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는 1960년대 북아메리카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생태학 운동을 배경으로, 캐나다 현대음악의 작곡가 머레이 셰이퍼(R. Murray Schafer)가 제창한 용어이다. 이것은 자연이나 도시를 둘러싼 서양 근대의 다양한 계획론이 지금까지 시각에 편중해 온 것에 대해, 청각을 단면으로 전신감각적 사고를 되찾으려고 하는 사고방식이다. 전문적으로는 ‘개인 혹은 특정의 사회가 어떻게 지각하고 이해하고 있는가에 강조점을 둔 소리환경’이라 정의되며, 그 구성음은 음악이나 언어도 포함한 인공의 소리에서부터 바람소리, 새, 풀벌레, 동물 등의 자연의 소리, 고요함이나 활기 등과 같은 소리환경의 특정 상태, 심지어 특정 지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주체성과 문화적 이해를 짙게 반영하는 기억의 소리 혹은 전승의 소리까지도 포함한다.
소리풍경은 인간과 세계가 소리를 통해서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그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로, 연구 대상은 문화와 생활, 환경, 도시, 사회, 예술, 언론 등의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다. 소리풍경 연구의 주도적 역할을 해온 일본은 지역공동체와 소리환경의 상호작용 관계 속에서 소리가 그 공동체 사회에서 어떠한 사회문화적 요인에 관여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지역의 실천 연구를 전개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는 1996년에 전국 규모로 실시된 당시 환경청에 의한 ‘남기고 싶은 일본의 소리풍경 100선(1996)’ 사업이다. 소리풍경의 사고방식에 근거해서 기획 실시된 일본의 선구적 프로젝트는 1989년 세계 디자인 박람회를 앞둔 나고야시(名古屋市)에서 박람회 발표를 목표로 한 ‘나고야 소리명소(1989)’사업이며, 이후에도 여러 지자체에서 소리풍경이라는 단면에서 지역의 소리환경 자원을 발굴하는 사업을 전개해 오고 있다.
한국에서 소리와 관련된 최초의 사업은 1999년 환경부에서 실시한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1999)’ 사업이다. 이 사업은 일본의 환경청에서 전국 규모로 실시된 ‘남기고 싶은 일본의 소리풍경(1996)’사업 이후 3년여만에 실시된 것이지만, 소리풍경(soundscape) 개념의 유무, 선정 과정, 소리의 종류와 다양성, 인간과 소리환경의 상호작용, 지역의 정체성, 소리환경 문제의 인식 측면에서 일본의 소리풍경 사업과 차이가 있다. 이후 소리풍경의 개념을 적용한 첫 현지조사의 사례로 전남 신안의 ‘홍도의 소리풍경(2007)’ 프로젝트가 이루어졌으며, 지역의 행정기관이나 지역단체를 중심으로 추진된 사례는 ‘광주 무등산 소리명소(2011)’와 ‘울산 동구의 소리9경(2012)’이 있다. 이후 DMZ 접경 지역에 위치한 인천 강화의 ‘교동도 사운드스케이프(2017)’ 프로젝트에서 교동도의 소리를 채집하고 음향을 제작⋅재현한 사례가 있다. 이처럼 일부 지역에서 소리풍경 사업을 추진한 경우가 있지만, 지역의 자연⋅풍토, 역사⋅전통, 산업⋅생활의 고유한 소리의 환경과 문화를 보전⋅계승하려는 목표로 전개한 사업은 드물며, 더욱이 국내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은 기대하기 힘든 현실이다.
이 책은 지역의 소리문화로서 소리환경 자원의 발굴을 통한 소리풍경 사업의 목표와 과정 및 체계 등을 명확히 하고, 소리풍경의 개념을 도입하여 세계 최초로 사업을 추진하고 여러 지자체에서의 추진 사례로 관련 자료와 성과를 축적한 일본의 소리풍경 사업을 정리한 것이다. 일본의 소리풍경 사업의 추진 현황과 목표, 모집 및 선정 등에 이르는 과정과 그 안에 내재된 의미를 파악하여 한국의 소리풍경 사업을 추진할 경우 어떠한 목표와 방법으로 전개해 나아갈 것인지 고찰한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일본의 소리풍경 사업에 대해 관련 학회의 논문과 기사, 그리고 인터넷을 검색하여 수집⋅정리한 것이다. 특히, 일본의 소리풍경 21개 사업 중에서 지역의 행정기관이나 지역단체를 중심으로 추진된 19개 사업을 대상으로 한다. 조사분석 대상 사업은 다음의 조건을 포함한다. 첫째, 지역의 행정기관이나 지역단체가 중심이 되어 추진한 소리풍경 사업으로, 일본 전체를 대상으로 하거나 개인의 연구 성과물은 제외한다. 둘째, 사업 명칭, 실시년도, 사업 주체, 사업의 목표와 선정방법, 홍보방법⋅성과물 등의 내용이 파악가능한 자료를 주요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전국 규모로 실시한 ‘남기고 싶은 일본의 소리풍경 100선(1996)’과 개인 성과물인 ‘치바(ちば)의 소리풍경(2011)’ 사업은 이 책의 내용에 포함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