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자꾸 인간 이야기가 된다!
21세기는 변동성(Volatility)ㆍ불확실성(Uncertainty)ㆍ복잡성(Complexity)ㆍ모호성(Ambiguity)이 일상이 된, 이른바 VUCA 시대다. 경쟁은 치열해졌고 사회는 갈등과 양극화 속에서 쉽게 나뉜다. 『가축들』은 이런 혼란의 시대에 짐을 나르는 가축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인간의 삶과 문명의 방향을 다시 묻는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동물과 함께 살아왔다. 말과 당나귀, 소와 낙타, 순록처럼 짐을 나른 가축들은 인간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던 무게를 대신 짊어졌고, 그 덕분에 인간은 더 멀리 이동하고 교역과 문화를 넓혀갈 수 있었다. 문명은 늘 짐을 어떻게 나누어 지느냐와 함께 발전해왔다.
이 책은 가축의 가축화 과정을 따라가며, 경쟁과 폭력의 역사 뒤에 가려진 협력과 인내의 가치를 조명한다. 또한 인간의 본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 누구와 함께 살아왔는지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신화와 기록, 우화와 과학적 연구를 함께 엮어 가축과 인간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다. 가축의 이야기를 통해, 혼자 버티는 삶이 아니라 함께 짐을 나누며 살아온 인간 사회의 오래된 방식을 문화인류학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 대부분이 가축이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포유동물 중 야생동물은 고작 4퍼센트에 불과하다. 나머지 34퍼센트가 인간, 62퍼센트는 가축이 차지한다. 인간이 지구에 등장한 이후 85퍼센트에 달하는 야생동물이 멸종했다. 이러한 수치는 인간이 가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좀 더 지혜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 가축이 된 야생동물의 여정, 인류의 역사에는 이들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기록되었다
야생동물의 가축화는 인류 역사 초기에 의도치 않게 시작되었을지라도, 결국에는 인간의 다양한 목적에 따라 진행되어왔다. 그중에서도 무거운 짐을 나르거나 인간의 이동을 돕는 교통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많은 야생동물이 가축화되었다. 이들은 인간에게 온갖 학대를 받으면서도 묵묵히 맡은 역할에 충실했다.
인류의 역사에는 이들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기록되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교훈을 얻고, 때로는 자신을 성찰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과학과 역사, 문화와 신화, 환경과 사회 등 전방위적 관점에서 다섯 종류의 가축, 즉 말, 당나귀, 소, 낙타, 순록을 살펴본다. 또한 세계 여러 나라의 우화를 한데 모아, 불확실한 시대에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간을 도와온 가축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삶의 지혜를 돌아본다.
… 인간의 영역을 넓힌 말ㆍ최초의 국민 자동차 ‘포니’는 조랑말ㆍ말보다 3,000여 년 앞선 역사를 가진 당나귀ㆍ1만 년을 함께한 인류의 조력자, 소ㆍ신들이 먹는 음식, 우유ㆍ인도 국민의 어머니, 암소ㆍ고려시대의 육식 열풍에서 시작된 한우ㆍ경전 속에 등장한 최초의 가축 낙타ㆍ인간이 마지막으로 길들인 동물 순록ㆍ모세혈관이 발달해 사람처럼 추울 때 코가 붉게 변하는 순록ㆍ해마다 떨어졌다가 다시 자라는 순록의 뿔 …
➲ 야생에서 인류의 조력자로: 가축이 된 말과 당나귀, 소와 낙타, 순록의 기원과 여정
개, 양, 돼지, 소에 비해 말의 가축화는 상대적으로 늦게 이루어졌다. 고고학적 증거가 나타나는 시점은 5,500년 전 무렵부터다. 시베리아에서 약 4,600년 전의 동결된 말 미라가 발견되었다.
현대 당나귀는 약 6,000년 전, 이집트 선왕조 시대 이전 북동아프리카에 서식하던 야생 당나귀에서 가축화된 것이다. 말보다 3,000여 년 앞섰다.
소는 1만 년도 훨씬 이전, 중동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아우록스로부터 가축화된 소가 현대 타우루스 소의 조상이 되었다.
가장 최근에 가축화된 단봉낙타의 정확한 가축화 시기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예멘 해안에서는 기원전 7100년경에 단봉낙타 뼈가 발견되었고, 남동 아라비아반도에서는 기원전 5000~기원전 4000년경의 뼈가 발견되었다.
운반이나 교통수단으로 활용한 페노스칸디아에서의 순록 가축화 계통은 1400~1600년경에 나타나고, 시베리아에서는 기원전 39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짐을 나르는 가축, 문명을 움직이다
인간의 문명은 언제나 짐과 함께 움직여왔다. 무엇을 얼마나 짊어질 수 있는가는 단순한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과 사회의 형태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전쟁과 이동, 교역과 정착의 역사에서 짐의 무게는 곧 인간이 나아갈 수 있는 거리이자 한계였다.
하지만 인간은 오래지 않아 모든 짐을 혼자 감당하기에는 삶이 너무 무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인간은 짐을 나누는 방법을 찾았고, 그 선택의 중심에 가축이 있었다. 말과 당나귀, 소와 낙타, 순록은 인간 대신 무거운 짐을 나르며 길을 열었다. 가축의 가장 큰 특징은 빠름이나 힘이 아니라, 묵묵히 같은 속도로 오래 버티는 성질이었다. 가축의 이야기 속에서, 짐을 덜어내는 방법이 아니라 짐을 함께 지는 오래된 지혜를 읽을 수 있다.
말의 활용은 인류를 정주 농업 사회에서 벗어나 초원과 사막으로 이동하게 했고, 그 과정에서 무역과 전쟁이 활발해지며 언어ㆍ종교ㆍ문헌의 확산이 촉진되었다.
당나귀는 기원전 2600년경 수메르(현재의 이라크와 쿠웨이트 지역)에서 짐을 나르거나 전차를 끄는 데 활용되었다.
『삼국지』 「동이전」 부여조에는 논밭의 흙을 고르고 다지는 농기구인 ‘써레’가 언급되는데, 이는 한우가 최소 2,000년 전부터 농경에 활용되었음을 보여준다.
단봉낙타 한 마리는 말보다 네 배나 많은 짐을 진 채 하루에 50킬로미터를 이동할 수 있다. 게다가 물 한 방울 마시지 않고도 2주 이상을 버틸 수 있다.
순록은 처음에는 짐이나 사람을 실은 썰매를 끄는 용도로 가축화되었으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고기, 털, 젖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도 사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