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늘 영웅의 우렁찬 목소리나 왕관의 무게만을 역사라는 두꺼운 책에 기록하곤 한다. 승리한 자들의 번쩍이는 훈장, 거대한 제국의 영토 확장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하지만 인생의 가을 목에 서서 돌아보니, 정작 우리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고 삶을 지탱하게 만드는 것은 그런 거대사(巨大史)가 아니었다. 지독하게 평범한 이들의 숨소리, 살다 간 흔적조차 희미한 이들의 작고 미미한 일상이야말로 진짜 우리가 살아낸 역사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빛바랜 책장 너머로 16세기 이탈리아의 한 평범한 방앗간 주인, ‘메노키오’라는 사내를 만났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불씨를 댕기고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마른번개처럼 세상에 퍼져나갈 무렵이었다.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 시골은 암흑기였다. 교황청의 숨 막히는 감시 속에서 문해율은 고작 10% 수준이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평민이 가물에 콩 나듯 하던 그 시절, 메노키오는 방앗간을 지키며 남몰래 책을 읽었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나 <만도빌 경의 항해기> 같은 당시의 금지된 책들을 탐독했다.
어느 날 그는 치즈가 익어가는 모습을 보며 독특한 자신만의 우주관을 떠올렸다. 그 생각을 바탕으로 가톨릭 교리를 마음대로 해석해 교황청의 큰 분노를 사게 되었다.
목숨이 위태로운 종교재판에 끌려갔지만, 그는 전혀 기죽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이단 심문관들의 칼날 앞에서도 그는 주눅 들지 않고 외쳤다.
“우주는 치즈고, 신과 천사는 구더기처럼 그 안에서 태어난 거요!”
가난한 평민들을 속이고 억압하기 위해 사제들이 쓰는 어려운 라틴어는 사기 수단일 뿐이며, 온갖 제도는 돈을 뜯어내기 위한 비즈니스에 불과하다는 사이다 발언을 법정에 투척했던 것이다.
비록 그는 쓸쓸히 불길 속에서 한 줌의 재로 사라졌지만, 수백 년이 지난 후 역사가들은 낡은 재판 기록 속에서 그의 생생한 목소리를 복원해 냈다. 거대한 권력에 맞선 한 평범한 인간을 현미경 보듯 조명하는 미시사(Microhistory)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1976년 작 <치즈와 구더기>는 역사학계에서 주목받는 미시사 및 미시사 방법론의 선구적인 명저이다. 저자는 16세기 교회 문서에 기록된 방앗간 주인 메노키오의 발언과 독서 목록을 분석하여 그의 독창적인 종교관을 복원해 냈다.
의 위대한 시작이었다.
그의 투박한 외침을 읽는 동안, 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도 뜨거운 불덩이 같은 충동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왕의 역사만 역사가 아니다. 사하라 사막의 뜨거운 모래바람 속에서 보낸 나의 10년도, 이름 없는 그곳 주민들의 삶도 결코 그보다 가볍지 않다.’
눈을 감으면 사하라의 붉은 흙먼지와 메마른 대지가 어른거린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을 때였다. 그 거친 황무지에 논을 만들고 물을 끌어와 기어이 푸른 벼를 심었던 치열한 날들이 있었다. 피부색이 다른 주민들과 땀 냄새 섞인 살을 맞대며 밤을 지새우고, 낯설고 매캐한 현지 음식을 나누어 먹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평생을 주식으로 옥수수나 조 가루를 빻아 만든 퍽퍽한 ‘쿠스쿠스’나 카사바 가루만 먹어온 그들에게, 사막에서 처음 수확한 하얀 쌀밥을 지어 대접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처음으로 입안에 퍼지는 차진 하얀 쌀밥을 우물거리던 한 노인의 눈가에 차오르던 눈물, 그리고 번지던 환한 미소는 지금도 선명하다.
“무싸(Moussa), 밥맛이 좀 어때요? 입에 맞습니까?”
내 물음에 노인은 한참 동안 밥을 꼭꼭 씹어 삼키더니, 흙 때 묻은 거친 손으로 내 손을 덥석 쥐었다.
“선생님, 이건 그냥 음식이 아닙니다. 평생 먹어온 쿠스쿠스는 목구멍을 거칠게 긁으며 넘어갔는데… 이 하얀 밥은 부드럽게 가슴을 채워주네요. 매일 모래만 씹히던 이 척박한 땅에서 이런 따뜻하고 달콤한 맛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이 배를 곯지 않고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신이 우리를 버리지 않은 것만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지나고 보니 참 부질없기도 하다. 젊은 날 쫓았던 화려한 명예나 거창한 삶의 명분 같은 것들은 메마른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 흩어지는 한 줌 먼지와 같았다. 타국의 혹독한 외로움에서 문득문득 떠오르던 한국의 푸른 고향 산천, 그리고 그리운 이들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 있다.
삶의 마지막 페이지에 결국 남는 것은 권력이나 거대사가 아니라, 진흙 묻은 땀방울과 메마른 손을 맞잡을 때 전해지던 사람의 온기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아프리카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 속에 녹아든 나의 미시사를 세상에 꺼내어 놓으려 한다. 아프리카에는 수많은 민족이 있고, 민족마다 고유의 아름다운 언어가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을 붙잡아둘 문자가 없다. 글이 없으니 기록이 되지 못하고, 기록이 없으니 역사가 쌓이지 못해 어쩌면 오랜 시간 빈곤과 정체의 터널을 지나왔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을 스스로 받아 적지 않는다면, 우리라는 평범한 개인의 역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나에게 글쓰기란 첫째로, 거친 세상 속에서 “내가 여기 치열하게 살다 갔다”라는 준엄한 생존의 기록이다. 그리고 둘째는, 세월의 파도에 부딪히며 생겼던 그때의 날 선 감정들과 상처들을 가만히 다독이고 단정하게 성찰하는 고독한 구원의 과정이기도 하다.
신기한 일이었다. 삐뚤빼뚤한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고, 내 내면을 투명하게 들여다볼수록 안개 속에 갇혀 있던 질문 하나가 서서히 선명해졌다.
‘남은 앞날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
60대라는 나이의 나지막한 언덕 위에서, 지나온 길을 등지고 서서 남은 인생을 어떤 걸음걸이로 걸어가야 할지, 그 이정표가 새벽녘 안개 걷히듯 저절로 명확해지는 기적을 맛본다.
이 쓸쓸하고도 다정한 독백이, 삶의 길목에 선 동년배들과 방황하는 이 땅의 모든 청춘에게 따스한 등불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