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와 인간 존재의 상관관계를 찾아가는 기행
조선일보 수석논설위원 오태진 기자가 21명의 문화ㆍ예술계 인사들의 삶과 그들의 도시 이야기를 인터뷰하고 취재한 독특한 산문집『내 인생의 도시』가 도서출판 푸르메에서 출간되었다. 영화감독 곽경택, 시인 안도현, 화가 박대성, 소설가 한승원, 판화가 이철수, 민속학자 황루시 등 치열한 삶 끝에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우리 시대 예술가들의 인생 열전을 그들의 생생한 육성으로 들을 수 있다.
곽경택의 부산에서는 용광로 같은 열정을, 함민복의 강화에서는 ‘말랑말랑한 힘’을, 한승원의 장흥에서는 바다와 자연이 주는 유쾌함을, 사석원의 동대문에서는 점점 사라져가는 인심과 ‘흥’을, 전상국의 춘천에서는 바라보기만 해도 위안이 되는 자연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장소애’라는 삶과 예술의 자양분
누구나 자신이 자리잡고 살아가는 터전에 대한 애정이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런 인간과 장소를 이어주는 정서적 관계로 인해 자신의 업을 풍성하게 꽃 피웠다. 그들은 자신의 터전을 아끼고, 사랑하고, 보살핀다. 그 도시 또한 그들을 따스하게 품어준다. 그렇게 도시의 역사와 삶이 그들의 인생이 되어간다.
“나를 소설가로 키운 것은 무등산 자락 고향의 청정한 댓바람 소리와 물레방아 돌아가는 소리, 그 골짜기를 짜글짜글 뒤흔든 6ㆍ25의 총소리이다. -소설가 문순태”
“스스로 지리산을 찾아든 것은 한없는 추락을 자처한 내 인생의 마지막 번지점프였다. 서울살이 10년의 환멸과 권태를 단숨에 깨뜨리는 자발적 가난의 외통수, 백척간두에서 한 발을 내딛는 해방이었다. -시인 이원규”
단오제를 만난 후로 민속학자 황루시에게 강릉은 가슴 뛰는 공간이 됐다. 소설가 김도연은 고향인 평창에서 나무와 자연, 짐승들과 교감하며 대관령의 눈과 바람과 외로움으로 글을 쓴다. 그는 “도시에 나가면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 화가 박대성은 경주의 자연과 역사를, 시인 안도현은 전라도 땅과 사람들 마음속에 밴 슬픔을 문학적 자양분으로 삼아 글을 쓴다.
이런 도시와 사람의 특별한 관계를 오태진은 미려한 문체로 담담하게 풀어낸다.
문득 봄이었다. 아직 바람이 찼지만 부산 영도 남쪽 끝, 태종대 앞바다에 은빛 물비늘로 부서져 반짝이는 건 분명 봄볕이었다. 살아 있다는 기븜을 일깨우는 이른 봄날, 죽고 싶도록 아름답다는 태종대를 영화감독 곽경택과 함께 천천히 거닐었다.
앞이 안 보이도록 폭우가 쏟아지던 날, 마을 안 언덕 맨 끝에 서 있는 그의 집을 찾았다. 법적인 지적도에 길을 물고 있지 못한 땅, 맹지여서 숨듯 들어앉았다.
파란 감이 비바람에 떨어져 뒹구는 마당에 서니 섬진강이 한눈에 든다. 며느리 옷고름처럼 순하디 순하게 흐르던 섬진강은 누런 황톳물로 몸을 불려 거칠게 바다로 내달린다.
저자는 30년 경력 기자답게 ‘인터뷰의 정석’을 보여준다. 글쓰는 사람의 생각을 거의 담지 않고, 아름답고 절제된 언어로 사람과 장소, 그 운명적인 상관관계를 벼려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꿈을 이렇게 세세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인터뷰가 아니라 고문”에 가까운 오태진 기자의 취재 덕분이었다. 기자나 기자 지망생, 다큐멘터리 작가 등 글쓰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교본이 될 만한 책이다.
“가슴 뛰는 곳”에서의 가슴 벅찬 인생
이 책에 소개된 21명은 모두 살고 있는 곳이 각자 다르다. 서울, 부산, 전주, 강릉, 강화 등 책을 읽고 나면 전국 일주라도 하고 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공통점은 있다. 그곳이 고향이건 고향이 아니건 그들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가 되었고, 모두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며 그곳에서 가장 행복하게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결코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다. 어려움에 부딪히고, 외로움과 싸우고, 자기 자신을 이겨냈다. 그들은 모두 ‘열망’을 가지고 꿈을 좇아왔다. 가난과 고난 등 어떤 방해물도 그들을 방해하지 못했다. 시인 유홍준의 경우, 한복집, 고추가게, 기계부품공장, 채소가게, 막노동 등 마흔아홉 되도록 온갖 거친 일을 했다. 그 중에서도 영양에 머문 3년 동안 사철 꾸준히 일한 곳이 산판이었다.
어깨가 터져 짓무르면서 흘러나온 진물이 옷에 달라붙었다. 그는 저녁마다 상처에 소주를 들이부어 옷을 떼어내곤 했다. 나무 얹는 어깨에 굳은살이 박이고 달걀 하나 들어갈 만큼 파이자 진물은 그쳤다. 그때쯤 ‘젊은 장사꾼 유씨’는 “영양 최고 산판꾼”으로 불렸다. 까맣게 그을린 몸이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고 송진을 뒤집어쓰면서 산적처럼 살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들을 한 분야에서 우뚝 서게 해준 것은 바로 가슴 속에 항상 품고 있던 꿈일 것이다. 그렇게 열망으로 쓰이고 그려진 작품들이 이 책에 함께 실려 있다. 시인 함민복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단칸 셋방을 옮겨 다녔지만 형편이 힘들어져 결국 어머니를 고향으로 보내드려야 했다. 작은이모 댁 옆에 방 하나를 얻어놓고 어머니를 모시고 가던 1993년 여름, 청주 터미널에서 설렁탕집에 들어갔다. 평소 고깃국은 입에도 대지 않던 어머니가 설렁탕이 짜다며 주인에게 국물을 더 달라고 해 함민복에게 부어주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