러운 전환에 의아해했고, 오랫동안 이 작품은 그녀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로몰라』는 오히려 그녀의 가장 야심찬 작품, 가장 깊은 도덕적 통찰을 담은 작품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두 인물이 있다. 로몰라와 티토 멜레마. 로몰라는 학자 바르도의 딸로, 당대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고전 문헌과 철학에 정통하다. 티토는 그리스에서 온 젊고 매력적인 학자로, 난파 후 피렌체에 표류해 온 인물이다. 둘의 만남과 결혼은 처음에는 완벽해 보인다. 하지만 티토의 내면에는 자기 보존을 위해서라면 어떤 배신도 정당화할 수 있는 도덕적 공백이 있다. 그의 점진적인 타락과 로몰라의 점진적인 각성이 이 소설의 중심축을 이룬다.
만약 우리가 티토를 단순히 '악당'으로 규정한다면, 이 소설의 진짜 힘을 놓치게 될 것이다. 티토는 태생적으로 악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지적이고, 매력적이며, 처음에는 로몰라에게 진정한 애정을 품는다. 그러나 그는 작은 선택들을 통해, 그 순간에는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결정들을 통해, 점점 더 깊은 도덕적 타락의 길로 빠져든다. 양부 발다사르를 구하지 않기로 한 첫 결정, 그리고 그 후에 발다사르가 나타났을 때 그를 모른 체하기로 한 결정, 이 모든 것이 자기 보존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그의 여정은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상기시킨다. 우리의 작은 타협들, 그때그때 합리화하는 선택들이 어떻게 우리를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곳으로 이끌 수 있는지를.
한편 로몰라는 처음에는 티토에게 완전히 매료되어, 그의 모든 말과 행동을 신뢰한다. 그러나 점점 그녀는 티토의 진짜 모습, 그의 도덕적 공백을 인식하게 된다. 그녀의 여정은 지적 독립에서 도덕적 독립으로의 성장을 보여준다. 그녀는 아버지의 지식에 의존하던 상태에서, 티토의 매력에 의존하는 상태를 거쳐, 마침내 자신만의 도덕적 나침반을 발견하게 된다.
이 소설의 배경인 15세기 피렌체는 단순한 무대 장치가 아니다. 이 시기는 중세와 근대 사이의 전환기로, 메디치 가문의 지배, 사보나롤라의 종교 개혁 운동, 프랑스의 침공 등 격변의 시대였다. 엘리엇은 이 역사적 배경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개인의 삶과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세밀하게 보여준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도덕적 위치를 찾아가는지, 이것이 이 소설의 중심 질문이다.
『로몰라 1』은 이 작품의 첫 부분(프롤로그부터 27장까지)을 담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로몰라와 티토의 만남과 결혼, 티토의 양부 발다사르의 등장, 사보나롤라의 영향력 확대, 그리고 피렌체를 둘러싼 정치적 변화가 펼쳐진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티토가 점점 자신의 안전을 위해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는 과정과, 로몰라가 그것을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하는 과정이다.
조지 엘리엇의 뛰어난 심리 묘사는 이 소설을 단순한 역사 이야기 이상으로 만든다. 그녀는 인간 행동의 미묘한 동기와 자기기만의 메커니즘을 정교하게 분석한다. 티토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며, 이는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도덕적 실패를 합리화하는지에 대한 통찰력 있는 묘사이다.
이 번역본은 원문의 복잡한 문장 구조와 심오한 철학적 사유를 현대 한국 독자들이 접근하기 쉽게 의역한 것이다. 엘리엇의 문학적 깊이와 심리적 통찰은 보존하면서도, 읽기 쉽고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재탄생시켰다.
왜 지금 『로몰라』를 읽어야 할까? 이 소설이 탐구하는 주제들—도덕적 타협의 위험성, 자기기만의 함정, 격변하는 시대에 개인의 윤리적 책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티토처럼 작은 타협들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원래의 도덕적 나침반에서 멀어질 위험에 놓여 있다. 또한 로몰라처럼 다른 이들의 판단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도덕적 목소리를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로몰라』는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탐구이며, 우리 자신에 대한 거울이다. 15세기 피렌체라는 시간과 공간의 틈새를 통해, 우리는 어쩌면 현대 소설보다 더 선명하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격변의 시대,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자신의 도덕적 나침반을 찾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비슷한 혼란을 경험하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킨다.
이 책에는 번역가의 '옮긴이의 말'과 작품에 대한 상세한 '작품 해설'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독자들이 작품의 역사적 배경과 문학적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르네상스 피렌체의 거리를 걸으며, 로몰라와 티토의 복잡한 관계를 지켜보고, 사보나롤라의 열정적인 설교를 들으며, 우리는 어쩌면 우리 자신의 삶과 선택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오래된 소설은 이상하게도 새롭게 느껴진다.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고민과 선택의 문제는 여전히 같기 때문이다. 도덕적 타협과 자기기만의 위험, 사회적 압력 속에서 개인의 양심을 지키는 어려움, 사랑과 의무 사이의 갈등 — 이 모든 것이 『로몰라』의 페이지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 이 책은 수익금의 일부를 어린이재단에 기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