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와 함께르네상스 시기 영국의 대표적인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의 대표적인 희곡 작품들, 「탬벌레인 대왕」 「몰타의 유대인」 「파우스투스 박사」는 영국뿐만 아니라 서구 유럽 문화의 전성기였던 르네상스 시기가 인간의 사고와 가치관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이다.하지만 말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인이라는 이유로 인해 그 빛이 많이 가려졌다. 셰익스피어의 걸작들이 르네상스 영국을 대표하는 희곡들로 평가받음으로써 말로의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그 가치가 평가 절하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셰익스피어가 존재하게 된 배경에는 크리스토퍼 말로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셰익스피어가 극작가로서 성공하기 전에 이미 당시 극장가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 있었던 작품들로,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상상력과 작품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로의 극단적인 작품 세계가 있었기에 셰익스피어는 그 활동 범위가 더욱 넓어졌고, 그와의 경쟁을 통해 더욱 분발할 수 있었다.말로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은 실험 정신이다. 그의 작품들은 르네상스 시기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얼마든지 우리에게 개인의 삶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깨우칠 수 있는 걸작들이다.
말로의 주인공들은 작가 자신의 삶처럼 강렬하고 극단적이다. 그들은 동시대 시인 스펜서의 주인공들과는 정반대로, 자신들의 욕망을 제한하고 억압하는 것들을 깨트리려고 애쓰는 인물들이다. 말로는 인간의 정체성이 정치적, 종교적, 그리고 사회적 질서가 위반되는 순간에 형성된다고 본다. 이러한 말로의 작품들은 현대 후기 구조주의의 지평 위에서 볼 때, 매우 현대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들이다. 인간의 존재란 이성과 권력, 그리고 질서의 틀 안에서 구성되고 만들어진다는 후기 구조주의적 시각은 인간을 그러한 권력과 질서의 틀에서 해방시키고자 노력하는데, 말로의 작품들은 르네상스라는 독특한 시대 상황과 함께 인간 존재의 해방과 권력의 연관 관계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의의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결국 말로의 작품들의 번역 연구는 서양 연극, 특히 르네상스 드라마 연구에서 매우 소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