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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 상세페이지

에세이/시

파문

문학과지성 시인선 302
소장종이책 정가8,000
전자책 정가30%5,600
판매가5,600
파문 표지 이미지

파문작품 소개

<파문> 출렁거리던 나날의 어디 움푹 꺼져버린
삶의 세목들을 허허로운 수평으로 복원하려 한다면
내 주전자인 바다는 처음부터 이 무료를
들끓이려고 작정했던 것
행락은 끊겼는데 밤만 되면 선착장 난간 위로
별들의 폭죽 떠들썩하다 밤 파도로도 한 겹씩
잠자리를 깔다보면 하루가 푹신하게 접히지
그러니 뿌리치지 못하는 미련이라도 너의 계획은
며칠 더 어긋나면서 이 무료를
마침내 완성시켜야 한다 지상에서는 무료만큼
홀로 값싼 포만 또한 없을 것이니!
―「무료한 체류」 부분

김명인의 앞선 시집들이 그러했듯, 이번 시집 역시 문학의 가장 본질적 주제인 삶과 죽음의 문제에 부딪쳐 자신의 몸과 언어를 실험 대상으로 내세우고 형이상학적 탐구를 벌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실험의 동반자는 익숙한 바다, 바람, 파도, 파문, 포구의 선술집, 방파제에서 꽃나무, 꽃뱀, 산사 그리고 낯선 이국의 호텔까지 다양하다. 이들과 함께 삶의 표피와 죽음의 속살 사이에서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문제에 맞서면서 자연스럽게 시간의 존재감 혹은 시간의 흐름에 천착하고 급기야 시간을 사물화하기에 이른다.

그녀의 소문난 억척처럼
좁은 미용실을 꽉 채우던 예전의 수다와 같은
공기는 아직도 끊을 수 없는 연줄로 남아서
저 배는 변화무쌍한 유행을 머릿결로 타고 넘으며
갈 데까지 흘러갈 것이다 그동안
세헤라자데는 쉴 틈 없이 입술을 달싹이면서
얼마나 고단하게 인생을 노 저을 것인가
자꾸만 자라나는 머리카락으로는
나는 어떤 아름다움이 시대의 기준인지 어림할 수 없겠다
다만 거품을 넣을 때 잔뜩 부풀린 머리끝까지
하루의 피곤이 빼곡히 들어찼는지
아, 하고 입을 벌리면 저렇게 쏟아져 나오다가도
손바닥에 가로막히면 금방 풀이 죽어버리는
시간이라는 하품을 나는 보고 있다!
―「조이미용실」 부분

한편 고통스러운 내면의 어둠 속에 함몰되거나 주저앉지 않고 대신 스스로를 호되게 채찍질하고 단련해온 시인만이 쓸 수 있는 지극한 깨달음이 그가 긴장감으로 길어올린 시어 하나하나에 배 있다. ‘개성적 비유와 정밀한 묘사의 정신이 결합하여 삶의 표층과 이면을 하나의 화폭 안에 잔상처럼 펼쳐내는 독특한 표현 미학’은 김명인 시인이 한국 시단에 새긴 두드러진 이정표일 것이다.

바닥 없는 적요 속으로 피어올랐던 꽃뱀의 시간이
문앞에서 순식간에 제 사족을 지워버렸다
아직도 한순간을 지탱하는 잔상이라면
연필 한 자루로 이어놓으려던 파문 빨리 거둬들이자
잘린 무늬들 그 허술한 기억 속에는
아무리 메워도 메워지지 않는
말의 블랙홀이 있다 마주친 순간에는 꽃잎이던
허기진 낙화의 심상이여!
―「꽃뱀」 부분

아직은 제 풍경을 거둘 때 아니라는 듯
들판에서 산 쪽을 보면 그쪽 기슭이
환한 저녁의 깊숙한 바깥이 되어 있다
어딘가 활활 불 피운 단풍 숲 있어 그 불 곁으로
새들 자꾸만 날아가는가
늦가을이라면 어느새 꺼져버린 불씨도 있으니
그 먼 데까지 지쳐서 언 발 적신들
녹이지 못하는 울음소리 오래오래 오한에 떨리라
새 날갯짓으로 시절을 분간하는 것은
앞서 걸어간 해와 뒤미처 당도하는 달이
지척 간에 얼룩지우는 파문이 가을의 심금임을
비로소 깨닫는 일
하여 바삐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같은 하늘에서 함께 부스럭대는 해와 달을
밤과 죽음의 근심 밖으로 잠깐 튕겨두어도 좋겠다
조금 일찍 당도한 오늘 저녁의 서리가
남은 온기를 다 덮지 못한다면
구둘 한 장 넓이만큼 마음을 덥혀놓고
눈물 글썽거리더라도 들판 저쪽을
캄캄해질 때까지 바라봐야 하지 않겠느냐
―「따뜻한 적막」 전문


저자 프로필

김명인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46년
  • 학력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석사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 학사
  • 경력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
    러시아 극동국립대학교 객원교수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데뷔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 수상 2014년 제7회 목월문학상
    2011년 제4회 웹진 시인광장 올해의 좋은 시상
    2007년 제7회 지훈상 문학부문상
    2001년 제13회 이산문학상
    2000년 제45회 현대문학상

2014.12.2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김명인
1946년 경북 울진 후포에서 태어나 1969년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이후 ‘반시(反詩)’ 동인으로 활동했다. 미국 유타 주 브리검 영 대학과 러시아 연해주 소재 극동국립종합대학에서 교환교수를 지냈으며 경기대 국문과 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시집 『동두천東豆川』(1979) 『머나먼 곳 스와니』(1988) 『물 건너는 사람』(1992) 『푸른 강아지와 놀다』(1994) 『바닷가의 장례』(1997) 『길의 침묵』(1999) 『바다의 아코디언』(2002) 『파문』(2005) 『꽃차례』(2009) 등이 있으며 소월시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이형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목차

시인의 말

꽃뱀
조이미용실
얼음물고기
산 아래
장엄 미사
향나무 일기장
꽃을 위한 노트
기억들
배꽃 江
외로움이 미끼

무료한 체류
분수
가다랑어
맨홀
달위 뒤쪽
아직도 누군가 서성거린다
바다 광산
말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간 것일까
흐르는 물에도 뿌리가 있다
매물에 들다
바람 경작
가두리
봄 산
소등
구멍
울타리
우물
신발

빨래
하노이 대우 라운지
복날
한치
오동나무 배
마늘
절 아래 주막
잠의 힘으로 가는 버스
우뭇가사리
캄보디아 호텔
심해물고기
봄꽃나무
식목
모과

구름정거장
찰옥수수
석류
고복저수지
따뜻한 적막

- 해설 : 꽃뱀의 환각, 절정의 시간들 / 이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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