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동안 세계가 더욱 또렷해진다
오늘의 질문에 응답하는 ‘현대의 고전’
격변하는 정치·사회 현실 속에서 한국사회는 다시 한번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 있다. 민주주의의 현재와 미래, 불평등과 분열, 시민의 역할과 책임을 어떻게 이해하고 사유할 것인가. 새로 출간된 『새로고침: 잔다리에서 책으로 오늘을 읽다』는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이러한 질문에 응답하고자 한다. 인문·사회·문학 연구자와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학문적 협동으로 운영되어온 세교연구소의 서평웹진 ‘잔다리서가’의 연재 글을 묶은 이 책은, 각 분야 연구자들이 엄선한 32권의 책을 통해 오늘의 한국사회를 비추는 사유의 좌표를 제시한다.
무엇보다 『새로고침』은 현안을 직접 논평하는 대신 과거와 현재의 고전을 다시 읽는 방식으로 지금의 현실을 해석한다. 32권의 책은 민주주의, 분단과 평화, 사회적 불평등, 동아시아 질서 등 우리 시대의 핵심 쟁점들과 맞닿아 있으며, 책을 다루는 서평들은 이 책들이 시간을 뛰어 넘어 오늘의 질문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지를 차분하면서도 날카롭게 짚어낸다. 빠르게 소모되는 시사적 발언을 넘어 읽기를 통해 현안을 깊이 들여다보고 사유의 토대를 다지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공적 읽기의 장을 제공한다.
단일한 해법을 넘어, 다층적인 사유로
오늘의 문제를 다시 묻는 읽기
오늘의 한국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은 이전보다 훨씬 복잡해졌고, 그 깊이 또한 한층 심화되었다. 분단체제의 장기화와 국제질서의 재편, 민주주의 제도의 피로와 시민 신뢰의 약화, 불평등의 구조화와 사회적 분열, 기후위기와 생태적 전환이라는 전지구적 과제는 더이상 개별 사안으로 다뤄질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문제들은 서로 긴밀히 얽혀 우리의 일상과 정치, 경제, 문화 전반을 규정하고 있으며, 그만큼 성급한 진단이나 즉각적인 처방으로는 응답하기 어려운 국면에 놓여 있다.
『새로고침』은 이처럼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현실 앞에서 빠른 해답이나 단선적인 처방을 제시하기보다, 책을 매개로 질문에 응답하는 또다른 사유의 경로를 제안한다. 이미 출간된 책들을 다시 불러 읽고, 현재의 문제의식 속에서 재해석하는 이 서평집은, 오늘의 문제를 더 긴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 위치시키려는 시도에 가깝다. 빠르게 소모되는 의견과 판단을 넘어 책을 통해 축적된 복합적 사유들을 다시 호출함으로써, 위기 국면을 통과하기 위한 지적 토대를 다지고, 우리 사회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질문의 형식과 깊이를 함께 모색하는 것이다.
이 책에 실린 32편의 글은 ‘분단을 넘어서는 일’, ‘역사의 갈림길에서 세계를 보다’, ‘차별과 격차를 허무는 도전’, ‘변해버린 계절 앞에서 물어야 할 것들’, ‘세상을 바꾸는 문화의 힘’이라는 다섯 개의 주제로 나뉘어 있다. 이는 한반도 분단체제와 국제관계, 민주주의와 평등, 기후위기와 생태적 전환, 동시대 문학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기획을 맡은 세교연구소가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온 문제의식의 지형을 반영했다. 그러나 이 구분은 논의를 고정된 틀에 가두기 위한 장치라기보다, 서로 다른 문제들이 어떻게 교차하고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안내에 가깝다. 상당수의 글은 여러 주제를 넘나들며,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 단일한 해법이나 분과적 사고가 아닌 종합적이고 다층적인 사유를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새로고침』은 이 같은 구성과 서평의 흐름을 통해, 오늘의 문제들이 요구하는 복합적 사유의 방향을 제시하는 동시에, 우리가 어떤 질문으로 현실을 다시 바라봐야 하는지를 묻게 한다.
지식의 협동으로 쌓아온 사유의 궤적
『새로고침』이 잇는 과거와 현재
『새로고침』은 2006년 설립 이후 인문학·사회과학·문학 연구자와 시민사회운동가들의 협동을 통해 근현대 한국의 역사와 사회사상, 문학 이론을 탐구해온 세교연구소의 지향과 문제의식을 집약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연구소의 이름인 ‘세교(細橋)’가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일대의 옛 이름인 ‘잔다리’에서 비롯되었듯, 세교연구소는 서로 다른 학문 분야와 실천의 영역을 잇는 ‘지식의 협동’을 핵심 가치로 삼아왔다. 이 책은 그러한 연구소 활동의 연장선에서, 뜻있는 시민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사유의 언어를 함께 확장하려는 시도의 산물이다. 『새로고침』이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이 책은 과거의 사유를 현재로 다시 불러와 가장 ‘최신의 상태’로 갱신하려는 작업이자, 세교연구소가 오래도록 견지해온 “한결같되 날로 새롭다”는 지향을 오늘의 현실 속에서 재확인하는 제안이다. 『새로고침』을 통해 형성되는 공적 읽기의 경험은, 각자의 자리에서 흩어져 있던 질문들을 다시 한자리에 모으고 다음을 사유하기 위한 공통의 출발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