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우리 수학이 있다
우리 아이들은 국어는 우리 말과 글이니 당연히 우리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 외의 학문은 막연히 외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생각하여 외국의 사상을 좀더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는 수학자 이름을 말해보라 해도 피타고라스, 파스칼 등을 말하지, 홍정하, 이상혁 등 우리 수학자는 잘 모릅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수준 높은 수학이 존재했지만 그것을 알고자 하는 노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쉽게 말해 조선시대 이후의 우리나라 수학은 서양수학이 급작스레 들어오면서 많은 변화를 거친 것이 오늘날의 근대 수학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1900년대 초의 근대화된 학교에서 사용된 수학 교과서 속에는 전통 수학이 사라지고 서양의 근대 수학이 담겨 있어요. 사실 조선 이후 우리의 역사는 주도권의 상실과 전쟁이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우리 고유의 학문을 연구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거든요.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는 동안에 근대 수학을 수용하게 되고 현대식 교육으로의 급속한 전환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주체적이지 못한 채 현대화된 학문을 받아들였고 세계화 속에 매우 빠른 속도로 합류하게 된 것이지요.
서양보다 앞서 동양수학
좀 더 시야를 넓혀 동·서양의 수학에 대해서도 잠깐 생각해봐요.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꽤 오래된 어른들에게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대해 여쭤보면 그 내용은 잘 기억하지 못해도 이름은 다 들어봤던 기억이 남아 있을 거예요. 파스칼의 삼각형도 마찬가지 경우에 해당해요. 그런데 앞서 보았듯이 똑같은 아이디어가 중국에도 있었어요. 구고술이라든지 가헌의 삼각형 말이에요. 더욱이 가헌은 파스칼보다 600여 년을 앞선 사람이거든요.
양쪽 수학을 비교해볼 때 동일한 아이디어나 원리에 대해 유럽보다 앞선 중국의 발자국이 있었던 경우가 많이 있었지만 중국과 서양의 학문적 교류를 통한 중국의 현대화 과정에서 중국의 전통 수학은 수학의 세계화 흐름에 파묻히고 말아요.
서양식 학교 설립 및 서양 세계에서의 유학 등에 힘입어 중국에서의 수학은 현대 수학의 발달로 이어지거든요. 이런 흐름 속에 결국 최종의 학문적 주도권은 서양 유럽이 차지하여 오늘날 많은 수학적 성과에 서양 수학자들의 이름이 남게 된 거예요.
이렇듯 서양 수학 위주의 학문적 풍토에서 우리의 전통 수학에 대해 알고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에서 이 책을 쓴 거예요. 우리의 전통 수학에 대해 얘기할 때 과연 우리 고유의 전통 수학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시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우리 고유의 수학
우리 수학의 원류를 거슬러 오르면 결국 다 중국의 수학이 아니냐는 말이죠. 우리나라의 전통 수학이 중국에서 들어온 수학에 뿌리를 두고 있고 지속적인 영향 아래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에요.
앞에서 보았듯이 우리 전통 수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계산 도구인 산대도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고, 수학 교과서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구장산술》도 중국의 것이니까요. 그러나 주의할 것은 우리의 수학이란 것이 창조의 의미만을 지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예요.
문화, 그리고 학문은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려고 만드는 거예요. 자기가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받아들여 어떻게 사용하고 발전시키느냐가 중요한 거지요. 컴퓨터를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나요? 아니에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는 IT강국으로서 세계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들어온 수학책이고 계산 도구였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그것을 우리 실정에 맞게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알았어요. 중국에서 수학책과 계산 도구가 다 사라진 뒤에 우리나라에서 거꾸로 가져간 경우도 여러 번 있지요. 《산학계몽》이란 책도 그랬고, 산대도 그랬다는 것을 앞에서 보았지요?
오늘날 미국에서 출간된 어떤 책에는 산대를 Korean Rods라고 소개할 정도예요. 우리는 우리의 전통 수학이라고 자신 있게 부를 만한 우리 선조들이 연구한 수학이 있습니다. 다만 후손인 우리들이 우리의 전통 수학을 소홀히 여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지요.
이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오랜 전부터 수학이 존재했으면, 꾸준히 연구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합니다. 다만 현재 서양 수학의 표현법에 익숙해져 말이나 표기법이 낯설어 아이들에게 이해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고, 남아 있는 문헌이나 연구가 미흡하여 한계에 부딪히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 것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 책을 출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