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나 마침내 괴물이 되었다”
거짓과 폭력의 세상을 떠나 꿈으로 도망친 청춘
인생 최대의 적수, 달수를 만나다
블랙유머와 마술적 리얼리즘의 작가 안성호, 그가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장편소설 『달수들』(문학과지성사, 2015)을 들고 독자들을 찾아온다. 안성호는 2002년 실천문학 신인상(단편소설 부문) 수상했고 200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시 부문)에도 당선된 바 있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작가다. 실제로 그의 시적인 문장과 몽상적이고 기괴한 상상력은 그간 발표되어온 소설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안성호는 기이한 인간사를 다루면서도 ‘허구적인 환상을 거부하고 불안을 필터 삼아 현실의 왜상(歪像)을 그대로 응시’(강유정)하려는 태도를 고수해왔다. ‘세계의 전모를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왜소해지고 무기력해진 주체’(김형중)들을 등장시켜 이들의 몽상과 망상으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방식을 선호해왔던 그는, 현실로도 환상으로도 읽을 수 없는 독특한 소설 세계를 구축한 작가로 꼽힌다.
그러나 환각 또한 사실이다. (루이 알튀세르)
안성호의 작품을 해석한 많은 문학평론가들이 ‘꿈’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했을 만큼 그의 소설에서 꿈은 주요한 기능을 한다. 작가는 비현실적인 사건들이 아무렇지 않게 계속 전개될 수 있는 꿈의 속성을 이용하여 그 안에 놓인 인물들의 상황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그 극단적이고 절박한 심경을 고스란히 소설에 담아내 ‘믿고 싶지 않지만 부정할 수 없는 어떤 진실들’을 발견하게끔 한다. 문학평론가 복도훈은 “그의 소설은 당신이 한 번쯤은 어떤 식으로든 경험해봤을 기묘한 백일몽=낮꿈daydream의 세계를 닮았다. 꿈과 현실의 경계, 은밀한 욕망과 그것이 실현되지 못한 채 응어리져 잔여물로 부유하는 백일몽의 세계”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신작 장편소설 『달수들』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안성호식 본격 ‘꿈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작가는 두렵고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꿈으로 도망친 한 소년의 왜곡된 성장담을 꿈 이야기로 풀어낸다.
‘삼포세대’의 초상? 현실적으로 현실을 포기하고 꿈으로 향하는 청년
어느 날, 아버지가 나를 더러운 곰새끼라고 부르면서 마구 때렸다. 곰처럼 살이 좀 찌기는 했지만 어딜 보나 나는 곰이 아니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좁은 벽장에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 곰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고 벽장에 숨었다. 나는 벽장에서 ‘곰이 아니다, 곰이 아니다, 곰이 아니다’ 하고 중얼거렸다. [……] 그런데 며칠 뒤, 곰 한 마리가 벽장으로 들어왔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곰으로 보였다. 벽장 밖에서 누군가 목줄을 잡고 있어서 불편해 보였지만 심부름은 곧잘 했다. 벽장에 갇혀 주문을 외우듯 곰에게 명령하면 곰은 “밀짚모자를 쓴 노인에게 전하겠습니다” 하곤 금방 사라졌다. 주문한 일들이 조금씩 현실로 구현되었다. (본문 중에서)
작가는 꿈으로 빠져드는 반수면의 순간에 ‘나’를 데리러 오는 ‘정원사’와 ‘곰’의 등장으로 화자가 앓고 있는 기면증의 원인을 암시한다. 처음, 이것은 단지 ‘야구방망이 나무’ 하나에서 시작되었다. 화자가 야구방망이를 열망하던 소년 시절, 그가 꿈속에서 야구방망이 나무를 한 그루 얻게 된다. 이 나무를 잘 키워 야구방망이를 거두자 거짓말처럼 현실에서도 아버지가 야구방망이를 선물해준다. 이 우연하고도 신기한 경험을 한 후 꿈속에서 밀짚모자를 쓴 노인이 화자를 찾아온다. 노인은 정원을 일정 이상 넓힐 때마다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때부터 화자는 꿈속에서 곰과, 자신의 그림자인 정원사와 함께 30여 년간 정원을 가꾸고 넓히는 데 매진하느라 늘 잠에 빠져 지낸다. 그가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현실보다 꿈속의 세계에 충실해온 것은 단순히 철이 덜 들었거나 좀 모자란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작가는 소설 초반에 제시되는 화자의 유년 시절과 중후반에 서술된 청년기 삶을 통해 사랑보다는 폭력이 앞서는 부모, 가난하고 무기력한 생활, 학력과 능력이 자본으로 치환되는 사회 속에서 ‘부적격자’가 된 소년-청년의 암담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부조리와 고통으로 가득 찬 현실을 피해 꿈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던 청춘, 그렇다면 그가 포기한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달수 vs 달수 - 그림자가 지배하는 신체
누구나 꿈을 꾸면서 가끔은 정말 자신답지 않은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속옷만 입은 채로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평소에 절대 입에 대지 않는 음식을 먹거나 혹은 모르는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는 경우도 있다. 꿈을 꾸는 나와 꿈속의 나는 같은 사람일까? 어쩌면 꿈을 지켜보는 관객이 나이고 꿈에서 행동하는 ‘나’는 또 다른 내가 아닐까?
이런 물음들 속에 태어난 자가 달수다. 꿈 밖에서 들여다보는 자가 (혹은 그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이라는 연출자가) 움직이는 마리오네트의 실을 끊고 스스로 자기 소유의 물건을 가져보고자 하는, 꿈에서 탈출해 온전히 자신으로 살아가길 꿈꾸는 꿈속의 행위주체 달수. 달수는 화자가 꿈 안으로 도망쳐버리는 순간 밖으로 튀어나와 삶을 살아내면서 그의 삶에 생긴 공백들을 메워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단호하게 혹은 잔인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돈을 벌고, 생존을 유지하게끔 하는 또 다른 자아로 우뚝 선다. 결국 달수는 꿈 밖에 있던 달수를 꿈속에 영원히 묶어놓고 자유의지로 실제 삶을 살아보고자 계획한다.
안성호는 그간의 소설들을 통해 ‘존재’라는 화두에 오래 질문을 던져왔던 작가다. 이유 없이 별안간 닥쳐온 불안증을 두고 “삶이 초라하다는 데서 오는 모멸감”(「누가 말렝을 죽였는가」)이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이 비루한 현실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진전시켜온 흔적이 이 소설에서도 달수와 달수 사이의 관계 양상에서 드러난다. 작가는 자꾸만 꿈으로 도망치는 연약하고 무기력한 달수와 꿈에서 튀어나와 대낮을 활보하는 욕망 덩어리 달수를 기묘하게 접붙여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한생을 살아가야 할 우리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있다.