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와 1970년대의 여러 경계를 텔레비전 드라마는 어떻게 다루었는가
한국의 방송 역사를 통틀어 드라마만큼 비난을 많이 받은 장르도 없을 것이다. 저속(저질)하고 퇴폐적이며, ‘말이 안 된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 《겨울연가》나 《대장금》 등이 이른바 한류를 몰고 오기 전까지는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비난 일색이었다. 텔레비전이 대중화된 이후 이러한 비난과 칭송 사이에서도 드라마는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드라마는 우리의 기준과 경계를 자극한다. 이 경계는 국가, 민족, 이데올로기, 종교, 도덕, 윤리, 계급(신분), 고장, 말과 언어 등 모든 반경에 걸쳐 있다. 드라마가 욕을 먹는 불륜과 퇴폐, 저속과 비논리, 위화감과 소외 등은 모두 이런 경계와 관련이 있다.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역사와 경계≫는 이러한 1960~1970년대의 여러 경계를 텔레비전 드라마가 어떻게 다루었는지 살펴본다.
한국 방송에서 드라마가 인기 품목이 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였다. 그 당시는 라디오 방송이었으므로 음악 프로그램이 대부분이었지만, 드라마 역시 꾸준히 만들어졌다. 해방이 되었을 때도 이 편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인기를 끌고 그만큼 화제와 물의도 많던 현대 멜로드라마 연속물은 1956년에 방송된 《청실홍실》이 시초이다. 《청실홍실》이 인기를 끌자 같은 유의 드라마들이 성행하기 시작했고 몇 년이 안 되어 연속 간격이 하루로 좁아진 일일극도 생겨났다. 텔레비전이 등장해서도 드라마는 여전히 편성의 중추를 차지했다. 당시 상업 방송인 TBC-TV는 1967년에 이미 요일별로 매일 다른 장르의 라인업을 만들어 시청자에 어필했다. 3개의 상업 방송과 2개의 국영 채널이 경쟁하던 라디오에서는 드라마가 저녁 시간대의 매시간별로 편성되었다. 텔레비전에서 이런 드라마가 화려하게 개화한 것은 1970년 TBC-TV의 《아씨》였다. MBC-TV의 《개구리 남편》(1969)이 이미 법적 문제까지 일으킨 이듬해였다. 이때만 해도 ‘이쯤 되면 신파도 예술’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의 아류가 성행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드라마는 저질과 퇴폐의 상징이 되었다. 한국 방송 드라마의 대표격 인물로 볼 수 있는 작가 김수현은 이런 때에 등장했다. 그녀의 드라마는 한편에서는 대통령상을 받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불륜과 퇴폐의 상징으로 중도 하차당해 1970년대를 뜨겁게 수놓았다.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역사와 경계≫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본격화되고 대중적 인기가 폭발하기 시작한 1960~1970년대에 주목해 그 면모를 다각적인 접근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 책에서는 텔레비전 시대에 진입하기 시작한 1960년대에 텔레비전 드라마가 어떠한 형성 과정을 거쳤는지를 연극, 라디오, 영화 등 다른 매체와의 관계 속에서 분석해보고 있다. 또한 그 당시 드라마의 제작 및 편성이나 내용에서 드러나는 정치·사회적 이념들을 비롯해 젠더, 세대 등의 문제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도 살펴본다. 이렇게 텔레비전 드라마의 역사를 들여다봄으로써 현재도 반복되는 텔레비전과 그 문화를 거울처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주요 내용
1부에서는 텔레비전 수상기의 보급이 확대되는 1960년대에 막 제작되기 시작한 텔레비전 드라마가 어떠한 형성 과정을 거쳤는지를 연극, 라디오, 영화 등 다른 매체와의 관계 속에서 분석해보고 있다. 1장 “1960년대의 정동affect과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1960년대를 텔레비전 드라마 분석을 통해 그 시대를 재검토해 본다. 1960년대의 정동을 텔레비전 드라마의 내용, 타 매체와 맺은 관계, 생산 방식, 수용 방식 등의 분석을 통해 드러내고, 1960년대의 정치적 상황을 인정하되 중층 결정 요소로 작용했을 법한 것들을 찾고, 그 요소가 타 요소와 함께 중첩 결정을 내리게 되는 방식을 점검해 본다. 2장 “1960년대 텔레비전의 ‘창작 문예 단막극’: 라디오 방송 문예와 연극 대중화 운동의 관계 속에서”는 1960년대 텔레비전 단막극 드라마의 편성 내용과 흐름, 제작의 방향에 주목하여 라디오, 연극과의 상호 매체적 연관성이 초기 텔레비전 드라마의 성격 형성에 어떻게 작용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한다.
2부에서는 텔레비전 드라마 제작 및 그 내용에서 드러나는 정치·사회적 이념들을 살펴본다. 3장 “한국의 초기 텔레비전 멜로드라마와 민족주의”는 1960년대의 정치·사회적인 분위기가 만들어 낸 민족주의의 정서를 당시에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아씨》, 《여로》, 《새엄마》를 통해 살펴본다. 4장 “텔레비전 드라마의 왕/대통령 재현, 그 흐름과 의미”는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TV 드라마에서의 왕/대통령 소재의 작품이 어떤 흐름으로 변화해 왔는지를 알아본다. 그리고 그 변화 경향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개괄적으로 훑어본다. 5장 “1960, 1970년대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이념적 성격과 그 갈등”에서는 1961년부터 텔레비전이 전성기를 구가했던 1970년대까지 텔레비전 드라마가 추구한 이념적 성격들을 당시 텔레비전 드라마가 제작된 물적 조건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여 살펴본다.
3부에서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젠더, 세대 등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고찰해본다. 6장 “1970년대 텔레비전 드라마의 근대성과 일상성”은 1970년대의 대표적 작가 김수현의 드라마들을 대상으로 당시 텔레비전 드라마가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었는지 살펴보고, 당대의 비평 및 규제 사실들을 참조하여 그에 대한 맥락적 해독을 시도한다. 7장 “청년 세대와 청춘 영화/드라마”에서는 한국 대중 문화 속의 ‘청춘물’(영화 및 드라마)에 그려진 ‘청춘’ 혹은 ‘청년(세대)’의 모습을 살펴본다. 8장 “왕하이링의 결혼 3부작을 통해 본 중국 여성의 결혼관”은 중국 드라마와 드라마 수용의 문화적 맥락에 주목하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중국 드라마를 분석하여 중국 대중 문화를 이해하고자 한다. 특히 중국 가정 윤리극 가운데 결혼에 주목하는 왕하이링의 작품을 개혁개방 이후 중국 사회 변화의 맥락에서 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